▲ 유명우(왼쪽) 전 세계프로복싱챔피언과 김선 하늘맑은집 선수촌 관장이 지난 1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프로권투 긴급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
지난 8월 11일 유명우와 김선 씨는 기자회견을 열고, 현 KBC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KBC의 개혁이 필요하다며 프로복싱 긴급대책위원회(위원장 유명우)를 발족시켰다. 긴급대책위원회는 김주환 KBC 회장의 즉각 사퇴를 촉구했고, KBC의 회계 부정 등을 조사하기 위해 김선 씨를 위원장으로 한 특별조사위원회도 구성했다.
이에 KBC는 12일 홈페이지 공지 글을 통해 “사단법인인 KBC의 운영을 법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곳으로 총회, 이사회, 감사가 있으며 불법행위가 있다면 사법기관의 조사에 의거해 처벌을 받게 된다. 11일 기자회견을 한 유명우와 김선은 감사 등이 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이라고 받아쳤다. 총회 무효 소송에서 KBC가 패소한 것에 대해 신용선 KBC 수석부회장은 “그쪽(유명우 김선 측)은 총회 무효 소송과 함께 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도 했다. 무효소송은 받아들여졌지만 가처분신청은 기각됐다. 같은 법원(서울중앙지법)의 다른 판사가 각각 다른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항소 등 법적으로 당당하게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대립은 사실 2009년 12월 유명우 사무총장의 사퇴와 함께 시작된 것이다. <일요신문>이 2009년 12월 27일자(919호)에서 상세히 보도했지만 한국프로복싱의 간판인 유명우는 그해 7월 김주환 당시 KBC 수석부회장의 지원을 받아 화려하게 사무총장으로 발탁됐고, 이어 10월 김철기 회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KBC 수장에 김주환 부회장을 올려놓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만에 유명우 사무총장이 뽑은 직원 2명에 대해 김주환 회장이 인사조치를 단행하면서 양측이 크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한국 프로복싱계는 ‘회장파 VS 반대파(친 유명우)’로 갈려져 있다.
▲ 김주환 KBC 회장. |
한국이 세계 2대 프로복싱 강국이고, 세계타이틀매치가 열리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과거 프로복싱의 전성기 때 KBC 회장은 탐낼 만한 자리였다. 세계타이틀이 한 달에 1~2회 생중계될 때마다 얼굴을 비치는 등 워낙 언론 노출이 많다보니 정치권력의 실세나 재력가들이 이 자리를 맡았다. 실제로 장택상(3대 1953.9~1957.3), 유진산(5대 1960.9~ 1961.5), 양정규(10~12대 1977.3~1984.3), 구천서(15대 1992.9~1993.12) 등 많은 유력인사가 KBC 회장을 거쳐 갔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프로복싱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KBC 수장도 중소기업인들이 맡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KBC 회장의 재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지면서 출연금 약속 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럴 경우 예전에는 ‘무서워서’ 생각도 못했던 각종 소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프로복싱에서 KBC와 관련된 소송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이번에 특별조사위원회를 맡은 김선 씨다. 김선 씨는 이종성 회장 시절 소송을 통해 잠시 KBC를 장악했고,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다. 황현철 KBC홍보이사는 “하도 소송이 많다 보니 법원을 다니며 알았는데 김선 씨의 경우 KBC와 관련된 소송이 거의 50회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본질은 감정 싸움
여기서 회장파와 반대파의 의견이 충돌하는 논쟁을 잠깐 살펴보자. 먼저 김주환 회장의 적법성은 어차피 법원이 최종판단을 할 문제가 됐다. 단 한 가지 알아둘 만한 것이 있다. 반대파는 기자회견에서 “KBC 회장은 이사회를 통해 뽑도록 정관이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09년 10월 김주환 회장의 선출은 임시총회를 통해 일부 권투인들이 주도해 적법성이 없다. 이 과정에서 위임장도 문제가 됐다. 법원(1심)이 이를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김주환 회장은 “절차상의 문제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고, 안타까운 것은 당시 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사회를 보고, 김주환 회장 선출을 이끈 사람이 바로 유명우였다. 그런 사람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라고 반박했다.
KBC의 미흡한 행정력, 회계비리, 횡령에 대해서 의견은 크게 갈린다. 유명우는 “고 배기석의 사망 때 크게 문제가 됐듯이 선수들의 대전료(1%)에서 모은 건강보험금(이하 건보금)이 현재 한 푼도 없다. KBC의 재정이 파탄 나고, 각종 횡령과 회계비리가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신용선 부회장은 “기본적으로 KBC는 돈이 없는 곳이다. 회장이 돈을 내놓지 않으면 직원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횡령할 돈이 어디 있는가? 더욱 기가 찬 것은 김선 씨가 법적 소송으로 건보금을 포함해 2억 원이 넘는 KBC의 돈을 가져가 KBC의 재정을 완전히 바닥나게 한 장본인이다. 기자들이나 외부에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개탄했다.
이에 유명우는 “김선 씨가 2억여 원을 가져간 것은 재판을 통한 합법적인 일이었다. 그리고 그중 건보금 1억1800만 원은 진재철 회장이 채워 넣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고 배기석 사망 때 크게 문제가 된 건보금 등 KBC의 재정문제는 일일이 다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지난 10년 간 아주 복잡하게 흘렀다. 좀 단순화해서 알기 쉽게 살펴보면 이종성 회장 때 KBC는 건보금 1억 1800만 원과 예금 1억 원가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선 씨가 소송을 통해 이 돈을 획득했고, 후임 진재철 회장은 건보금은 KBC의 돈이 아닌 선수들을 위한 기금인 만큼 전액 개인이 출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역시 내홍에 시달리던 진 회장은 건보금으로 당초의 절반이 안 되는 5000만 원만 내놓았다(이에 대해서도 누가 감액에 동의했느냐를 놓고 말이 많다). 그런데 이마저도 당시 이 아무개 사무총장이 “회장이 쓰라고 했다”며 이 돈을 사용했다. 하지만 제대로 영수증 처리되지 않았고, 이 전 사무총장은 재판을 받고 벌금 등의 처분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건보금이 모두 증발됐다.
#유명우 VS KBC
“유명우는 두 말이 필요 없는 한국 프로복싱의 얼굴이다. 복서로는 물론이고, 사회인으로도 성공했다. 복싱을 살리겠다는 취지도 정말 순수하고 강하다. 다 좋은데 김선 씨 같은 소송전문가와 손을 맞잡은 것이 안타깝다. 예컨대 이번 기자회견을 김선 씨 혼자 했다고 가정하면 언론이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명우가 하니까 다른 것이다.”
전 세계챔피언 A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유명우는 한국복싱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향후 한국프로복싱을 이끌 행정가로 첫 손에 꼽힌다. 지난해 KBC 사무총장도 선후배들로부터 만장일치 형식으로 추대된 것이다. WBA 주니어플라이급에서 세계 타이틀 17차 방어, 36연승(통산 38승1패 14KO), 정상에서의 화려한 은퇴, WBA 올해의 복서 선정(1991년) 등 일단 선수생활이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대인관계도 좋고 다른 많은 세계챔피언들과는 달리 은퇴 후에도 사업가(요식업)와 복싱 프로모터로 비교적 성실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반면 김선 씨에 대해서는 많은 권투인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유명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선 씨와 행보를 함께하는 것에 대해 여론이 좋지 않다”고. 이에 대해 유명우는 “알고 있다. 하지만 김선 씨에 대해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 원칙대로 일을 처리하다 보니 원칙이 없는 권투계에서 말이 많은 것이다. 그리고 김선 씨가 나는 물론이고, 자신의 아들 앞에서도 이번에 KBC를 정상화하면 일체 KBC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언을 했다. 권투를 살리는 일인 만큼 선입견을 버렸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유명우는 김주환 회장 퇴임 이후에 대해서도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제대로 된 좋은 회장을 영입하겠다. 재력이 있으면서 복싱을 사랑하는 훌륭한 분들이 제법 있다. 이미 접촉한 분들도 있다. 현재 돈이 없으면 복싱은 살기가 힘들다. 어려운 일이지만 복싱 살리기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