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은행주는 연말에 강세를 보여 왔다. 12월 말까지 주식을 가지고 있으면 이듬해 배당금을 받을 수 있어서다. 특히 은행주는 5%대의 고배당주로 꼽히는 만큼 11~12월 주가가 오르는 경향이 높다. 실제 2019년 12월 16일엔 4대 금융지주 주가가 일제히 장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러나 2020년의 분위기는 다르다. 배당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면서 12월 코스피가 5% 이상 상승하는 가운데에서도 은행주는 외면을 받는 모습이다.
연말 강세를 보였던 금융주가 금융당국의 배당 자제 압박이 시작되면서 외면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과 개별 시중은행 및 주요 금융지주들은 배당 축소 방안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금감원은 최근 협의 과정에서 배당성향을 20%로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보다 5~7% 낮은 수준이다. 신한·KB·하나·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들은 2019년 25~27%의 배당성향을 보였다. 우리금융이 27%로 가장 높았고 KB금융과 하나금융이 26%, 신한금융이 25%였다.
금감원은 금융지주들이 번 돈을 곳간에 쌓아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은 만큼 위기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예상보다 사태가 길어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배당을 줄이고 손실 흡수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인데, 압박 강도가 높다. 금감원은 배당 축소 권고와 함께 코로나19와 같은 비상상황에 금융회사의 배당 제한을 제도화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금감원은 현재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위기대응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각 은행으로부터 기초 자료를 제공받아 2021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최악을 기록할 경우와 최상을 기록할 경우 등 여러 시나리오를 가정해 은행들의 체력을 가늠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이 테스트가 마무리되는 대로 금융사들과 협의를 마치고 최종 배당성향 권고안을 마련해 통보할 예정이다.
해외 금융당국도 코로나19 여파에 따라 은행들에 배당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은행은 민간회사지만 공공성을 띠는 만큼, 부실화되고 그 여파가 실물로 이어지는 경제 충격을 미리 대비하기 위해서다. 미국, 유럽, 영국, 스웨덴, 호주 등의 금융감독기구는 지난 3~4월 금융사들에 배당과 임직원 성과급을 줄이라고 요구했다.
금감원도 2020년 초부터 줄곧 국내 금융권에 배당 자제를 권고해왔다. 지난 7월에는 하나금융지주가 금감원 권고에도 중간배당을 예정대로 실시하자 윤석헌 금감원장이 공개적으로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은행의 자본 건전성을 강조하며 은행권의 배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기획재정부까지 나섰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최근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금융사 선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금융기관 스스로가 손실 흡수 여력을 보강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사실상 정부 차원에서 배당자제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은 곤혹스러운 처지다. 금융당국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지만,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2020년 4대 금융지주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9조 700억 원으로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1% 증가했다. 코로나19 관련 정책에 따라 대출 만기를 연장시키면서 부실률은 낮아졌고, 대출은 늘어 이자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반면 주가는 성과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 코스피가 25%에 육박할 정도로 급등했지만 국내 4대 금융지주들의 수익률은 전부 마이너스(-)다.
배당을 통해 주주들과 과실을 나누고, 다시 투자를 끌어내는 선순환을 노려야 하지만 배당 축소 권고에 따라 이를 기대하기 힘들어졌다. 최근 증권사 보고서에 따르면 금감원의 배당 축소 권고 압박이 높아진 이후부터 국내 기관들이 약 900억 원어치를 순매도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개인 투자자들과 외국인들의 순매수가 소폭 늘었지만 주가 방어엔 역부족”이라며 “주주 입장에선 안 그래도 주가가 떨어진 은행주 등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사진=최준필 기자
개별 금융사 별로 보면, 우리금융의 경우 금감원과 최대주주이자 공적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예금보험공사 입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예보는 과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합병 과정(이후 한빛은행, 우리은행의 전신)에서 총 12조 8000억 원을 투입했고, 꾸준히 상환을 받았지만 현재 약 1조 5000억 원이 남아있다. 오는 2022년까지 지분 매각을 통한 우리금융의 완전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배당이 줄면 예보가 가져가는 배당금도 줄고, 이후 주가 상승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만큼 민영화 작업에도 차질이 생긴다.
IBK기업은행도 비슷한 처지다. 최대주주가 기획재정부로, 2020년 국가부채 급증으로 배당 수익을 늘려야 한다. 2019년 기업은행 배당성향은 32.5%였는데, 2020년 금감원 권고를 따르면 대폭 배당 수익이 낮아지게 된다.
신한금융과 KB금융의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 변수다. 신한금융은 지난 9월 1조 1528억 원의 유상증자를 했는데,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와 베어링프라이빗에쿼티아시아가 참여했다. 향후 이사회에 참여할 예정이라 앞으로 배당에 신경을 써야 한다. KB금융도 칼라일을 투자자로 받아들였다. 특히 배당성향을 꾸준히 늘려왔던 만큼 곤란한 상황이다.
금융지주들은 배당을 하더라도 자본 적정성 등 금융사의 건전성 측면에서 부담이 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실적을 기준으로 배당을 할 경우와 하지 않을 경우의 총자본비율 차이는 0.2~0.3%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 금융권 분석이다.
다른 금융지주 관계자는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2020년 충당금도 충분히 적립했고, 실적도 선방한 편”이라며 “금융당국의 취지를 모르는 게 아니지만 주가와 주주들의 입장을 고려해 균형점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단 이번 배당은 자제를 하고, 2021년 이후에 배당을 조금 더 하는 방향으로 설득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