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코로나19 백신이 확보될 경우 북한과 나눠 협력할 수 있다”며 대북 백신 공급에 긍정적 시그널을 보내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12월 8일 통일부 당국자는 대북지원용 코로나19 백신 확보를 위해 보건당국과 협의하고 있는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북한은 물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보건 협력 연장선상에서 (백신)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정부 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답했다. 당국자는 “(대북 공유) 백신 확보와 관련해 보건 당국과 구체적인 협의 절차는 없었다”면서 “감염병 문제는 국경이 없는 문제인 만큼 남북간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앞서 11월 18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KBS ‘9시뉴스’ 인터뷰에서 “코로나19 백신이 확보될 경우 북한과 나눠 협력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장관은 “우리가 많아서 나누는 것보다도 좀 부족하더라도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게 더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장관 인터뷰가 공개된 다음 날인 11월 19일 북한 기관지 노동신문이 응답했다. 노동신문은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느냐”며 코로나19 방역 관련 외부 협력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통일부의 ‘대북 백신 공급’ 러브콜은 멈추지 않았다. 이 장관은 12월 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다시 한번 대북 백신 공급과 관련해 입을 열었다. 이 장관은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남북간 교감이 있느냐는 질문에 “직접적인 반응이 없다”고 했다.
이 장관은 대북 백신 공급에 대해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면서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백신은 정부가 책임지고 확보할 것이고 치료제 및 진단키트는 일정 부분 (대북 협력) 여력이 있을 거라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이 사용할 백신 분량을 먼저 확보하고 별도로 북한 지원 수량을 챙길 것이냐는 질문에 이 장관은 “아직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12월 15일 북한이 이미 러시아로부터 백신을 공급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 정보기관 관계자와 북·중 무역 관계자를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코로나19 백신을 구입해 접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이 언급한 러시아산 백신은 스푸트니크V로 러시아 정부가 8월 긴급사용을 승인한 제품이다.
러시아 국부직접투자펀드(RDIF) 대변인은 “북한이 스푸트니크V 백신 구입을 요청한 적 없다”면서 “계약을 체결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일본 언론 보도를 정면 반박한 셈이지만, 정확한 사실관계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한 중국 거주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국경을 완강하게 걸어 잠그고 있지만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는 내부적 논의는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소식통은 “최근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반박한 것은 사실관계를 떠나 러시아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라고 했다.
이 소식통은 “대북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 코로나19 백신을 공급했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없을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백신을 나눠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데 북한 입장에선 어떤 상황이든 자신들만의 활로를 개척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코로나19 협력에 응하는 ‘불리한 방식’으로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일부 러브콜에 한 안보단체 관계자는 “백신을 확보하는 이슈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다”면서 “우리 국민이 접종받을 백신도 다 마련되지 않았는데 통일부에서 자꾸 북한과 백신을 공유하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설사 그런 논의를 하더라도 우리 국민이 백신을 모두 접종받은 뒤에 그런 이야기가 나와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 와서 보면 정부가 우리 국민 백신도 아직 전부 다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 통일부가 대북 백신 공급을 언급한 셈”이라면서 “국민에게도, 북한에게도 공수표를 날린 모양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