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 산재사망 진상 규명 및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수도권 전역이 한파에 떨던 시기라 A 씨가 동사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24일 포천경찰서는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보인다. 동사로 추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사인과 별도로 열악한 숙소의 모습이 부각되며 이주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현행법상 비닐하우스 숙소는 불법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5조 기숙사 구조와 설비 및 제56조 기숙사의 설치 장소 등에 따르면 자연재해 위험이 있거나 습기나 침수 피해 우려가 있는 장소에는 기숙사를 설치할 수 없다. 채광이나 환기, 방재, 냉난방 설비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사업주들이 이주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숙소 중 상당수가 최저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 1만 5773곳 중 냉난방 시설과 소방시설 등 외국인 숙소 최저기준에 미달하는 곳이 5003곳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주 노동자 단체들은 기준 미달 숙소가 고용노동부 조사보다 월등히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고용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안내 지침’에는 이주 노동자 고용주가 아파트, 단독주택, 연립 등과 이에 준하는 시설을 제공할 때 통상임금의 15%, 그 밖에 임시 주거시설은 월 통상임금의 8%까지 공제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숙소에 살며 고용주에게 많게는 한 달에 50만 원이 넘는 금액을 공제당하기도 한다.
2018년 3월 29일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고용허가제 송출국(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캄보디아 등) 대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문재인 정부의 핵심가치인 노동이 존중받고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외국인 노동자도 예외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다. 당시 김 장관은 농축산분야 이주 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숙소 제공을 금지하고 신규 고용허가인원 배정 시 숙소의 질적 수준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약속과는 달리 지난 2년간 이주 노동자들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에 이재명 경기지사가 소회를 밝혔다. 이 지사는 “경기도지사로서 이주 노동자 권익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부검 결과는 건강 악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제대로 된 진료 기회도, 몸을 회복할 공간도 없었기에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비닐하우스뿐 아니라 농촌의 이주노동자 임시숙소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착수하겠다. 실태조사를 토대로 이주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약속했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12월 24일 “농축산업 외국인 근로자 주거시설 개선을 위해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 허가를 불허하기로 했다”며 “외국인 근로자에게 충분한 숙소 정보 제공이 가능하도록 기숙사 시각 자료(사진, 영상 등)를 함께 제출하도록 하고 반드시 고용허가서를 발급하기 전에 현장 실사를 통해 기숙사 시설의 사전 확인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장 비닐하우스 숙소를 대체할 만한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부의 고용 허가 불허 카드가 얼마나 처우 개선에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