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필칭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내각의 수장 국무총리가 되려는 분의 가족이 청문회 때문에 눈물 흘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이맘때쯤엔 전임 정운찬 총리의 아들딸이 눈물을 흘렸다. 새벽까지 계속된 청문회를 마치고 오전 3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서자 그때까지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아들과 딸이 “아버지가 추궁당하는 것을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든 이들을 낙루(落淚)케 한 이유는 똑같았을 것이다. 그동안 세인들의 부러움과 찬사 속에 탄탄대로를 걸어온 남편과 아버지가 어느 날 인사청문회에 불려나가 온갖 험한 얘기 다 들어가며 ‘수모’(受侮)를 겪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을 것이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경륜이나 전문성을 검증하기보다는 개인적인 흠집을 잡아내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장관 임명이) 조폭 중간보스를 뽑는 것이냐”라는 식의 막말도 나오게 마련이다.
청문회로 곤욕을 치르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의 고관들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고위 관리나 정치인이 청문회나 언론 검증과정에서 낙마하는 일이 수없이 많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가족과 프라이버시에 대한 무자비한 검증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정부요직에 등용되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늘고 있다”고 개탄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언론의 집요한 추적에 쓰러진 사례로 1987년 민주당 대선후보의 꿈을 키우다 낙마한 게리 하트를 꼽았다. 스물아홉 살 금발 모델과의 밀회장면이 폭로되기 전까지만 해도 게리 하트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떼어논 당상’이나 다름없는 40대 기수였다. 그러나 한 사진기자의 끈질긴 추적으로 미녀모델과의 ‘부적절한 밀회’장면이 공개되자 대권의 꿈은 무너지고 말았다. “같이 밤을 보내긴 했지만 잠은 따로 따로 잤다”고 해명했지만 구차한 변명으로 끝나고 말았다.
가족들이야 인사청문회에서의 집요한 추궁을 모욕으로 받아들일지 몰라도 대인(大人)의 길을 가자면 그 정도의 험난한 시련쯤은 참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누항에 뒹구는 장삼이사들이야 그런 자리에 불려 나갈 일도 없고 그런 수모를 당할 이유도 없다. 10여 년 전 이한동 총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부동산 투기 등을 집요하게 추궁당하자 “여름 폭우, 겨울 눈보라에 시달리며 성장하는 것이 정치인의 속성”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사나이 가는 길 앞에 웃음만이 있을쏘냐” 운운하는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게 하지만 정치인의 험난한 길을 한탄한 자조적인 푸념이기도 했다.
여염의 범부(凡夫)로 살기보다는 고관대작으로 입신양명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언제, 어디서, 누가, 어떻게 털어도 먼지 한 점 나지 않도록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한다. 그러면 인사청문회에서 불법·탈법을 아내 탓으로 떠넘기는 민망한 일도 없을 것이고 자녀교육을 핑계 삼아 위장전입을 “맹모삼천지교”로 분칠하는 일도 없을 게 아닌가. 게다가 고귀한 분의 사모님께서 청문회 때문에 눈물 흘리는 민망한 일도 없을 것이니 더욱 좋지 않은가.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