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보아가 최근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 등을 신고 없이 일본에서 들여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에 대해 SM 측은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해외지사의 직원이 정식 수입통관 절차 없이 의약품을 우편물로 배송한 것은 사실이나 불법적으로 반입하려던 것이 아닌 무지에 의한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해외에서 정상적으로 처방받은 의약품이며, 일본에서는 의약품의 성분표 등 서류를 첨부하면 한국으로 약품 발송이 가능하다는 것을 현지 우체국에서 확인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SM에 따르면 보아는 최근 건강검진 결과 성장 호르몬 저하로 충분한 수면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아 의사의 권유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복용해 왔다. 그러나 어지럼증과 구토 등 소화장애의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나 일본 활동 당시 함께했던 직원에게 이 상황을 얘기하자, 해당 직원이 보아가 이전에 일본에서 복용했던 의약품을 대리처방 받아 한국으로 배송했다. 이 의약품은 보아가 해외 활동 중 시차 부적응으로 수면장애를 앓기 시작하면서 복용한 것으로,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M 측 공식입장과 현재까지 확인된 검찰의 조사 내용을 종합하면 보아의 졸피뎀 밀반입은 단순한 ‘절차 미비’의 문제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의약품에 대한 취급 및 수입을 위해 정부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해프닝’에 가깝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대리처방과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대리수령자의 범위로 위 조건과 함께 그 밖에 환자의 계속적인 진료를 위해 필요한 경우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사람으로 제한하고 있다. 사진=보건복지부 제공
그러나 ‘대리처방’ 부분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현재 일본에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환자 대신 대리인(대리수령인)이 병원에 가서 대리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보아 본인이 아닌 SM 일본지사 직원이 보아 대신 약을 처방받는 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것이 그를 옹호하는 측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자가 격리 환자나 의료 분야를 막론한 만성질환자, 고령자 등 고위험군 환자의 처방약을 담당 보건소 직원 등 의료 관계자가 한시적으로 대리처방 또는 대리수령 하도록 하는 등 유연한 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향정신성의약품의 경우엔 문제가 복잡하다. 현재 우리나라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비대면 진료와 대리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있기는 하나 의약품 수령에서는 ‘택배금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수령 방법을 ‘환자와 약사가 협의해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행 약사법에서 의약품의 판매 장소를 약국 또는 점포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향정신성의약품에 대해서는 이 같은 택배 배송이 마약 매매의 창구로 쓰이는 일이 많아 더 엄격한 제재가 이뤄진다.
의약품을 처방받거나 수령하는 대리인의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현행 의료법상 대리처방이 가능한 대리인은 △환자 부모 및 자녀(직계존속, 비속) △배우자 및 배우자의 부모(직계존속) △형제자매 △사위, 며느리(직계비속의 배우자) △노인의료복지시설 종사자 △그 밖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한 사람(교정시설 직원,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등)에 한한다. 환자와 같은 회사에 소속된 ‘직원’이 대리처방을 받아주는 일은 국내법상 위법의 소지가 높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만일 합법적으로 대리처방에 따른 의약품을 배송받고자 했다면 환자의 직계가족이 대리인이 돼서 의약품을 받은 뒤 이를 환자에게 직접 배송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SM 측은 이 사건에 대해 “무지와 실수로 인한 것”이라며 고의성이 없음을 재차 강조했다. 배송 당시 의약품의 성분표까지 첨부해 공개한 만큼 ‘향정신성의약품 밀반입’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이 사건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제까지 연예계에서 발생한 각종 향정신성의약품 관련 이슈 탓이다.
보아가 복용하는 수면유도제 졸피뎀은 불면증을 앓는 이들이 정신과 상담을 통해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장기간 복용하면 단기기억상실과 환각 증세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환각 증세를 노리고 불법적인 루트로 매매하는 이들이 많아 마약사범 검거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의약품이기도 하다. 방송인 에이미가 지인에게 다량의 졸피뎀을 받아 처방전 없이 복용했다가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은 일도 있다. 이처럼 이미 연예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온 민감한 사안에 대해 회사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아쉬움이 따른다.
익명을 요구한 전 아이돌 매니저는 “졸피뎀 같은 수면유도제는 알려진 연예인이라면 대부분 복용했거나 복용하는 중이라고 보면 된다. 워낙 수면시간이 부족해 그것마저 없으면 활동할 수 없어 거의 필수품 수준”이라고 귀띔했다. 수면이 부족하면 공황장애나 불안장애, 우울증으로 심화될 수 있어 빠른 시간 내에 수면 리듬을 돌리기 위해서는 수면유도제를 지속적으로 복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행사현장을 자주 다니는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들에게 이런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연예인들은 매니저가 일거수일투족 다 따라붙기 때문에 병원 상담을 받을 때도 매니저가 함께 가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의사나 직원들이 매니저 얼굴을 알고 있고, 나중엔 매니저만 가도 알아서 약을 전달해주는 일도 쉬쉬하며 있었다”며 “아마 이 건도 보아의 진료기록이나 처방전이 해당 병원에 보관돼 있기 때문에 직원이 대신 받는다고 하더라도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보아와 소속사 직원에 대한 조사를 끝낸 후 범행 경위와 고의성 유무 등을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