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은 직후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임준선 기자
#“정직 2개월이면 충분”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의 중징계 결정이 내려진 가운데, 오히려 법조계에서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무리한 징계를 추진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추 장관은 11월 24일 오후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직접 브리핑을 갖고 “그동안 법무부는 총장에 대한 여러 비위 혐의에 대해 직접 감찰을 진행했고, 그 결과 총장의 심각하고 중대한 비위 혐의를 다수 확인했다”며 “오늘 저는 매우 무거운 심정으로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조치를 국민께 보고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밝힌 징계 사유 가운데 몇몇은 추미애 라인으로 꾸려진 징계위원회에서조차 무혐의 처분이 났다. 징계위는 12월 15일 ‘판사 문건 작성 등 판사 사찰’, ‘채널A 사건 감찰 방해’, ‘채널A 사건 수사방해’, ‘정치적 중립 등 위신 손상’ 등 네 가지에 대해서만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네 명의 징계위원들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명분이 취약한 부분도 있었다. 징계위는 윤 총장이 10월 대검 국정감사에서 “퇴임 후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여론조사에서 대권 후보 1위에 오르는 등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 위신손상도 징계사유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 안팎에서 “퇴임 후 국민 봉사가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냐. 또 여론조사에 대해서도 본인을 제외해 달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 이를 징계사유로 넣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반발이 나오는 대목이다.
12월 16일 새벽까지 징계위원회 2차 심의가 진행된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전경. 사진=박정훈 기자
#“‘윤 총장 해임’ 후폭풍 피하려는 꼼수”
그럼에도 정직 2개월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조치라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당초 해임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검찰 반발은 물론 여론조차 ‘검찰 개혁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자, 다소 후퇴하면서도 실리는 챙겼다는 얘기다.
실제 여당에서는 정직 처분이 여론과 검찰의 반발을 줄이면서 윤 총장이 수사 지휘를 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묘수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언론 인터뷰에서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느냐. 그분들을 생각하면 해임보다는 정직을 할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대전지검이 수사 중인 원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서 윤석열 총장을 배제시 키는 것이 2개월이면 충분하다. 대검 관계자는 “두 달이라는 시간이라면 대전지검에서 수사 중인 사건 관련 수사 라인을 교체하고, 새 수사라인으로 수사를 마무리하기에 적절한 시간”이라고 평가했다. 추미애 장관이 깜짝 사퇴를 밝힌 것도 수사라인 교체에 있어 좋은 명분이다. 새로운 장관이 올 경우 이에 대한 인적 쇄신 필요성에 ‘명분’이 생긴다는 평이다.
최근 공수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윤석열 총장이 자리를 비운 2개월 동안 공수처도 출범할 수 있게 됐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김용민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중심으로 통과됐다. 개정안의 핵심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의 위원 추천권한을 여야 교섭단체 각각 2명에서 ‘국회 추천 4명’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추천위의 공수처장 후보 추천 요건도 7명 가운데 6명 찬성에서 ‘재적의원 3분의 2(5명) 이상 찬성’으로 완화한다. 추천위에 야당이 추천한 위원 2명이 들어가더라도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희도 청주지검 부장검사는 지난 14일 검찰 내부망에 “(윤석열 총장) 정직 뒤에는 공수처 검사를 동원해 어떻게든 윤 총장을 기소할 것”이라며 “징계위 인적구성 등을 보면 그냥 넘길 수 있는 소문이 아니다”라고 예상했는데, 2개월 사이 공수처가 자리를 잡으면 윤석열 총장의 징계가 풀리더라도 공수처가 다시 ‘사퇴 압박’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개월이면 ‘비판을 최소화,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던 이슈이다 보니 반발을 최소화하면서도, 윤석열 총장이 더 이상 수사에 손을 댈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한 한 수였던 것 같다”며 “애초 징계 과정이 너무 거칠었다면 그로 인한 반발 등을 우려해 결론(정직 2개월)은 상당히 정치적 고민을 담아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법원으로 이어질 소송전 결과 역시 고려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앞선 변호사는 “무리한 직무 배제 결정에 서울행정법원이 윤석열 총장 손을 들어주지 않았나, 이번에도 해임이나 정직 6개월처럼 과도하다 싶은 처분이 나왔을 경우 법원에서 징계 결정에 대해 ‘무효’라고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해 ‘적절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중징계(정직) 가운데 약한 처분을 한 것 같다”며 “어떻게든 총장 자리에서 배제시키기 위한 목적의 판단”이라고 평가했다.
12월 16일 권력기관 개혁 관련 3개 기관 합동 언론브리핑이 끝난 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퇴장하고 있다. 이후 추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제청해 재가를 받았다. 그리고 법무부 장관직의 사의를 표명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깜짝 추미애 사퇴는 변수
문재인 대통령이 징계를 재가함에 따라, 윤 총장은 12월 1일 복귀한 뒤 15일 만에 다시 직무가 정지됐다. 총장 대행 업무는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가 수행한다. 징계 결정 다음날인 17일, 윤 총장 측 이완규 변호사는 기자들에게 보낸 입장문에서 “행정법원에 전자소송으로 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6일 윤 총장이 변호인을 통해 밝힌 “불법 부당한 조치다. 헌법과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잘못을 바로잡을 것”이란 입장의 후속 조치다.
추미애 장관이 주도한 정직 2개월의 징계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재가했고, 또 곧바로 추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윤 총장 측에는 부담이 더하게 됐다. 법무부 장관이 공석이 되면 이를 재가한 인사권자, 문재인 대통령의 최종 결정에 반하는 소송으로 갈등 양상이 더 확대될 수 있다. 그럼에도 윤 총장 측은 “추 장관 사의 표명과 관계없이 소송 절차는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정치권 일각에서 “사의를 표명한 추 장관과의 동반사퇴 필요를 희망하는 청와대의 메시지”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윤 총장은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미 윤 총장 측은 추 장관이 직무배제 처분을 내린 다음 날인 11월 25일 저녁, 전자소송으로 직무배제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를 신청한 바 있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이 인용 결정을 내리면서 일주일 만에 복귀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다시 징계에 대한 적절성 여부 및 윤 총장 복귀에 대한 판단은 서울행정법원으로 넘어가게 됐다. 추미애 장관의 깜짝 사의 발표 역시 법원 판단 등 징계 국면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수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