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후반기 박건하 감독 부임 이후 상승 곡선을 그렸다. 리그 막바지 6경기에서 4승 1무 1패를 기록했고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 8강에 오르는 결과를 냈다.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뒷받침된 가운데 공격수 김건희도 수원 ‘반전’의 주춧돌이 됐다. 김건희는 부상으로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어려움 속에서도 챔피언스리그 4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투혼을 발휘했다.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내고 돌아온 김건희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건희와 수원은 이번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에서 강호들을 상대로 투혼을 발휘하며 팬들을 감동시켰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수원 삼성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참가에는 큰 기대감이 없었다. K리그 후반기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들의 최종 성적은 결국 12개 팀 중 8위에 불과했다. 이에 더해 ACL에는 부상 등 여파로 외국인 선수 전원과 베테랑 염기훈 등이 불참했다. 2000년대 태어난 어린 선수들이 대부분이었던 만큼 전력 약화가 불가피했다.
그럼에도 수원은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를 냈다. 조별리그에서 빗셀 고베(일본), 광저우 헝다(중국) 등 아시아 빅클럽들과 경쟁해 16강에 진출했으며 16강에서는 전년도 J리그 우승팀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꺾었다. 8강에서는 1명이 퇴장당하는 수적 열세 속에서도 대등하게 싸웠지만 승부차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8강 진출이라는 결과를 만든 수원에 많은 축구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호평이 따랐지만 김건희에겐 아쉬운 대회였다. 그는 “개인적으로 더 잘하지 못한 점이 참 아쉽다”면서 “더 많은 기회를 만들고 공격 포인트를 냈어야 했다.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팀이 만들어간 과정에 대해서는 만족감을 표했다.
김건희는 외부활동이 제한되는 생활이 이어지는 것에 대해 “전혀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팀으로서 아쉬운 것은 전혀 없다. 아주 좋았다. 수원에서 뛰면서 우리 팀이 이렇게 하나가 되고 서로 발전, 성장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기분이 몹시 좋았고 선수들도 그런 감정을 공유했다. 이번 대회에서 패배는 곧 탈락이고 이는 시즌 종료를 의미했다. 그렇게 시즌을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했기에 경기장에서 선수들의 투지가 나온 것 같다.”
수원의 8강 진출이라는 결과는 팀 구성원 김건희도 예상하지 못했다. 4경기에 나서며 1골 1도움을 올린 자신의 기록조차 그에게는 뜻밖의 일이었다. 대회에 나서기에 앞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즌 막판부터 김건희는 부상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팀의 성적이 저조했기에 참고 경기에 나섰다.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충돌이 잦으며 상태가 더 심해졌다. 카타르에서 경기 전날까지 훈련은 했지만 이대로 경기에 나서면 다칠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MRI(자기공명영상)를 찍었고 햄스트링 건 부분에 타박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번 대회 경기에 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김건희는 카타르에서 첫 경기만 명단에서 제외됐을 뿐 이후 모든 경기에서 그라운드를 밟았다. 그는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유환모 팀 닥터께서 매일 오전, 오후, 저녁으로 마사지를 해주시는 등 회복에 공을 들여 주셨다”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간절한 마음에 진통제를 투여하기도 했다. 김건희는 “경기에 너무 나서고 싶었다. 이번 대회에 많은 선수들이 빠지면서 특히 중앙공격수 자원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고생하는 동료들을 위해서도 꼭 뛰고 싶었다. 솔직히 진통제는 선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참고 4방을 맞았다”고 말했다.
김건희는 토너먼트 진출 여부가 걸려 있는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었다. 16강전에서는 김민우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월 열린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패를 안고 이번 대회에 나섰기에 더 이상 패배는 곧 탈락인 상황이었다”면서 “토너먼트의 잔인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반면 그런 간절함이 좋은 경기력으로 나오기도 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의 도전은 8강에서 마무리됐지만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수원에 좋은 자양분이 될 수 있다. 김건희도 “ACL은 우리가 나서는 가장 큰 대회다. 그런 대회에서 광저우, 요코하마 같은 수준 높은 팀들을 상대로 오히려 우리가 더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 어린 선수들이 많았던 우리 팀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수원은 9월까지 11위에 머물며 강등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김건희 개인적으로도 만족하기 어려운 시즌이었다. 지난 시즌 상무 소속으로 시즌 막판 10경기 8골 1도움이라는 압도적 기록을 냈지만 이번 시즌 부상으로 꾸준한 경기 출장조차 어려웠다. 그는 “뭔가 이뤄질 것 같은 상황에서 헝클어지는 일이 반복됐다. 가끔은 좌절감마저 들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박건하 감독의 부임 이후 반전을 만들어냈다. 리그 막판 6경기에서는 4승 1무 1패를 거뒀고 여유 있게 1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 김건희는 박건하 감독에 대해 “선수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면서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지 않으시면서 선수들이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맞춰갈 수 있게 해주신다”고 설명했다.
말이 없는 박 감독도 경기를 앞두고선 선수들의 의지를 일깨웠다. 김건희는 “경기 나가기 전에는 항상 정신적인 부분을 강조하신다”면서 “항상 중요한 코멘트들을 적어 오셔서 선수들을 집중하게 만드신다. 대외적으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수원 소속으로서 자부심을 강조하시는데 이런 면도 선수들이 동기부여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8강전을 마지막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수원 선수단은 11일 귀국 이후 각지에서 자가 격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김건희는 전북 전주 본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태블릿PC로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을 시청하며 2주를 견뎌야 한다(웃음). 최근 드라마 ‘비밀의 숲’을 재밌게 봤다. 그런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라며 웃었다.
김건희는 2020시즌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는 동시에 2021시즌 더 나은 성적을 팬들에게 약속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ACL 참가 선수들은 대회가 열린 카타르에서도 격리에 가까운 생활을 해야 했다. 감염 예방을 위해 훈련과 경기를 제외하면 숙소 외부 활동을 현지에서 금했기 때문이다. 귀국 후에는 2주 자가 격리 기간을 거친다. 선수들은 4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외부 접촉이 제한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부 선수들은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김건희는 ‘어려울 것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사실 나는 평상시에도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며 웃었다.
“평상시에도 돌아다니기보다 방에서 쉬는 것을 좋아한다. 훈련시간 외에는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시즌 중에는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클럽하우스에서 지낸다. 코칭스태프 분들이나 선배들이 ‘좀 나가라’고 말할 정도다(웃음). 그래서 이번 대회에서도 다른 선수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숙소에서만 지내는 생활이 너무 좋았다(웃음). 다만 중동식 식사가 입에 맞지 않아 좀 힘든 부분이 있었다. 살이 조금 빠지기도 했는데 가끔 구단에서 준비해주시는 한식 덕에 견딜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가 격리 기간이 해제되는 김건희는 벌써 다음 시즌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이번 시즌이 끝난 것이 너무 아쉽다. 부상은 있었지만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없었고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즌이 계속 이어진다면 좋은 성적이 나왔을 것”이라며 “아쉽지만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2주 격리가 끝나면 몸 상태가 많이 떨어질 것이다. 동계훈련을 통해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즌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팀이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결과를 내야 한다. 응원해주시는 팬들도 만족할 수 있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