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리플랫.
[일요신문] 합계출산율 0.92명.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안 낳는 나라인 대한민국의 정부가 향후 5년간 인구 정책의 근간이 될 제4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교육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가 함께한 이번 계획은 12월 15일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심의, 확정됐다.
정부도 저출산의 원인은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고용 형태, 기업 규모, 직종에 따른 임금 격차와 고용 안정성 차이가 저출산의 첫 번째 원인이라고 봤다. 또한 주택 가격의 가파른 상승이 결혼을 어렵게 하고, 무주택자의 출산율을 낮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외에도 임금, 일자리 질 등에서 남녀 성차별적 구조가 지속되고, 가사 노동과 돌봄 수행을 여성에게만 맡기는 현실이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즉 기본적 생활(안정된 직장과 소득, 주택, 돌봄)이 갖춰지지 않으면 저출산은 해결할 수 없다고 정부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계획 역시 근본적인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4차 기본계획의 주요 내용은 먼저 2022년부터 영아수당을 신설해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현재 0세는 월 20만 원, 1세는 월 15만 원의 양육수당이 지급되고 있는데 2022년부터 영아수당이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2025년에는 월 50만 원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임신, 출산 진료비도 현행 60만 원에서 100만 원으로 인상하고 아동 출생 시 일시금 200만 원의 바우처도 신규 도입한다.
0~1세의 경우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육아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영아수당과 진료비를 인상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영아수당이 50만 원과 출생 바우처 200만 원을 받기 위해 안 낳으려던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부부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육아휴직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생후 12개월 내 자녀가 있는 부모가 3개월 육아휴직 사용 시 각각 최대 월 300만 원(통상임금의 100%)을 지원하고 1개월 사용보다 3개월 사용 시 더 많은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의무화 없는 육아휴직은 소수를 위한 특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통 육아휴직은 공무원과 공공기관,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사용하기 어렵다. 소규모 회사에서 육아휴직은 꿈도 꾸기 힘들다. 육아휴직 대체 인력 채용은커녕 기존 직원들이 휴직자 일을 떠맡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성이 육아휴직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의 회사가 적지 않고 여성의 경우 임신과 함께 퇴사를 준비해야 하는 직장도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정부는 현재는 여성, 대기업 노동자가 많으니 앞으로는 남성,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로자도 육아휴직을 당연하게 사용하는 문화를 조성하겠다고 한다. 온실 속 공무원들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얘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2019년 육아휴직 사용자는 10만 5000명이었다. 이 중 공무원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정부는 이번 조사에서 밝히지 않았다. 노동계는 중소기업 이하 노동자의 육아휴직 사용 비율을 조사한다면 육아휴직의 소득대체율과 지원금을 올리기보다 육아휴직 의무화에 우선순위를 두는 편이 정부의 저출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다자녀 정책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다자녀 가구 전용 임대주택 2만 7500호를 2021년부터 2025년에 걸쳐 공급하고, 다자녀 기준도 3자녀에서 2자녀로 단계적 확대키로 했다. 일정 소득 이하(학자금 지원 8구간 이하) 3자녀 이상 가구의 셋째 자녀부터는 2022년부터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는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이 정책 역시 이미 다자녀를 둔 가정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다자녀 가구를 늘려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근본 대책으로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연평균 5500호에 불과한 공급량은 기존 다자녀 가구의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출산율 제고를 위해선 더는 미봉책이 아닌 환부에 직접 메스를 대는 걸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청년들 사이에서 나온다. 유의미한 부의 재분배를 통한 소득 격차 감소, 주거 안정, 출산과 보육, 돌봄 영역에서의 국가 역할 확대가 그것이다. 출산 장려금, 아동수당의 인상이 저출산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그동안의 저출산 정책의 결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11@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