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성장위원회는 매년 대기업의 동반성장 수준을 평가해 수치화하고 높은 점수를 받은 곳에 대한 시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12월 10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진행된 동반성장위원회 10주년기념 동반성장 대상 시상식 모습. 사진=동반성장위원회 제공
#‘동반성장’ 외치더니 ‘갑질’로 과징금 맞아
지난 12월 10일 동반위는 2019년 동반성장지수 최종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공표 대상 200개 기업 중 △최우수 35개사 △우수 62개사 △양호 67개사 △보통 29개사 △미흡 7개사로 나타났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79%가 중간 등급인 ‘양호’ 이상의 등급을 받은 셈이다. 결과만 놓고 보면 ‘상생’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 중에는 갑질 등으로 과징금을 맞은 곳이 적지 않다.
실제 동반위는 올해 공정위에서 하도급법 위반 등으로 심의를 받은 △롯데정보통신 △GS건설 △한온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중공업 △농협유통 △롯데슈퍼 등 7개사의 등급 재조정을 의결했다. 의결에 따라 5개사는 평가등급이 한 단계씩 낮아졌다. 하도급법을 위반한 GS건설은 ‘우수’에서 ‘양호’로, 롯데정보통신과 한온시스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양호’에서 ‘보통’으로 강등됐다.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농협유통은 ‘양호’에서 ‘보통’으로 등급이 내려갔다. 사실상 최하단계인 롯데슈퍼와 현대중공업은 보통 등급을 유지했다.
지난 12월 13일 공정위는 하도급 대금을 부당하게 낮게 결정한 GS건설에는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3억 8000만 원을 부과했다. 서면 교부 없이 하도급업체에 기술도면을 요구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는 시정명령을 조치했다. 지난 10월에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롯데슈퍼를 운영하는 롯데쇼핑과 씨에스(CS)유통에 대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혐의로 과징금 총 39억 1000만 원을 부과했다. 롯데정보통신은 불공정 하도급 거래행위로 과징금을 맞았다. 납품업체로부터 부당한 장려금을 받고, 직원 부당 사용, 계약서 미교부 등 갑질 행위를 저질른 농협유통과 농협하나로마트에는 과징금 총 7억 8000만 원이 부과됐다.
동반위로부터 감사패를 받은 최우수 등급의 기업 역시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네이버는 쇼핑·동영상 검색 알고리즘을 자사에 유리하게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공정위로부터 총 26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GS리테일은 납품업체로부터 부당하게 판촉비·판매장려금을 받고, 정당한 사유 없이 제품을 반품한 사실이 적발돼 과징금 10억 5800만 원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양호 등급을 받은 롯데하이마트는 판매 장려금 부당 수취, 납품업체 파견 종업원 부당 사용 등의 대규모유통업법 위반 행위로 과징금 10억 원을 부과받았다. 납품업체 80곳으로부터 부당하게 받아낸 183억 원을 롯데하이마트의 회식비나 포상비 등으로 사용해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대리점 점주들에게 판촉비용을 떠넘긴 한샘은 시정명령과 과징금 11억 5600만 원의 제재를 받았다.
올해 공정위가 최종 의결서를 작성한 과징금 규모를 순서대로 정리했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2019년보다 280% 증가한 과징금 규모
12월 18일 공정위 최종 의결 기준 올해 과징금 규모는 약 2130억 원을 기록했다. 2019년 과징금 760억 원보다 약 280% 증가한 수치다. 그룹별로 살펴보면 △SPC 647억 원 △롯데 605억 원 △금호아시아나 320억 원 △현대중공업 218억 원 △한화 156억 원 △CJ 78억 원 △삼성 36억 원의 순으로 많았다.
SPC그룹이 6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은 것은 계열사 간 부당거래 때문이다. 게열사 간 부당거래 역시 중소 협력사와의 공정한 경쟁은 물론 사업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상생을 저버렸다는 지적이 피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오너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를 위해 파리크라상·SPL·BR코리아 등 SPC그룹 계열사가 SPC삼립을 7년간 부당하게 지원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과징금뿐만 아니라 3개 계열사와 허영인 회장, 조상호 전 총괄사장, 황재복 파리크라상 대표를 검찰에 고발했다. 롯데그룹은 최종 의결되지 않은 롯데하이마트와 롯데쇼핑, CS유통의 과징금을 합하면 SPC그룹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설 전망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매년 중소·협력기업과의 공생을 외친 것과 상반된 결과다.
현대중공업그룹 역시 다르지 않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207개 사내 하도급업체에 ‘선시공 후계약’을 강요했다. 하도급업체는 한국조선해양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사내 하도급업체들에 제조원가보다 낮은 단가로 하도금 대금을 정했고, 사외하도급업체들에게는 하도급대금을 강제로 부당하게 낮춰서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최종 의결되지 않은 과징금도 상당하다. 지난 7월 하도급 업체의 기술을 빼돌려 다른 하청업체에 넘기고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은 사실이 적발돼 9억 70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기술자료 유용행위로 부과된 과징금으로는 역대 최고액이다. 지난 11월에는 하도급업체의 기술 자료를 빼앗아 제3의 업체에 넘기는 등의 불공정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한화그룹은 총수일가를 부당지원한 행위로 적발돼 검찰에 고발당했다. 한화솔루션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친누나 김영혜 씨가 지배주주로 있는 한익스프레스를 부당지원하면서 시정명령과 과징금 156억 8700만 원을 부과받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계열사 인수를 통한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박삼구 전 회장 등 총수일가 중심 지배구조의 정점에 위치한 금호고속을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공정위 조사결과 드러났다.
올해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작년보다 280% 증가한 2130억 원대로 나타난 가운데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본희의 통과 규제 대상과 과징금이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공정거래법 개정안 내년 시행돼
2021년에는 공정거래법 강화로 규제 대상과 과징금이 늘어난다. 지난 12월 9일 공정거래법 제정 이후 40년 만에 전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당초 정부안에 포함된 ‘전속고발권 폐지’는 결국 무산됐다. 현행처럼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다. 다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를 비롯한 나머지 조항은 그대로 통과했다.
법 시행 시기인 2021년 말부터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는 현행 210개에서 598개로 늘어난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기업들이 공정위의 제재를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기준인 총수일가 지분 기준이 ‘상장사 30%·비상장사 20%’에서 일괄 20%로 변경된다. 이들 기업이 지분 50%를 넘게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 대상이다. 지주회사가 의무 보유해야 하는 자·손자회사 지분율이 높아진다. 현행 ‘상장회사 20%·비상장회사 40% 이상’에서 ‘상장회사 30%·비상장회사 50% 이상’으로 늘어난다.
공정위의 과징금은 2배로 늘어난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합에 대한 과징금은 관련 매출액의 10%에서 20%로, 시장지배력 남용행위는 3%에서 6%로, 불공정거래행위는 2%에서 4%로 각각 상향 조정된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