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서비스가 일본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름 하여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식이나 노동력 제공은 불가능하다. 간단한 대화 몇 마디만 하면서 그냥 곁에 있어주는 서비스다. 말 그대로 진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뭐든 해주는’ 대행서비스는 들어봤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여서비스라니. 한때 유행한 광고 카피처럼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를 실천하며 사는 일본인 남성의 삶을 엿본다.
모리모토 쇼지는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서비스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사진=모리모토 트위터
30대 청년 모리모토 쇼지는 2018년 6월 3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혼자 가기 어려운 가게, 인원수 맞추기 등 단 한 사람분의 ‘존재’만이 필요할 때 이용해주십시오. 도쿄 고쿠분지 역에서 오가는 교통비와 음식비만 받습니다. 지극히 간단한 응답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창업 첫날 의뢰인은 0명. 하지만 이 서비스는 빠르게 입소문이 나면서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그의 사연은 단행본 에세이와 만화, 그리고 드라마로까지 제작됐다. NHK에서는 참신한 그의 생활 방식에 주목해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렌털하고 싶다’는 의뢰가 끊이질 않았다. 트위터 팔로어 수는 27만 명을 넘어섰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리모토의 렌털 서비스를 이용할까. 일례로 “이혼서류 제출 시 말 없이 동행해 달라”는 여성의 의뢰가 있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민사재판을 방청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어떤 이는 “지방으로 이사를 가는데 손을 흔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모두 특별한 기술이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아닌, 자신을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그저 곁에 있으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모리모토는 의뢰인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아니고 적확한 어드바이스를 내놓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공기 같은 존재다. 물론 의뢰인들이 미처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나 취미에 대한 무한 애정 등을 쏟아내면 경청해준다.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모리모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 사람들은 고민이나 비밀 이야기를 털어 놓기도 한다”며 “관계성이 희박한 상대가 오히려 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렌털 서비스의 시작을 알린 2018년 6월 3일의 트윗.
의뢰는 대부분 트위터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이뤄진다.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GO가 하고 싶은데 밤길이 무서우니 동행해 달라”는 여성의 사연, “카페에서 예쁜 디저트를 먹고 싶은데 혼자는 망설여진다”는 남성의 사연도 있었다.
어느 만화가는 “마감하는 동안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지켜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모리모토는 만화가의 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만 있다가 나왔다. 이 밖에도 “한턱을 내고 싶지만 상대가 없으니 같이 식사하자”는 등 모리모토에게 날아오는 사연은 각양각색이다.
어디까지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의 범주에 넣을지는 순전히 모리모토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요컨대 끌리지 않고 하기 싫으면 거절하는 식이다. 의뢰자의 상담 내용이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렌털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모리모토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1983년생인 그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3년 만에 퇴사하고 만다. 모리모토는 “당시 상사가 ‘너는 있으나마나한 사람’이라고 말했으니, 회사생활을 그리 잘하진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카피라이터로 전향했지만 또 다시 실패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런대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조직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자신은 아무래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분간 아무것도 안하고 살기로 했다.
모리모토의 사연은 2020년 TV도쿄에서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이러한 선택에는 “철학자 니체의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33세 때 읽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로 인해 그동안 얽매여있던 상식, 가치관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것. 모리모토는 “전에는 내 의지대로 사는 경우가 적었다”며 “이제는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된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겨 상당히 살기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집에만 있기도 무료해서 어느 날 아무것도 안하는 자신과 자신의 시간을 대여하기로 했다. 활동분야를 트위터로 정한 것은 학창시절부터 ‘오기리(大喜利·언어유희)’가 취미였기 때문이다. 오기리 관련 사이트에 글을 써 조회수 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짧은 글에 재치를 담는 과정이 즐겁다”며 “아내도 오기리 모임에서 만나 결혼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2019년 NHK 다큐멘터리 ‘더 논픽션’에 출연한 후에는 유명세도 톡톡히 치렀다. 렌털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공짜’다 보니 “젊은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무수입인데 가정은 어떡할 거냐” “무책임하다” 등 시청자들의 비난 글이 쏟아졌다.
당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니시무라 요우지로 프로듀서는 “세간의 반응이 엄청났다”고 회고했다. “한마디 안하곤 못 배기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것. 그러면서 그는 “날마다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사는 이들과 모리모토가 처한 환경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좀처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시작한 서비스인데, 모두가 사회성을 키우라고 들이대는 것은 가혹한 면이 없진 않다”는 말을 더했다.
모리모토는 2019년 NHK 다큐멘터리 ‘더 논픽션’에 출연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아무것도 안하고 사는 것이 그렇게 나쁘기만 한 걸까. 니시무라 프로듀서에 따르면 “취재가 끝난 후 의뢰인들의 표정이 한결 후련해보였다”고 한다. 그는 “결과적으로 의뢰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서비스였을 것”이라는 소견을 밝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함께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논란 끝에 모리모토는 2020년 10월부터 렌털 서비스를 유료화로 변경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비스 내용은 변함없지만, 대여료가 1만 엔(약 10만 원)으로 껑충 뛰었다. 아무것도 안하는데 과연 1만 엔을 지불할 사람이 있을까. 흥미롭게도 “여전히 의뢰가 들어온다”고 한다. 물론 전보다 의뢰 건수는 줄었으나 장난삼아 신청하는 이들도 사라져 나름의 장점이 있다.
얼마 전엔 이런 DM도 도착했다. “삶이 힘들어 투신했다. 현재 입원 중인데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 SNS로 손쉽게 소통하지만 외로움을 떨치지 못하는 현대인들. ‘함께 있어도 혼자 있게 해주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확실히 존재하는 듯싶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