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초고층 랜드마크로 설립 예정이던 현대차그룹의 GBC가 설계변경 기로에 놓였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GBC 예정 부지. 사진=일요신문DB
현대차그룹은 2014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부지를 매입해 105층 규모의 랜드마크인 GBC 설립을 추진해왔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던 GBC는 업무시설과 관광숙박시설, 공연장, 전시장이 포함된 지하 7층~지상 105층의 초고층 건물로 2026년 완공을 예정하고 있었다. 현대차그룹은 부지매입 대금 10조 5500억 원을 현대차 55%, 현대모비스 25%, 기아차 20% 등 계열사가 나눠 내고, 이 비율에 따라 건축비를 분담하려 했다.
그러나 경영환경이 급변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자 현대차그룹은 GBC 사업에 대해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 공동개발하는 방향으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년 정의선 회장은 미국 칼라일그룹의 이규성 공동최고경영자와 대담에서 “현대차그룹은 핵심사업인 자동차 분야에 주력해야 한다. GBC는 투자자를 유치해 공동 개발하고 수익을 창출해 핵심사업에 재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여러 옵션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GBC 사업은 2020년 5월 착공허가를 받았지만 현대차그룹은 아직까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외부 투자자도 여전히 물색하는 중이다. 현대차는 최근 내부적으로 설계변경을 검토하고 외부에 설계변경안을 의뢰했으며 비용절감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측은 GBC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설계변경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105층 1개 동을 짓는 최초안에서 70층대 건물 2개 동으로 방향을 트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계획대로 105층으로 건립한다면 건설비만 3조 7000억 원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105층 원안을 고수하면 국방부에 수천억 원의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앞서 GBC 부지 인근 공군부대는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작전수행에 어려움이 따를 것을 우려해 반대해왔다. 현대차그룹과 공군은 2020년 4월 ‘작전 제한사항 해소방안’을 마련하고 레이더 구매와 설치, 운영에 관한 비용을 부담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GBC 설계변경을 추진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사진=현대자동차 제공
성장 정체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현대차그룹으로선 건설사업에 수조 원을 쓰기보다 신사업 투자에 집중해야 할 상황. 앞서 정의선 회장은 2025년까지 미래기술 확보에 100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을 밝혔다. 전기차, 자율주행, 도심항공 모빌리티 등 신사업 분야에 대형 투자를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2020년 10월 정몽구 명예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현대차그룹이 정의선 회장 체제를 맞이한 것도 설계변경 가능성을 높인다. GBC 설립을 진두지휘하며 정몽구 명예회장의 최측근 자리를 지켜온 김용환 현대제철 부회장, 정진행 현대건설 부회장도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정의선 회장 체제를 맞아 현대차그룹 내부 분위기는 실리 추구 쪽으로 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설계변경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우려는 있다. 서울시는 일단 GBC 층고 축소가 문제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2016년 현대차그룹은 공공기여금 1조 7491억 원을 내기로 서울시와 합의했다. 서울시는 “용적률에 따라 공공기여금이 정해지기 때문에 건축주의 고유권한인 층고 변경에 대해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강남구는 반발하고 나섰다. 강남구는 12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각종 규제로 인한 매출 감소를 감내해온 삼성동 일대 주민과 상인 등 강남구민들이 설계변경안에 반발하며 반대서명운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강남구의회도 GBC 사업 실무진과 조만간 설계변경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됐다.
강남구의회 관계자는 “현대차도 경영환경이 어려워 여러 고민이 있을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강남의 상징이 될 것으로 기대한 GBC 층고 변경에 대해서는 올해(2020년) 안에 실무진과 대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 내부 분위기가 설계변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아는데, 정의선 회장 체제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데다 자금 부담이 만만찮은 탓”이라며 “그렇지만 정 회장이 실리를 추구하더라도 GBC가 아버지인 정몽구 명예회장이 추진했던 사업이어서 최종 결정에서 아버지의 뜻을 꺾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