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4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2700선을 넘어 2731.45로 장을 마감했다. 사진=이종현 기자
이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과거에는 시가총액이 적은 상장사 셸(Shell·껍데기)을 인수한 뒤 펄(Pearl·진주)을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예를 들면 주가조작꾼들이 셸이 될 만한 기업을 인수한다. 여기에 바이오 기업 혹은 IT 기술 등 가치 산출이 어려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관련 기업을 인수한다고 발표해 주가를 띄운다. 주가조작꾼들은 미리 사놓은 주식을 팔아 폭등한 가격에 팔고 차익을 챙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방식이 달라졌다. 자신을 마이클이라고 소개한 주가조작꾼은 ‘과거의 방법과 달리 최근에는 키워드가 CB(전환사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CB를 이용하는 이유는 2018년 4월 금융위원회에서 코스닥 상장규정을 개정하고 보호예수 의무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업활동을 하지 않는 셸 회사로 최대주주가 변경될 경우 1년 동안의 보호예수의무가 부여되면서 주가조작꾼들이 주가를 띄워도 곧바로 팔 수 없게 됐다. 그러면서 등장한 게 CB다.
자금을 빌려주고 담보성으로 받은 CB는 주식으로 변환할 수도 있고 돈으로 돌려받을 수도 있다. 시중에 나온 CB를 인수해서 주가를 일정 수준 이상 띄우면 CB를 주식으로 교환해 그 차익을 챙기는 구조다.
이들이 주가 시세 차익이 아닌 CB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거래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적발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흔히 쓰던 주식을 매입한 뒤 시세 차익을 보고 빠지는 구조는 금융당국에서 쉽게 적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CB를 통한 우회 차익은 적발이 매우 어렵다.
최근 바뀐 트렌드의 주가조작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기업 사냥꾼이 적당한 CB를 보유한 회사 대표나 대주주와 연결이 된다. 기업 사냥꾼이 감독이라면 주가조작꾼은 선수다. 기업 사냥꾼은 어떤 셸을 붙일지 검토해 주가조작팀에게 전달한다. 주가조작팀에서 주포(주가조작을 설계하는 사람)격인 제임스는 ‘기업 사냥꾼이 회사 내부 정보를 통째로 전달해 준다’면서 메신저를 보여줬다.
제임스가 보여준 메신저에는 코스닥 상장사 B 사의 신규로 등재될 이사진, 주가 동향, 무상 증자 계획, 셸이 될 회사 인수 예정 정보 등 핵심 기밀 사항이 담겨 있었다. 제임스가 전달 받은 지 약 두 달 뒤 실제로 이 회사는 메신저 내용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공시했다. 주가조작꾼은 이런 기밀 사항을 토대로 주가를 부양할 계획을 짠다.
기업 사냥꾼과 주가조작꾼은 CB를 받을 약속을 하거나 CB를 인수한 뒤 주식을 매집하기 시작한다. 주식 매집은 여러 형태가 있는데 순매수팀, 수급팀, 종가 맞추기팀 등이 있다. 마이클은 “종가 맞추기팀은 차트를 이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장 종료 몇 분을 남겨놓고 시장가로 긁어서 무조건 목표 종가를 맞춘다”고 설명했다.
매집하는 팀은 높은 가격에 순매수만 하는 데다 금융당국의 적발을 피하기 위해 손해가 확정돼 있다고 한다. 대신 그 손해는 앞서 받은 CB를 분배해주거나 다른 주식을 주는 방식으로 보상된다. 이후에는 주식 동호회 추천, 유료 리딩방 추천, 문자 지라시, 포털사이트 주식토론방,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해당 주식을 추천해 가격을 올린다.
주가조작 세계를 그린 영화 ‘작전’ 스틸컷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지난 5년 동안 주가조작팀과 함께했다는 데이빗은 자신의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의 관심 종목을 보여줬다. 수십 개의 관심 종목 대부분이 거래 정지거나 상장 폐지된 상태였다. 데이빗은 “기업 사냥꾼이 만진 종목의 결과는 대부분 이렇다”고 말했다.
엄청난 거액을 매수했다가 손해를 보는 경우에도 이들을 찾는다. 데이빗은 “약 70억 원어치 한 종목을 샀다가 60% 이상 손실이 났던 대주주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면서 “동전주였던 해당 주식이 100원 오를 때마다 1억 원을 주겠다고 했던 적이 있다”면서 과거 메신저 대화 내용을 보여줬다. 그는 “비용 문제에서 합의가 안 돼 결국 없던 일이 됐지만 꽤 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주가조작에서 손을 뗐다는 데이빗은 “주가조작꾼들은 그 어떤 법적인 처벌도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은 안전하게 수익을 확정 짓고 대신 수많은 불특정 다수 및 지인들에게 피해를 전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CB를 이용해 법망을 피해가면서 수사기관과 금융당국을 농락하고 있다”며 “주식 추천이란 명목으로 각종 소셜미디어에 지라시나 홍보글을 돌리면서 개미를 끌어들인 뒤 자신들은 주식을 팔아 치우는 행각은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데이빗은 “상장사 대표가 기업 사냥꾼인 경우도 예상보다 흔하다. 상장사 대표인 C 씨가 잘 알려진 기업 사냥꾼이자 주가조작꾼이다. 대주주 말에 따라 주가를 올리다가 마음이 맞아 대표가 되는 경우도 있다”면서 C 대표와 같이 일하며 받은 인감과 등본, 초본 등을 보여줬다. 그는 “급등하는 코스닥 잡주 가운데에는 주가조작이 아닌 걸 찾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