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윤석열 검찰총장이 웃었다. 법원은 윤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 처분에 대해 ‘과하다’며 효력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했다. 윤석열 총장은 크리스마스 당일 곧바로 출근하기로 결정하며 원전 월성 1호기 사건 등 현안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사진=박은숙 기자
이번 법원 판단으로 사실상 완패한 추미애 장관을 비롯한 여권 측이 가만히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는 드물다. 2021년 초,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이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변수다. 이미 정치권에서는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윤석열 총장이 거론되고 있다. 징계가 실패했다면, 공수처 수사로 ‘끝장’을 볼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이례적으로 빠르게 나온 판단
이례적인 두 차례 심문이었다. 보통 집행정지 신청 사건의 경우 법원은 한 차례 심문을 통해 인용이나 기각을 결정한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홍순욱)는 12월 22일 오후 2시부터 2시간의 심문을 가진 자리에서 “이번 사건은 집행정지가 본안에 가깝다”며 한 차례 더 심문을 가지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총장과 법무부 측에 징계 사유와 내용, 법리와 징계 절차까지 자세하게 묻고 이에 대해 다음 심문 기일에 답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24일 오후 3시부터 4시 15분까지, 1시간여가 조금 넘게 걸린 2차 심문이 진행됐다.
당초 법조계는 ‘본안에 준하게 따지겠다’는 재판부의 입장을 고려해 결과는 25일이나 늦으면 월요일인 28일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재판부가 ‘잘못했다’고 판단하는, 파급력이 큰 사건이기에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달랐다. 심문 이후 “오늘(24일) 안에 결과를 내겠다”고 취재진에 통보한 뒤, 오후 10시쯤 윤 총장 측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윤 총장 정직처분의 효력을 징계 취소청구 1심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30일이 되는 날까지 중지한다”며 “주문, 대통령이 신청인에 대하여 한 정직 처분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밝혔다. 12월 1일 직무배제 집행정지에 이어, 서울행정법원 내 2곳의 재판부가 연달아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측 대리인 이석웅, 이완규, 손경식 변호사가 12월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집행정지 신청사건 2차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검찰에서는 이번 법원 결정으로 윤 총장에 대한 징계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전망이 나온다.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제대로 다룰 징계처분 취소청구 사건의 재판이 최소 수개월 이상 소요될 수밖에 없는데 윤 총장의 임기는 7월 25일까지다. 임기 안에 확정적인 재판 결과가 나올 확률도 낮지만, 1심에서 윤 총장이 패소하더라도 항소를 해 2심으로 이어간다면 그때에도 별도로 2심 법원에 징계 처분의 집행정지를 신청할 시간(30일)까지 배려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1심 판결 선고일 30일까지 정직처분 효력을 중지한다’고 한 것은 해당 재판부가 2~3월 정기인사 때 재판부를 떠날 것을 고려해, 다음 재판부가 징계에 대한 본안 판단을 어느 쪽으로 하더라도 항소심에서 다시 ‘징계 유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하는 결정”이라며 “윤 총장에 대한 1심 본안 판단이 5월이나 6월쯤 나온다고 봤을 때 임기를 마칠 수 있게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설명했다.
#사건 자세히 들여다본 후 신속한 결정
12월 16일 검사징계위원회, 새벽 4시 윤 총장에 대해 △법관 불법 사찰 △채널A 사건 관련 감찰 방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을 이유로 정직 2개월 징계를 결정했다. 헌정 사상 처음 있었던 검찰총장 징계는 곧바로 법원으로 넘어갔는데, 재판부는 24페이지에 달하는 보도 자료를 통해 상세하게 결정 배경을 밝혔다.
재판부는 윤 총장이 국정감사 때 ‘퇴임 후 국민을 위해 봉사할 방법을 찾겠다’는 등의 발언을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본 징계위 결정에 대해 “정치적 중립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 등 위신 손상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고, 채널A 사건 감찰 방해에 대해서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본안 재판에서 충분한 심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이 ‘피해자’ 격인 법관 불법 사찰에 대해서도 “재판부 분석 문건의 작성 및 배포는 매우 부적절하나 추가 소명자료가 필요하다”며 윤 총장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 “이 사건 징계처분 절차에 징계위 기피 신청에 하자가 있는 점 등을 보태면 윤 총장 측의 본안 재판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징계 처분으로 윤 총장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그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필요가 인정된다. 법무부 측이 주장하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징계의 사유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본 것과 동시에 ‘징계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고 본 셈이다. 판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본안에 준하게 사안을 따져보면서 윤석열 총장 측이 주장한 ‘징계 처분 정도의 위법성’과 ‘징계 과정의 위법성’을 모두 재판부가 손을 들어준 것”이라며 “윤석열 총장 측의 KO승이라고 봐도 된다”고 평가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 역시 “24페이지에 달하는 보도 자료를 쓴다는 것은, 이미 어느 정도 재판부 사이에 입장이 모아진 상태로 두 번째 심문을 진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두 번째 심문에서 법무부의 설명 부족이 재판부 사이에서 ‘오늘 결정해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이어진 것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헌정 역사상 처음이었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지만, 사찰 문건 피해자인 판사들이 있는 법원에서조차 2번 연속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징계를 주도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를 재가한 문재인 대통령은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했을 당시 모습. 사진=청와대 제공
#사의 표명한 추미애, 재가한 대통령 치명타
헌정 역사상 처음이었던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강행했지만, 사찰 문건 피해자인 판사들이 있는 법원에서조차 2번 연속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추미애 장관과 청와대는 법원의 결정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내지 않았다.
이보다 하루 앞선 23일에는 서울중앙지법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며 법정구속 했는데, 2019년 조국 전 장관 부부를 수사하면서 시작된 친여 측 견제와 반발, 갈등은 1년 6개월여 만에 윤 총장 측의 승리로 끝나게 된 셈이다.
검찰 관계자는 “윤 총장이 ‘살아있는 권력에도 수사를 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했다가 정권으로부터 찍혔는데 법원이 이에 대해 ‘올바른 결정이었다’며 여러 차례 윤 총장의 손을 들어준 것 아니냐”며 “대전지검에서 수사 중인 원전 월성1호기 사건과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이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사의를 표명한 추미애 장관이 마지막 한 수를 더 두고 나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을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 법무부 안팎에서는 추미애 장관이 사의를 표명하기 전부터 “대전지검 등에 대한 원포인트 인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는데, 사의 표명 뒤에도 “인사까지 하고 나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전지검 월성 원전 1호기 사건 등 정부가 예민해 하는 사건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통해 ‘수사를 하지 말라’는 시그널을 검찰 전체에 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후임 법무부 장관이 누가 될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징계 재가 결정에 반발하며 소송까지 불사했던 윤석열 총장을 제어하려면, 법무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초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후임 장관 후보로 하마평이 돌았지만, 택시기사 폭행 사건이 부각되며 리더십이 흔들린다. 특히 법무부 실장 근무 시절에도 다소 공격적인 발언으로 법무부 내에서 구설수가 잦았던 이용구 차관으로는, 윤석열 총장을 제어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평이 벌써부터 나온다.
공수처도 윤 총장을 제어할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 12월 10일 공수처법 개정안을 야권 반발 속에서 통과시킨 여당 내에서는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공수처법은 대통령, 국회의원, 판·검사 등과 그 가족이 범한 직권 남용, 뇌물 수수, 정치 자금 부정 수수 등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데, 공수처는 수사 대상 선택 우선권이 있다. 검찰·경찰에 고위공직자 관련 사건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면,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 중인 윤 총장 관련 사건들을 공수처가 이어받아 수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윤석열 총장과 그의 장모·아내·측근 관련 사건들을 수사하고 있다. 앞서 법무부는 윤석열 총장에 대해서 △재판부 불법 사찰 의혹을 수사 의뢰했고,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윤 총장 아내 회사 협찬금 명목 금품 수수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도이치파이낸셜 주식 매매 특혜 사건 개입 의혹 △측근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위원장의 친형 뇌물 수수·사건 무마 의혹 등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들 중 일부에 대해 공수처가 검찰에 이첩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이제 징계나 단순 수사만으로는 검찰 내 지지를 완전하게 끌어낸 윤석열 총장을 건드리기 쉽지 않아졌다”며 “공수처 등 다른 수단을 활용해 윤 총장이 정권을 향해 수사하는 것에 대해 막으려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하지만 윤석열 총장 징계 과정에서 여론이 악화된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앞선 변호사는 “조국 재판에 이어, 윤 총장 징계 가처분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찍어내기가 잘못됐다’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윤석열 총장 지지율만 더 올라가게 됐다”며 “추미애 장관이 급하게 둔 수가 부메랑이 돼 돌아왔으니 정부가 공수처 사건 이첩 등을 결정하더라도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