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감독은 울산 사령탑으로 숱한 좌절 끝에 마지막 대회에서 최대 성과를 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반복된 좌절, 우승 직후 ‘죄송합니다’ 외친 감독
울산엔 더욱 뜻 깊은 우승이었다. 앞서 울산은 2020시즌 K리그와 FA컵에서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3개월가량 리그 선두를 달리다 막판에 우승컵을 내줬다. 두 대회의 우승을 내준 팀이 모두 라이벌 전북 현대였기에 더욱 뼈아팠다. 울산은 2019년에도 시즌 막판 우승을 내준 경험이 있다.
ACL의 극적인 우승에서 누구보다 많은 조명을 받은 사람은 김도훈 감독이다. 2017시즌을 앞두고 울산에 부임한 김 감독은 아시아 최고 자리에 팀을 올려놓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우승 상금은 400만 달러(약 44억 원)이다.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클럽월드컵에 나서면 수십억 원대의 참가 수당도 기대할 수 있다.
그동안 김도훈 감독은 누구보다 마음의 짐이 무거웠을 터다. 우승을 확정 지은 직후 열린 시상식에서 기쁨을 만끽하던 울산 선수들 중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들고 소셜미디어로 즉흥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다. 그중 홍철이 김도훈 감독을 향해 소감을 물었다. 김 감독의 대답은 “죄송합니다”였다. 팀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성과를 냈음에도 지난 준우승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한 것이다.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5시즌 인천 유니이티드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울산이 감독직을 맡은 두 번째 팀이다. 팀을 4위에 올려놓으며 무난한 데뷔 시즌을 보냈고 F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구단 역사상 첫 FA컵 우승으로 박수를 받았다.
김도훈 감독의 2년차부터 울산 구단은 우승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섰다. 박주호 황일수 등 해외 무대에서 활약하던 국가대표급 자원을 영입했고 리그 내 경쟁팀에서도 베테랑 이근호, 외국인 공격수 주니오를 데려왔다. 2019시즌을 앞두고도 김보경 신진호 윤영선 주민규 등을 영입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리그 우승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2018시즌 리그 순위를 한 단계 올려 3위를 기록했고 2019시즌에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리그 막판까지 우승경쟁을 했지만 눈앞에서 우승을 놓쳤다.
김도훈 감독이 우승 직후 팬들에게 전한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그간의 마음고생을 직감할 수 있는 대목.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유난히 흔들렸던 2020시즌
경질 여론이 일기도 했지만 울산 구단은 김 감독에게 다시 한 번 힘을 실어줬다. 김기희 윤빛가람 이청용 조현우 등 스타들이 울산으로 운집했다.
자연스레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김도훈 감독은 기대에 부응하듯 안정적 운영을 이어나갔다. 전북과 선두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였던 1년 전과 달리 1위에 올라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 길었다. 하지만 울산은 2020시즌 K리그에서도 준우승을 했다. 27경기 중 4패만 기록했지만 그 중 3경기를 전북에 헌납했다. 결국 우승컵은 2019년에 이어 전북에 돌아갔다.
김도훈 감독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전북전 3경기에서 5골을 내주는 동안 1골밖에 넣지 못했다. 그마저도 페널티킥 골이었다. FA컵 결승전에서도 전북을 만났으나 1, 2차전으로 치러진 결승전에서 1무 1패로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전북과의 천적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다. 김 감독을 향한 비판이 절정을 이뤘다.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기에 울산과 김 감독의 인연이 이어지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실제 구단이 다른 감독과 접촉한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던 김도훈 감독은 2020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마침내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아시아 정상 오르며 ‘유종의 미’
연거푸 리그에서 고배를 마신 까닭에 울산은 아시아챔피언스리그가 열리는 카타르로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떠났다. 부상선수가 많았고 해외 원정 경기를 치른 국가대표 선수들을 일부 제외하고 카타르로 떠난 타 팀(전북 수원 서울)과 달리 울산은 코로나19에 감염된 골키퍼 조현우 정도를 제외하면 정예 멤버를 꾸렸다.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보인 타 K리그 팀들과 달리 울산은 카타르에서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조별리그에서 조기에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는 여유 있는 대회 운영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도 경기에 나서며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했다. 이번 대회는 한 달 이내의 짧은 기간 동안 9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이었다.
김 감독은 대회 중 부상 선수 발생에도 적절히 대처했다. 대회 기간 내 복귀가 불가능한 선수들을 국내로 돌려보냈지만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공백을 메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는 짦은 시간만 출전시키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대회 기간 내내 출전시간 관리를 받은 이청용은 결승전에서 페널티킥을 만드는 크로스로 이에 화답했다.
불과 1개월 전 김도훈 감독은 혹독한 비판을 감내해야 했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일정이 끝나면 울산과 결별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 결승전을 앞두고선 직접 “울산 소속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울산 감독으로서 마지막 경기에서 최대 성과를 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산을 떠나면 다음 행선지를 걱정해야 했지만 아시아 챔피언 자리에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축구계 일각에선 “해외 진출도 가능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는 우승 이후 “일단 집으로 돌아가 와인 한잔 하면서 쉬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큰 상처를 입었지만 큰 트로피로 ‘치유’한 김 감독이 향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눈길이 쏠린다.
김도훈 감독 ‘울산에서의 4년’ 성적표 통산 196경기 106승 50무 40패 2017시즌 - K리그 4위, FA컵 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탈락 2018시즌 - K리그 3위, FA컵 준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2019시즌 - K리그 2위, FA컵 32강 탈락,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2020시즌 - K리그 준우승, FA컵 준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