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미국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키로 하면서 신사업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러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이번 인수에 직접 사재를 투입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정의선 사재 출연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쏠리는 시선
현대자동차그룹은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해 실질적으로 경영을 총괄하게 된 이후 그랩과 올라, H2 Energy 등 다수 글로벌 모빌리티 스타트업과 자율주행 전문 업체, 수소에너지 기업 등에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1월에는 미국 우버와 개인용 비행체(PAV)를 기반으로 한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 분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그러나 우버가 지난 12월 8일 자율주행차 사업부문 매각에 이어 에어택시 사업부문을 매각한다고 밝히면서 우버와 맺은 UAM사업 동맹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의 ‘로봇 벤처’로 꼽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약 1조 원에 인수키로 결정하며 투자의 고삐를 죄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0월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첫 대규모 인수합병(M&A) 건이다. 더욱이 이번 인수는 정 회장이 직접 사재를 투입해 눈길을 끈다. 정 회장은 그룹이 인수하는 지분 가운데 20%를 2400억 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지분은 현대차(30%)와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가 보유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수를 통해 로봇 사업을 새로운 비즈니스로 육성할 계획이다. 향후 로봇 주요 부품 공급과 로봇을 활용한 물류 자동화 등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우선 물류 로봇시장에 진출, 물류 로봇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활용해 이동형 로봇 시장에 진입하고 이후 개인용 전문 서비스가 가능한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로봇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로봇 신사업을 위해 다수 기업을 인수하기보다 관련 기술을 모두 갖고 각각 기술력 또한 모두 글로벌 톱 수준인 기업 인수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다만 정 회장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에 사재를 투입한 것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오너로서 신사업에 대한 의지와 책임감을 보여줬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 상승을 위한 것이란 비판이 동시에 나오는 것.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12월 15일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이사회에 공문을 보내 정 회장이 직접 지분 일부를 인수하게 된 이유와 인수 과정의 적법성 여부를 질의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로 시너지가 예상되는 계열회사가 지분 80% 전부를 인수하지 않고 일부를 정 회장 개인이 인수토록 한 것은 해당 회사 및 현대차그룹의 사업기회를 유용한 것으로 볼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미국 실리콘밸리에 그룹 차원의 투자회사(CVC)를 설립하고 신사업 확대 기회를 엿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CVC 움직여 신사업 발굴하는 총수와 오너 3‧4세
2018년 6월 취임한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에 그룹 차원의 투자회사(CVC)를 설립하고 신사업 확대 기회를 엿보고 있다. 구 회장 취임과 동시에 출범한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최근 공식 출범한 그룹차원의 AI(인공지능) 전담조직 ‘LG AI연구원’과 함께 신사업을 발굴‧육성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LG테크놀로지벤처스는 AI연구원 공식 출범 전후로 AI비주얼 검색기술 업체 SYTE(사이트)와 양자컴퓨팅 회사 시큐시(SEEQC)에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LG테크놀로지벤처스에 이어 LG전자의 ‘북미이노베이션센터’ 또한 2021년 실리콘밸리에 진출한다. LG전자는 지난 11월 조직개편을 통해 오는 1월 북미이노베이션센터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단순 투자를 넘어 협업까지 추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다수 대기업이 국내에서 CVC를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 금산분리 규제로 어려움이 있다”며 “반면 유망 글로벌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신기술 벤처를 발굴하기 쉬워 전사적으로 AI에 역량을 집중키로 한 LG가 연이어 진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총수뿐 아니라 승계가 점쳐지는 그룹 후계자들과 오너일가 3‧4세의 CVC 투자도 눈길을 끈다. 지난 11월 인사와 12월 초 지분 증여 등으로 오너가 4세대가 약진한 GS그룹 또한 4세대가 CVC를 맡아 이끌고 있다. GS그룹은 지난 7월 주요 계열사 10곳이 출자해 미국 실리콘밸리 CVC ‘GS퓨처스’를 설립했다. 그간 GS홈쇼핑을 중심으로 진행해오던 벤처 투자를 그룹 차원으로 확대한 셈이다. ‘GS퓨처스’의 대표를 맡은 오너가 4세 허태홍 씨는 GS홈쇼핑 벤처투자팀 매니저, GS홈쇼핑 투자‧컨설팅 자회사 GSL Labs 이사 등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아예 사업형 투자회사 전환 예고하며 나서기도
아예 기업이 사업형 투자회사로 전환을 예고하며 오너 3세가 나선 경우도 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 SK네트웍스 기획실장은 지난 12월 3일 단행한 조직개편과 인사에서 SK네트웍스 사업총괄직에 선임됐다. SK네트웍스는 사업형 투자회사로 전환을 예고하고 사업총괄 직책과 경영지원본부를 신설했다. 최성환 기획실장은 앞으로 SK네트웍스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M&A를 추진하는 등 그룹의 신사업 투자 선봉에 서게 됐다.
한편 두산그룹 4세대 박재원 두산인프라코어 상무가 이끄는 벤처투자 회사 ‘D20 캐피털’은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따라 향방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D20 캐피털은 2019년 4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설립될 당시 두산인프라코어가 설립 자금을 댄 자회사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D20 캐피털은 활발히 투자 활동을 진행해왔고, 현재에도 투자를 검토 중”이라며 “인프라코어에서 시작된 만큼 아직은 그룹 전체보다 두산인프라코어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벤처 지원 등 경영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 따른 D20 캐피털의 향방에 대해서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고, 별다른 계획이나 움직임은 없다”고 덧붙였다.
2020년 6월 나스닥에 상장한 미국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 투자로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한화그룹 3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됐다. 2018년 한화의 벤처 투자조직이 니콜라에 대한 투자 필요성을 검토한 끝에 한화에너지와 한화종합화학이 총 1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관 사장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지난 9월 이후 니콜라가 기술력을 과장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기로 결론날 경우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것은 물론, 니콜라를 교두보로 미국 수소시장에 진출하려던 그룹 차원의 사업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