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안철수 대표가 출마 변으로 내세운 것은 ‘반문재인 연대’다. 안 대표는 “서울의 시민후보, 야권 단일후보로 당당히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면서 “문재인 정부의 폭주와 무도하고 무법한 여당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끝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야권 전체를 향해 단일화에 나서달라고 호소하는 동시에, 자신의 서울시장 출마가 반문 연대 구축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여야를 떠나 출마 선언 시기만 놓고 보면 적절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대통령과 집권당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대안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지만 정작 국민의힘은 맥을 못 추는 상황”이라면서 “중도층을 견인할 수 있는 보수 후보 중 한 명인 안 대표 출마 선언으로 야권이 재편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는 앞으로 안 대표의 공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관계자들은 안 대표에게 서울시장 출마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2021년 4월 재보선과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그리고 안 대표 존재감은 미미하기만 한 상황이다. 당내에선 1야당인 국민의힘과의 합당 등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지 않고선 당이 해체 수순을 밟은 것이란 전망이 파다했다. 이러한 기류를 당의 최대주주이자 수장인 안 대표가 모른 체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안 대표의 한 최측근 인사는 “안 대표가 여러 번 자신의 목표는 차기 대선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반문 연대를 명분으로 내걸긴 했지만 당에서 분출하는 불만과 우려에 떠밀리듯 출마를 선언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어찌됐건 이슈 모으기엔 성공한 것 같다. 최근 안 대표가 이렇게 언론에 나온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플보단 악플이 낫다. 벼랑 끝에 선 국민의당이나 안 대표로선 잃을 게 없는 출마”라고 덧붙였다.
화제성과는 별개로 안 대표 출마 선언의 파급력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린다. ‘2011년 안철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지지율 50%를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안 대표는 서울시장과 대선후보 자리를 연이어 양보한 뒤 2013년 무소속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 이후 정치적 내리막을 걸었고, 2018년엔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다가 3위에 그쳤다. 안 대표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두고 평가절하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여권에선 냉소와 비판을 쏟아냈다. 신동근 민주당 최고위원은 “안철수 현상이 없다는 걸 안 대표만 모른다는 게 비극”이라고 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점점 쇠락해가는 국민의당 당세와 점점 떨어지는 존재감을 끌어올리려는 고육지책의 출마선언 악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도 “변절자의 예정된 말로는 결국 낙선”이라고 꼬집었다. 안 대표가 과거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대표를 맡았던 것을 언급하며 비판한 것이다.
12월 1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회의실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를 놓고 정가에선 민주당의 위기감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안 대표 출마 선언을 계기로 야권 단일화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경우 민주당으로선 서울시장 선거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예전만 못하다하더라도 전국적 인지도를 갖고 있는 안 대표가 야권 후보 경선전에 뛰어들면 흥행 성공 가능성도 높다. 이에 대해 앞서의 민주당 중진 의원은 “안 대표가 일단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만으로 민주당엔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후보가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다소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최대한 반응하지 말라”고 주문했지만 안 대표 출마 선언을 놓고 셈법 계산이 분주하다. 서울시장 후보군 대부분은 안 대표가 입당한 뒤 경선을 통해 후보를 뽑자는 입장으로 전해진다. 김 위원장도 “(야권의) 여러 후보 중 한 명”이라며 여기에 힘을 보탰다. 안 대표가 출마 선언에서 ‘야권 단일후보’라는 표현을 쓴 것에 대해선 불쾌감마저 감지된다.
하지만 당 일각에선 안 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로 김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당 일부 중진들 사이에서다. 이들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후보를 뽑은 뒤, 안 대표와의 단일화를 추진하자고 주장한다. 안 대표도 내심 원하는 방안이다. 안 대표 측 인사는 “안 대표가 국민의힘으로 들어가서 경선을 치르면 백전백패다. 기존 후보들에 비해 조직력이 턱없이 열세이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여론조사를 통한 당 대 당 단일화라면 해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놓고 국민의힘에선 부정적 견해가 우세하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의석수가 100석이 넘는 제1야당이 단 3석에 불과한 당과 당 대 당 단일화를 하는 게 사리에 맞는 일이냐”면서 “안 대표가 지지율이라도 높으면 모르겠다. 지지율도 의미를 두기 어려운 수치인데 무엇을 믿고 단일 후보 운운하는지 모르겠다”라고 꼬집었다. 서울시장 후보군인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도 “경선 없이 쉽게 가고 싶은 ‘꽃철수’는 안 된다”며 국민의힘 안에서의 경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안 대표 출마 선언을 놓고 국민의힘 내홍이 불거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그 이면엔 김종인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파워게임이 자리 잡고 있다. 국민의힘 또 다른 의원도 “안 대표가 ‘반문’을 연결고리로 하는 연대를 외치며 출마를 선언했지만, 결과적으론 제1야당이 분열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면서 “안 대표로 인해 지금 당에서 논의되고 있는 재보선 전략이 바뀌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안 대표가 진짜 서울시장이 되고 싶다면 국민의힘 룰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를 종합했을 때 현실적으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당 소속과 상관없이 모든 후보들이 ‘반문 연대’ 빅텐트 아래 통합 경선을 치르는 것이다. 이른바 ‘원샷 경선’이다. 안 대표로선 국민의힘 입당에 따른 리스크를 피할 수 있다. 국민의힘 역시 흥행과 본선 경쟁력을 위해서라면 굳이 당내 경선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안 대표와 국민의힘 양측 모두 타협이 가능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처럼 안 대표 출마 선언을 놓고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분출하고 있는 가운데, 안 대표 개인으로서도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도전이 될 전망이다. 서울시장 경선 또는 본선에서 의미 있는 성적을 내지 못하면 안 대표는 정치적 재기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안 대표가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정가에선 또 다른 노림수가 담겨 있을 것으로 본다. 안 대표 정치 알람이 4월 재보선이 아닌 2022년 대선에 맞춰져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국민일보 의뢰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12월 9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결과에 따르면 안 대표 지지율은 2.9%에 불과했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차기 후보들 중 최하위권이다. 앞서 언급했듯 당내 사정도 녹록하지 않았다. 안 대표로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고, 서울시장 출마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판을 흔드는 데엔 일단 성공했다는 평이다. 안 대표 측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서울시장 경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 거론되는 후보들과 붙었을 때 승산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후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다. 오히려 본선에 나가서 지는 것보단 낫다. ‘반문 연대’ 기치를 들어 올려 야권 단일화에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만으로도 안 대표에겐 남는 장사다. 야권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하면 안 대표 공이 재평가될 것이다. 또 제1야당인 국민의힘과 함께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이는 향후 대선에서 안 대표에게 큰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