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에서 설민석이 한 이야기를 두고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사진=tvN ‘벌거벗은 세계사’ 클레오파트라 편 예고편 영상 캡처
#역사 왜곡인가 해석의 차이인가
설민석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은 케이블채널 tvN ‘벌거벗은 세계사’ 방송 이후 거세졌다. 그가 클레오파트라 편에서 한 이야기를 두고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사실관계가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며 “‘역사 이야기’라면 사실과 풍문을 분명하게 구분해 언급해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새어 나왔다. 설민석은 “프랑크 시나트라 이후 백인이 흑인 음악을 부르는 거야. (흑인들은) 초심을 잃었다 이거지. 그래서 흑인들만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거야”라며 “회귀, 복고, 다시 블루스로 돌아가자. 그게 리듬앤블루스(R&B)”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이자 음악평론가인 배순탁은 “재즈, 블루스, R&B, 초기 로큰롤에 대한 역사를 다룬 원서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할 수가 없다”며 “이 정도면 허위사실 유포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결국 ‘벌거벗은 세계사’의 제작진은 보도 자료를 통해 “방대한 고대사의 자료를 리서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던 점을 사과한다”고 밝혔고, 설민석 역시 고개를 숙였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원래 분분한 법이다. 똑같은 사안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후세에 재평가 받는 위인이 있는 반면 과대평가된 인물을 바로 보자는 주장도 나오는 것.
하지만 역사적 사실 자체를 잘못 짚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 관계가 뒤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방송 관계자는 “설민석은 정통적인 역사학자로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인지도와 파급력이 높다”며 “그렇기 때문에 이번 그의 역사 왜곡 논란이 더욱 거센 반박에 부딪히고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왜 논문 표절에 ‘방송 하차’를 발표했나
2020년 12월 29일 연예매체 디스패치는 설민석의 2010년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을 입수해 논문 표절 검사 소프트웨어 ‘카피킬러’로 확인한 결과 표절률이 52%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747개 문장으로 이뤄진 이 논문에서 100% 표절률을 기록한 문장은 187개, 표절 의심 문장은 332개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또한 ‘제5장 결론 및 제언’ 부분은 2007년 서강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 논문의 결론 부분과 100%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도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설민석은 “연구를 게을리 하고, 다른 논문들을 참고하는 과정에서 인용과 각주 표기를 소홀히 하였음을 인정한다”며 “변명의 여지가 없는 저의 과오다. 교육자로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안일한 태도로 임한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며 “겸손한 마음으로 다시 더 배우고 공부하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표절을 인정한 셈이다.
설민석은 방송 활동은 물론이고 유튜브 채널과 강연 시장에서도 왕성하게 활동을 벌여왔다. 논문 표절 논란에 “앞으로 출연 중인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일반 강연 등 한국사 강의도 당분간 중단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진=설민석 인스타그램
앞선 논란에는 사과의 뜻을 밝힌 뒤 자신의 행보를 이어오던 그가 논문 표절 의혹에는 곧바로 ‘백기 투항’한 이유는 무엇일까. 설민석은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후 2010년 연세대학교에서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를 받고 한국사 강사 활동을 시작했다. 그와 역사 강의의 고리는 석사학위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논문이 표절로 밝혀지면 그가 석사 학위를 박탈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사 강사로서 그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논문 표절 의혹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빠른 인정과 사과를 통해 논란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그가 방송 출연만을 자제하는 것인지, 일반 강연 등 한국사 강의를 당분간 중단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논란의 교양 예능, 어떻게 봐야 하나
최근 몇 년 사이 인문학 열풍이 불며 학원가에서 인기를 끌던 유명 강사들이 대거 TV로 유입됐다. 그들의 입담이 더해진 강연은 ‘교양성 예능’이라 불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딱딱한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제작진과 대중 모두 반겼다.
하지만 너무 방대하고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졌다. 매주 방송을 해야 하는데, 이를 일일이 검증할 여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여러 작가들이 움직이지만 그들 역시 전문가라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한국사에 강점을 갖고 있는 설민석이 세계사와 음악사 등 다른 분야를 건드리면서 밑천이 드러났다는 분석도 있다.
4년 전에는 또 다른 스타 강사 최진기가 조선미술사 관련, 잘못된 정보로 강의해 모든 방송에서 하차했다. 당시 최진기는 tvN ‘어쩌다 어른’에서 오원 장승업에 대해 강의하다 오류를 범했다. 당시 그는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진위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점 다시 한 번 반성하며 이 모든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모든 방송 하차 결정을 내렸습니다”라고 밝혔다. 비슷한 논란은 tvN ‘알쓸신잡’ 등에서도 있었다.
반면 이로 인해 인문학을 다룬 예능 시장이 위축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미 위주로 흘러가는 예능가에서 설민석을 비롯해 여러 스타 강사가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이며 ‘알아가는 재미’를 책임진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