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당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나경원 전 의원. 사진=박은숙 기자
최근 나경원 전 의원은 본인과 자녀들을 둘러싼 여러 의혹을 털어냈다. 2020년 12월 24일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이병석)는 나 전 의원 딸 대학 입학 비리 의혹, 평창동계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와 사단법인 스페셜올림픽코리아(SOK)의 예산집행 관련 비리 혐의 등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비서 채용, 스페셜 올림픽 개·폐막식 예술감독 선정 등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돼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앞서 검찰은 11월 나 전 의원이 SOK 회장 재직 시 지인 자녀를 부정 채용했다는 혐의 고발 사건도 무혐의로 종결했다. 12월 20일에는 나 전 의원 아들 김 아무개 씨가 고교 재학 중 국제학술회의의 논문 포스터 제1저자 등재 관련 의혹도 ‘혐의 없음’ 처분했다.
다만, 김 씨가 4저자에 이름을 올린 포스터의 외국학회 제출 및 외국대학 입학 관련된 부분은 형사사법공조 결과 도착 때까지 시한부 기소중지 처분하기로 했다. 검찰은 나경원 전 의원과 그의 자녀에 대한 고발 사건 13건을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뿐만 아니라 나 전 의원은 최근 입대한 아들의 서울대병원 출생증명서 등을 공개하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원정출산 의혹’에도 반박했다.
나 전 의원은 수사결과를 두고 “결론은 진실의 승리요, 추미애 검찰의 패배”라고 밝혔다. 그는 “수사를 시작한 동기 자체가 너무나 불순했고 불량했다. 동원된 외부세력이 고발장을 남발하고, 거기에 맞춰 민주당은 ‘나경원 죽여라’를 수도 없이 외쳤다”며 “민주당과 추 장관은 검찰을 무리하게 움직여 대대적인 탄압수사를 벌였다. 무더기 영장기각 망신까지 당해가며 막무가내로 털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끝내 진실 앞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전했다.
정가에선 검찰 불기소 처분으로 정치적 보폭이 넓어진 나경원 전 의원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할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국민의힘 내부에선 중진급과 참신한 인물들 중 누구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하느냐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었다.
2020년 12월 20일 안철수 대표가 출마 선언한 이후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선 나 전 의원 이름이 부쩍 거론되는 양상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야권 경선이 치러질 경우 안 대표에 맞설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 출마해야 한다는 이유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12월 22일 발표한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경원 전 의원이 16.3%로 안철수 대표(17.4%)를 오차범위 내에서 뒤따르며 양강을 형성했다. 조은희 서초구청장과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각각 8.3%와 6.6%로 뒤를 이었다(한길리서치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나 전 의원도 출마에 무게를 두고 시기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 전 의원은 12월 28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서울시장 출마 의사’에 “서울시장 출마만을 딱 두고 고민한 건 없다”며 “서울시장 선거, 당 전당대회, 대통령 선거까지 여러 정치일정이 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려는지 폭넓게 열어놓고 보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법조계에선 나경원 전 의원을 둘러싼 의혹과 법적 분쟁이 서울시장 후보 출마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법적으로 끝난 부분도 향후 선거 과정에서 논란의 불씨가 살아있다는 얘기가 뒤를 잇는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자신의 고발사건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와 비교했다. 실제 나경원 전 의원 고발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수사를 차일피일 미룬 부분이 있다. 법원 역시 압수수색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 조국 전 장관 수사와 대조적이다. 그 결과 일부 사건은 시간을 미룬 끝에 ‘공소시효’를 넘겼다. 또한 일부는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아 ‘증거 불충분’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12월 24일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맨 오른쪽)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과 최성해 동양대 전 총장에 대한 경찰 수사 내용 발표 및 검찰의 즉각 기소,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나경원 전 의원을 고발한 시민단체 역시 반발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검찰이 1년 넘게 직무유기를 했다. 국민들의 분노가 고조되니 조사하는 시늉만 하고 나경원 전 의원에 면죄부를 줬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을 중심으로 한 정치검찰의 행태가 일선 검사들에까지 상당히 퍼져있다고 느꼈다”고 비판했다.
이에 민생경제연구소와 사립학교개혁과 비리추방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등 단체들은 나 전 의원 관련 사건에 대해 서울고검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안진걸 소장은 “공소시효 완성된 사건을 제외하고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된 사건들을 항고했다”며 “압수수색이 통째로 여러 번 기각됐지만, 부분적으로 실행된 것도 있다. 그 증거들과, 서울고검에서 추가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 수사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과거 일부 사건은 공소시효 완성으로 공소권 없음 결과를 내놓으면서도 수사 결과 판단은 발표했다. 하지만 나경원 전 의원 건은 판단도 없다”고 지적했다.
항고장과 함께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들은 12월 24일 나 전 의원에 대해 뇌물죄와 업무상 배임, 국고손실, 강요 혐의 등으로 14차 고발장을 제출했다. 안 소장은 “아들 김 씨가 2014년 미국의 고등학교에 재학하면서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실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이후 교수와 교직원들이 도와줘 미국의 학술대회에 발표된 포스터에 이름이 등재되기까지 했다”며 “당시 나 전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이었다.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포괄적 뇌물죄 적용 대상이다”라고 설명했다.
나경원 전 의원이 받고 있는 의혹 일부가 추후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로 넘어가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앞서 변호사는 “공수처는 전직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재직 당시 업무 관련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대상이 된다”며 “국회의원과 평창동계패럴림픽 조직위 활동과 관련한 의혹은 공수처에서 들여다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진걸 소장 역시 “공수처 수사 대상은 맞다”며 “공수처 고발 여부는 신중히 판단해 볼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다루기에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공수처가 출범하자마자 야당의 유력 정치인인 나경원 전 의원을 수사하면 ‘야당 탄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수사를 결정하기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전 의원은 지난 20대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상태로 기소돼 서울남부지법에서 재판도 받고 있다. 이 결과 또한 향후 나 전 의원의 정치 일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나 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재선 의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경원 전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발언을 보면 심경의 변화가 있는 것 같다”며 “전당대회와 대선을 언급했다. 뚜렷한 당권주자나 차기 대선주자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지지율도 나쁘지 않으니, 보궐선거 이후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