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한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를 리메이크 한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는 방영 2화 만에 역사왜곡, 여혐, 실존인물 희화화 논란에 휩싸였다. 사진=tvN 제공
‘철인왕후’의 원작과 그 작가의 ‘혐한 성향’도 대중이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철인왕후’의 원작은 2015년 중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자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다. 이 작품의 작가 셴청(선등‧鲜橙)의 차기작 ‘화친공주’에서 중국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가오리 빵즈’ ‘빵즈’ 등의 용어가 사용된 것이 문제가 됐다.
또 작품 내에서 고려를 두고 여주인공이 비난과 조롱을 일삼는 것이 소설의 주요 에피소드로 이용되면서 ‘철인왕후’ 리메이크 전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리메이크를 진행했고, 그 와중에 한국인이 한국을 폄하하는 대사와 설정을 집어넣은 것이 대중의 분노를 폭발시킨 셈이다.
대중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창작의 자유를 침해하려 드는 오버 액션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철인왕후’ 제작진이 원작가의 혐한 성향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리메이크를 진행했고, 논란이 일었던 ‘조선왕조실록 지라시’ 등의 대사를 삭제하기로 결정했으니 앞으로 진행에는 문제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드라마 업계에서는 오히려 “대중의 비판을 좌시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단순히 작품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민원을 넣는 것과 다른 측면으로, 현재 국내의 방송 등 문화 전반의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치아문단순적소미호’도 국내 리메이크를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의 원작자는 자신의 SNS와 차기 작품에 한국을 비하하는 용어를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치아문단순적소미호’ 포스터
실제로 카카오TV가 12월 28일부터 공개하는 ‘아름다웠던 우리에게’도 원작자의 혐한 논란이 불거진 중국 소설 및 드라마 ‘치아문단순적소미호’(致我們單純的小美好)를 원작으로 한다. 원작의 작가 자오첸첸(趙乾乾)이 자신의 웨이보(중국의 SNS) 등에 “중국 탁구팀이 빵즈팀보다 잘 생겼다” “빵즈들은 온통 헛소리뿐” 등 한국인 비하와 비난 글을 써온 사실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한국 리메이크 직전 이 사실이 국내에 알려져 비난을 받자 자오첸첸은 “빵즈가 나쁜 뜻인 줄 몰랐다. 한국인들이 옥수수를 좋아해서 쓰는 말인 줄 알았다”며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여주인공의 엄마가 한국 연예인을 언급하며 “빵즈”라고 부르는 장면과 주인공이 한국인을 상대로 “우리 단오절을 우리에게 돌려줘, 그렇지 않으면 중국 음식으로 목을 막히게 해 너를 죽게 할 거야”라고 독백하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자오첸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이 이어졌으며 비난의 수위도 높아졌다. 이후 자오첸첸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철인왕후’에서 가장 문제가 됐던 ‘조선왕조실록=찌라시’ 대사는 이후 삭제됐다. 사진=‘철인왕후’ 방송 캡처
드라마 업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국내 출판업계의 상황과 맞물린다고 분석한다. 최근 카카오페이지, 리디북스, 네이버 ‘시리즈’, 문피아 등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타고 중국의 언정소설(로맨스 소설)과 BL(Boys Love‧남성 동성애를 주제로 하는 성인 대상 로맨스 소설) 작품들이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이런 작품의 대다수에서 혐한이나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과 맞물리는 설정 등이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이 수익을 위해 방치하고 있으며, 이 작품들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리메이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중국 언정소설 가운데 ‘동궁’ ‘비빈저작업’ ‘서녀명란전’ ‘삼생삼세 십리도화’ ‘후궁덕비’ 등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우리나라 국민들의 집단 보이콧을 야기했다. 이 때문에 일부 작품은 판매 중지되기도 했다. 또 중국 BL소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청룡도등’ 등은 작품 내 역사왜곡이 문제가 됐다. 특히 ‘이합화타적백묘사존’은 중국인들이 주장하는 백두산의 표기인 ‘장백산’을 사용해 큰 논란을 낳으면서 국내 연재분에서는 해당 용어가 수정됐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중국 언정소설이나 19금 성인소설은 국내 웹소설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정적이고 잔인한 묘사가 많다. 그리고 그만큼 인기도 높다”며 “편수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출판사나 플랫폼 입장에서는 장기 연재에 따른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노리고 중국 작품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측면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업계 일부에서는 일본 작품들도 작가의 혐한 발언이나 작품 내 역사왜곡 등 문제로 논란이 불거지는 일이 잦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그 작가의 작품이 계속 팔리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중국 작품에 대해서도 ‘이 소동만 끝나면 다시 팔리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그렇다고 아예 독자들의 눈치를 안 보는 것은 아니고 항의가 들어오는 즉시 논란의 경중을 따져 판매 중지나 내용 수정 등의 대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