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옥중 입장문을 통해 폭로한 로비 의혹들이 일부 사실로 드러나면서 우리은행이 비상에 걸렸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0월 옥중에서 입장문을 내고 “라임펀드 판매 재개 관련 청탁으로 검사장 출신 야당 유력 정치인 변호사에게 수억 원을 지급한 후 실제 우리은행 행장·부행장 등에 대한 로비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또 이런 사실을 검찰에 알렸지만 수사가 되지 않았다고도 주장했다.
김봉현 전 회장의 폭로에 따르면 라임 측이 로비를 통해 만나고자 했던 당시 우리은행 행장은 현재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다. 폭로 이후 우리은행은 즉각 반발하며 보도자료를 내고 “라임펀드 판매 재개와 관련해 우리은행 행장·부행장을 로비했다는 것은 사실무근”이라며 “허위사실 유포에 강력 대응해 법적 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반박했다.
폭로 진위 여부에 대한 진실공방이 이어지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각종 의혹은 윤갑근 전 대구고검장이 구속되며 새 국면을 맞았다. 검찰이 윤 전 고검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사유는 알선수재 혐의다. 로비 명목으로 2억 원 상당의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윤 전 고검장이 구속되자 자연스레 당시 우리은행장이던 손 회장에 대한 수사가 주목받는다.
검찰은 윤갑근 전 고검장이 판매가 중단된 라임펀드 재판매 요청서를 우리은행 고위층에 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전 고검장과 손 회장은 성균관대 법학과 동문이다. 윤 전 고검장 측은 손 회장을 만나 ‘라임펀드 재판매’ 관련 대화를 나눈 점을 인정했다. 다만, 일련의 만남은 변호사의 정상적인 법률사무 업무에 해당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줄곧 라임펀드와 관련해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주장해온 우리은행으로선 난감한 상황을 맞게 됐다. 앞서 우리은행은 언론을 통해 “행장이나 부행장에게 로비를 부탁하는 연락 자체가 전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은 라임 로비 의혹과 관련해 11월 우리은행 본점 회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전직 임원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를 진행 중이다. 사진=일요신문DB
우리은행 관계자들은 라임펀드 관련 청탁, 재판매 검토 여부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업계와 정치권에서는 라임과 관련한 각종 청탁이 금융사에 전달됐다고 보고 있다. 우리은행도 외부의 각종 민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리은행은 라임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곳이다. 3577억 원 상당의 라임펀드를 판매한 우리은행은 라임의 부실 우려가 커지자 2019년 4월 신규 펀드 판매를 중단했다.
결과적으로 윤갑근 전 고검장과 손태승 회장이 만난 2019년 7월 이후 라임펀드 재판매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검찰은 로비가 실제 있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남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 11월 손 회장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최근 우리은행 전 영업부문장과 전 자산관리(WM)그룹장 등을 소환 조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라임펀드 판매와 관련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었다. 검찰은 라임펀드 판매가 중단된 뒤 은행 내부적으로 재판매 여부를 검토한 적 있는지 집중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업계에서는 라임펀드 관련 재판매 검토 지시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은행도 외부에서 펀드 재판매 건으로 연락이 많이 왔다고 알고 있다”며 “2019년 라임펀드 판매를 중지한 이후 윗선의 지시로 TF(태스크포스) 같은 비상시 조직을 꾸려 라임펀드와 관련해 판매 가능 여부를 살펴보다가 결국 재판매가 안 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라임펀드가 결과적으로 재판매되지 않아 우리은행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손태승 회장이 검찰 수사뿐 아니라 금융당국 제재를 두고 금융감독원(금감원)과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손태승 회장은 국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받았다. 사퇴 대신 손 회장은 금감원을 상대로 징계에 대한 징계효력 집행정지 가처분신청과 징계 취소를 청구하는 소송에 나섰다. 임원이 문책경고를 받으면 3년간 금융회사 임원을 맡을 수 없고 잔여 임기만 채울 수 있어 연임을 위해 손 회장의 소송은 불가피했다. 결국 지난 3월 손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지만, 우리은행은 금감원과 정면 충돌하게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리은행은 현재 대외적으로 여러 의혹에 휘말려 있어 사면초가인 상황으로 보인다”며 “금감원과도 소송 등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손태승 회장 리스크가 자칫 직원이나 주주들의 피해로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