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SK로 이적한 최주환의 보상선수로 강승호를 지명했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까지만 해도 팀 내 20인 보호선수 외 1명의 선수 계약을 영입 선수의 원 소속구단에 양도하는 게 원칙이었다. 이적한 FA의 나이와 경력, 재자격 여부, 몸값 등에 관계없이 동일했다. 반면 2020시즌 후 FA를 신청한 선수들부터는 ‘FA 등급제’를 적용받았다. 신규 FA들은 구단 내 연봉 순위와 리그 전체 연봉 순위에 따라 A~C 등급으로 분류됐고, FA 자격을 두 번째 얻는 선수는 무조건 B등급이 됐다. A등급 보상선수 기준은 기존 룰과 같지만, B등급 선수가 이적했을 때는 원 소속구단이 묶을 수 있는 보호선수 수를 25명으로 늘릴 수 있게 했다.
#강승호와 박계범 뽑은 두산, 이미 보상선수 덕 봤다
주전급 선수가 대거 FA 시장에 나온 두산 베어스는 내야수 최주환과 오재일을 각각 SK 와이번스와 삼성 라이온즈로 보냈다. 심사숙고 끝에 두 팀에서 모두 내야수를 보상선수로 뽑아 전력누수를 최소화했다.
다만 최주환의 보상선수로는 2019년 음주운전 사고로 물의를 빚은 강승호를 뽑아 논란이 일었다. 강승호는 2013년 LG 트윈스에 신인 전면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3순위로 지명됐을 만큼 재능이 뛰어나다. 2018년 트레이드를 통해 SK 이적했다. 그러나 음주 사고로 구단 자체 징계를 받아 임의탈퇴 신분이 됐다가 지난 8월에야 해제됐다. 현재 KBO가 내린 9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소화하고 있다.
아직 26경기를 남겨둔 상황이라 2020년 시즌 초반에는 1군과 2군 경기에 뛸 수 없다. 최주환의 경기력 공백을 메우는 목적으로는 최적의 선택이라는 평가지만, 불미스러운 경력이 있고 아직 징계가 끝나지도 않은 선수를 굳이 선택했다는 점에서는 비판 받았다.
오재일의 보상선수로는 24세 젊은 내야수 박계범을 지명했다. 두산은 최주환 보상선수 지명 때와 달리 포지션을 특정하지 않고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를 뽑겠다는 마음으로 선택에 임했다. 그런데도 내야수인 박계범이 두산의 눈에 들어왔다. 유격수, 2루수, 3루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즉시전력감이라는 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계범 역시 2014년 신인 2차드래프트에서 2라운드(전체 17순위)에 지명된 유망주다. 수비는 물론이고, 공격 능력도 나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김상수, 이학주, 이원석 등 삼성의 쟁쟁한 주전 내야수들에 밀려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 사이 국군체육부대(상무)에서 병역을 마친 게 두산으로선 행운이다.
두산 입장에선 내심 또 한 번의 ‘보상선수 대박’ 신화를 기대할 수도 있다. 가장 최근 FA 보상선수로 덕을 본 팀이 바로 두산이어서다. 포수 양의지의 보상선수로 뽑혀 2019년 NC 다이노스에서 두산으로 팀을 옮긴 투수 이형범이 그 주인공이다. NC에서 세 시즌 동안 단 39경기에 나서 단 2승을 올리는 데 그쳤던 이형범은 두산에 오자마자 불펜의 핵심 역할을 해냈다. 기존 불펜 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고생하던 두산에 단비와 같은 존재였고, 결국 시즌 중반 이후 가장 중요한 마무리 역할까지 맡았다.
이형범은 2019년 한 시즌에만 이전 세 시즌 경기 수의 2배에 가까운 67경기에 출전해 61이닝을 소화했다. 6승 3패 19세이브 10홀드에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하면서 확실하게 1군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양의지를 보내고 상실감이 컸던 두산으로서는 이형범의 활약이 기대를 뛰어 넘고도 남은 소득. 그가 2019년 두산의 통합 우승에도 큰 힘을 보탰음은 물론이다. 이형범 본인에게도 두산 이적은 천금 같은 기회였다. 심지어 이형범은 이미 군복무를 마쳤고 나이도 20대 후반이라 미래 가치까지 높다. 향후 ‘역대 최고의 보상선수’로 기록될 가능성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두산은 과거에도 대표적인 보상선수 성공 사례를 남겼다. 현재 삼성에서 다시 FA 자격을 얻은 이원석이다. 200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뛴 이원석은 2008년 두산 출신 FA 홍성흔이 롯데와 계약한 뒤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두산은 내야 선수층이 두터운 팀이라 당시만 해도 이원석이 금세 자리를 잡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부터 공수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치며 팀의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원석은 2016시즌을 마친 뒤에는 FA 자격을 얻어 삼성과 4년 27억 원에 계약했다. 역대 보상선수 출신 FA 중 최고액 계약. 보상선수로 팀을 옮긴 그가 다른 보상선수(포수 이흥련)를 원 소속팀으로 보내면서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 셈이다.
정재훈은 보상선수로 지명돼 롯데로 향했지만 2차 드래프트에서 다시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됐다. 사진=연합뉴스
#‘보상선수’ 선택이 만들어준 친정팀과의 인연
두산도 정재훈도 ‘보상선수’ 인연으로 기가 막힌 드라마를 연출했다. 정재훈은 2003년 입단한 뒤 마무리 투수와 불펜승리조, 선발 투수를 두루 맡으면서 12년간 마당쇠 역할을 했다. 그러나 두산이 2015시즌을 앞두고 영입한 FA 투수 장원준의 보상선수로 지명돼 갑작스럽게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당시 두산 관계자는 “롯데가 불펜 투수가 아닌 다른 보직 선수를 원할 거라고 생각해 고민 끝에 보호선수에서 제외했는데, 예상 외로 정재훈을 뽑았다는 소식에 모두 낙심했다”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두산에 유독 애정이 많았던 정재훈 역시 좌절이 컸던 것은 물론이다. 하필이면 정재훈이 자리를 비운 그해, 두산이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기에 더 그랬다.
다행히 정재훈은 이적 후 1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친정팀으로 복귀했다. 두산이 2015시즌 종료 후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정재훈을 지명해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롯데에서 주로 2군에 머물렀던 정재훈은 정든 친정팀 유니폼을 입고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2016년 셋업맨으로 활약하면서 46경기에서 23홀드 2세이브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해 든든한 허리 역할을 했다.
한창 승승장구하던 8월 LG와 경기 도중 팔에 타구를 맞아 불의의 부상을 당했고, 끝내 한국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은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두산 선수들은 모두 모자에 정재훈의 등번호 ‘41’을 새기고 경기에 나섰다. 두산은 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정재훈에게 우승 반지를 추가 제작해 선물했다. 정재훈은 이후 마운드에 복귀하지 못하고 은퇴했지만, 코치로서 여전히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와 반대로 한화 이글스 안영명(현 KT 위즈)은 보상선수로 지명된 덕에 극적으로 친정팀에 돌아가는 기회를 잡았다. 2009년까지 한화에서 뛰었던 FA 이범호가 1년간의 짧은 일본 프로야구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2011년 초 KIA 타이거즈와 FA 계약을 맺은 게 계기였다. 보상은 이범호의 원 소속구단이던 한화가 받았는데, 이때 한화가 지명한 보상선수가 바로 안영명이다.
안영명은 천안북일고를 졸업하고 2004년 한화 1차 지명으로 입단한 투수였고, 팀 마운드의 리더가 될 재목으로 꾸준히 기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10년 한화와 KIA의 3 대 3 트레이드를 통해 고향팀을 떠났다. 한화가 장성호, 김경언, 이동현을 받고 안영명, 김다원, 박성호를 내주는 트레이드였다. 타선 보강이 급했던 한화는 베테랑 타자 장성호를 데려오기 위해 안영명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1년 만에 기회가 생기자 안영명을 되찾아왔다.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한대화 감독은 “보내고 나서 가장 아쉬운 선수였는데, 다시 찾아오게 돼 기쁘다”고 했다. 안영명 역시 고향팀으로 돌아와 정든 동료들을 만나게 된 걸 기뻐했다. 올 시즌까지 한화에서 뛰다 방출됐지만, 새 소속팀 KT를 찾아 현역 생활을 연장했다.
#쏠쏠하게 활약한 보상선수 열전
이전에도 프랜차이즈 스타가 보상선수로 뜻밖의 이적을 한 사례는 적지 않았다. 최초의 FA 보상선수로 기록된 선수가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인 박충식과 김상엽이었을 정도다. 삼성이 2000년 FA 투수 이강철과 포수 김동수를 영입하자 원 소속구단인 해태 타이거즈와 LG는 각각 박충식과 김상엽을 보상선수로 지명했다. 또 2002년에는 현대 유니콘스 출신 FA 박경완이 SK와 계약하면서 SK 조규제가 보상선수로 뽑혀 현대로 갔다.
그 가운데서도 한화 이글스 문동환은 역대 보상선수 가운데 최고 성공 사례로 꼽힌다. 2003년 롯데가 FA 정수근을 영입할 때 두산의 보상선수로 지명됐고, 곧바로 포수 채상병과 트레이드돼 한화로 건너갔다. 그는 이적 첫해인 2004년 부진했지만 2005년 10승, 2006년 16승을 각각 올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특히 2006년에는 18승을 올린 ‘괴물 신인’ 류현진과 원투펀치를 이뤄 팀의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보상선수 지명이 오히려 문동환에게는 마지막 불꽃을 태울 기회가 됐다.
LG도 2016년 보상선수 선택으로 덕을 봤다.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한 소득이었다. 그해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임정우 덕분이다. 임정우는 원래 SK 소속이었지만 2011년 말 FA 포수 조인성의 보상선수로 팀을 옮겼다. 이후 꾸준히 성장하다 이적 다섯 시즌 만에 마침내 소방수 자리까지 꿰차고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LG로서는 전혀 밑질 게 없는 장사였다.
다만 이듬해 부상을 당해 시즌 중반에야 팀에 합류했고, 2018년에는 개인사로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2019년부터 2년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을 마치고 2021년 시즌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LG가 2011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에서 FA 이택근의 보상선수로 데려온 윤지웅 역시 2014년부터 4년간 LG 좌완 불펜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2020년 한화에서 방출된 최승준은 2015년 말 FA 정상호의 보상선수로 뽑혀 LG에서 SK로 팀을 옮겼다. 이어 이적 첫해인 2016년 홈런 19개를 쳐 잠재력을 터트렸다. 역대 보상선수 이적 첫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이다. 이전까지는 2004년 FA 진필중의 보상선수 자격으로 LG에서 KIA로 팀을 옮긴 손지환이 이듬해 홈런 13개를 때려낸 게 가장 많았다. 최승준은 특히 그해 6월 28일 수원 KT 위즈전에서 한 경기 3연타석 홈런 기록을 작성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다. 시즌 후반 부상으로 주춤하긴 했지만 SK 입장에서는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KIA도 포수 한승택 덕분에 웃었다. 2014년 FA 외야수 이용규를 한화로 보내면서 데려왔던 젊은 포수다. 당시 한승택은 군 입대를 앞둔 상황이었지만, 주전 포수 김상훈의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해 미래를 내다본 선택을 했다. 한승택은 지난 시즌 105경기에 출전하면서 제 몫을 했고 블로킹과 투수 리드 모두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역시 맷 윌리엄스 감독이 그를 주전 포수로 낙점했고, KIA 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83경기에 나섰다. 아직 공격력이 약하고 도루저지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지만, 그때 한승택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금 KIA의 상황은 더 어려웠을 게 분명하다.
#보상선수로 뽑혔지만 이적하지 않았다?
보상선수 지명은 곧 이적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상선수로 선택 받고도 친정팀에 머물게 된 선수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O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리턴 픽’의 주인공인 LG 임훈이다. 사연은 이렇다. 임훈은 2011년 SK 소속 선수로 뛰었다. 시즌이 끝난 뒤 SK는 롯데 출신 FA 투수 임경완을 영입했다. 20인 보호 선수 명단을 받아 들고 고민하던 롯데는 임경완의 보상 선수로 임훈을 선택했다. 임훈은 그렇게 롯데 선수가 됐다.
얼마 후 이번엔 롯데가 SK에서 FA 자격을 얻은 투수 정대현과 계약했다. SK도 보상선수 지명을 위한 코칭스태프 회의를 열었다. 고심 끝에 롯데에서 SK로 데려올 보상선수를 정했다. 그 선수가 바로 ‘롯데 임훈’이었다. 임훈은 20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두 차례나 FA 보상선수로 지명된 끝에 친정팀 SK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초유의 해프닝이었다.
게다가 임훈은 이미 롯데에서 연봉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2011년 5000만 원에서 70% 인상된 85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롯데는 하루아침에 인천에서 부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게 된 임훈의 사정을 고려해 연봉을 높게 책정했고, 이 연봉은 결국 SK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됐다. 이적 선수의 연봉은 직전 구단에서 맺었던 계약을 그대로 승계하는 게 원칙이라서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부수입’도 생겼다. KBO 야구규약에는 ‘선수계약이 양도된 선수가 이사할 경우, 양도구단과 양수구단은 100만 원의 이사비용을 등분 부담해 선수에게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물론 당시 임훈은 실제로 집을 옮기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불과 20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집을 알아볼 시간이 부족했던 데다, 아직 비시즌이라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SK와 롯데는 두 번의 이사비용을 모두 내기로 결정했다. 이미 롯데에 지명됐을 때 양 팀이 50만 원씩 한 차례 지급을 마친 뒤였고, SK 지명 이후에도 똑같이 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정신적인 혼란을 겪었을 임훈을 위한 배려였다. 임훈에게는 뜻하지 않은 ‘용돈’ 200만 원이 생긴 셈이다.
여러 이야깃거리를 낳은 이 ‘리턴 픽’ 해프닝은 결국 규약 개정으로 이어졌다. 20인 보호선수와 보상선수 지명 예외 사항에 ‘당해 연도나 직전 연도에 FA 보상선수로 이적한 선수’가 포함된 거다. 그 후 한 번 FA 보상선수 지명을 받은 선수는 이듬해까지 다른 어떤 팀에도 보상선수로는 지명될 수 없게 됐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