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지나치게 물질 중심적이고, 사회적 관계의 질이 낮다. 이는 한국의 낮은 행복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특히 물질중심주의적 가치관은 최빈국인 짐바브웨보다 심하다.”
왜 저 문장을 읽는데 ‘너나 잘하세요’ 하고 말을 돌려주고 싶지 않고, 남이 보는 우리가, 우리가 그린 자화상인 것 같아 허탈하고 쓸쓸했다.
우리의 삶은 정말 저 물질이 중심인 것 같다. “부자 되세요”라는 이상한 인사에서도 드러나지만 경제와 경쟁이라는 지고한 목적이 우리 삶을 온통 도구화한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경제와 경쟁 주변에서 ‘불가원 불가근의 당신’들의 네트워크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미래의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원으로 뺑뺑이 돌려지는 사회, 생에 대한 독특한 감수성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사춘기 내내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에 짓눌려야 하는 사회, 대학에 들어가서는 그럴듯한 미래의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에서 성형까지 모든 걸 고민해야 하는 사회.
그렇듯 젊음을 온통 희생했는데 그에 대한 보상도 없다면 분노가 악몽처럼 그 사람을 사로잡지 않겠는가. 그 가위눌림 속에서 점점 황폐해가는 인생이 삶을 통째로 희생하고 지향해갔던 그 물신의 꿈을 어찌 쉽게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바쁘게 살면서 삶을 희생하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러니 “한국 사회가 이 상태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더 잘살게 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는 디너 교수의 말에 귀 기울일 밖에.
요즘 내가 발견한 행복한 작가 중에 우 조티카라고 하는 미얀마의 수행자가 있다. 그의 책 <여름에 내린 눈>에는 바로 희생의 본질이 나온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빚을 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당신이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킬수록 상대방은 더욱 당신을 피할 것입니다.”
저 이야기는 삶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삶은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삶이 사랑하는 자는 지금 이 시간을 충만하게 사는 사람이다. 늘 일을 쌓아 놓고 일에 쫓기며 시간이 돈이 되는 묘미 속에서 긴장감 있게 사는 것을 제대로 잘 사는 것인 줄 아는 우리들에게 바쁘게 살지 말라고, 바쁘기만 한 것은 제 정신을 잃는 지름길이라는 우 조티카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해왔습니다. 의무감으로,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싫은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말입니다. 이제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것,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 살며 상대를 통제하고 규제하는 것, 배고프지 않는데 먹는 것, 그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거라고.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