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의 샌디에이고행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유격수와 3루수를 맡았던 그가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내야 수비진을 자랑하는 샌디에이고를 선택했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김하성의 샌디에이고행 뒷이야기를 풀어본다.
빅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하성의 행선지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로 결정됐다. 공식 발표만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임준선 기자
#샌디에이고의 포스팅 총액 가장 높았다
김하성은 잘 알려진 대로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뜨거운 구애를 받았다. 메이저리그 소식을 다루는 MLB트레이드루머스도 ‘토론토가 김하성에게 오퍼를 넣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고, 토론토는 보 비셋이나 캐번 비지오,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 등을 도울 내야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토론토는 김하성을 영입한다면 3루에 대한 고민을 지워낼 수 있고, 때로는 유격수인 보 비셋을 대신해 유격수를 맡게 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캐나다 스포츠넷 소속 토론토 담당 벤 니콜슨-스미스 기자는 지난 12월 29일 자신의 SNS에 ‘토론토가 김하성에게 5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제시하며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다. 아쉽게 실패로 그쳤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토론토는 현지 매체의 기사대로 김하성 영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김하성의 미국 에이전트사인 ‘ISE 베이스볼’과 자주 접촉하면서 선수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김하성 측 한 관계자는 “미국 에이전트가 김하성 선수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팀들을 상대로 12월 26일까지 제안서를 제출해달라고 말했다”면서 “제안서 내용만 봤을 때 1, 2순위 안에 토론토와 샌디에이고가 포함됐다. 그중 총액은 샌디에이고가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제안서에는 김하성 영입을 위해 구단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준비하고 있는지 담아야 한다. ‘ISE 베이스볼’에서는 12월 26일까지로 기간을 정한 다음 일부 팀이 김하성에게 어느 정도의 액수로 베팅하는지 체크했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김하성은 처음에 토론토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 가족들이 한국에서 거리가 먼 토론토보다 LA와 가까운 서부지역 샌디에이고를 선호하면서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김하성은 마이너 거부권이 포함된 토론토의 제안을 마다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
#토론토도 마이너리그 거부권 제시했다
토론토는 처음에 김하성 측에 계약 기간 6년을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 6년은 오히려 김하성 측에서 부담을 가졌다. 김하성은 6년보다 4년 계약을 선호했고, 4년 후 다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겠다는 입장이었다. 토론토는 이후 한 차례 수정된 계약 내용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하성의 샌디에이고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너리그 거부권과 관련해서도 토론토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토론토 구단에서도 김하성에게 당연히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제안했을 것이고, 실제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단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계약 기간 모두 적용했는지 아니면 기간을 한정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적은 돈도 아니고 많은 돈을 받고 영입하는 선수에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주지 않는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구단 입장에서 몸값 비싼 선수를 마이너리그에 묵혀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샌디에이고뿐 아니라 토론토도 김하성에게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제안했다는 이야기다. 김하성이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없어 토론토의 제안을 거절한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강자들 속의 경쟁 택한 김하성
그렇다면 김하성은 내야수 보강이 시급한 토론토 텍사스 보스턴의 제안을 거절하고 이미 붙박이 내야수들이 건재한 샌디에이고행을 택한 이유가 무엇일까.
샌디에이고의 내야는 2020년 내셔널리그 MVP 투표에서 4위를 차지한 팀의 간판타자 타티스 주니어(유격수)와 2019년 샌디에이고와 10년 3억 달러(약 3260억 7600만 원)의 FA 계약을 맺은 매니 마차도(3루수)가 지키고 있다. 김하성이 뛰게 될 2루는 2020시즌 신인상이 유력했던 제이크 크로넨워스(신인왕 2위)가 버티고 있다. 김하성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
샌디에이고 현지 매체에 의하면 구단은 김하성을 제이크 크로넨워스의 2루수 플래툰 파트너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고, 필요할 경우 크로넨워스를 외야로 보낼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해설위원은 이런 샌디에이고의 전략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했다.
“현재 2루를 맡고 있는 크로넨워스는 스피드가 있는 선수다. 지난 포스트시즌 때 외야수로 나선 적도 있었다. 어차피 샌디에이고의 3루와 유격수는 언터처블 아닌가. 1루를 맡고 있는 에릭 호스머는 8년 1억 4400만 달러(약 1565억 1648만 원)의 계약으로 샌디에이고로 이적한 선수다. 절대 자리 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하성이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은 2루뿐이고, 샌디에이고는 김하성에게 주로 2루를 맡기면서 크로넨워스를 적절히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아마 팀에서는 타티스 주니어와 마차도의 휴식 때 김하성을 활용할 복안도 갖고 있을 것이다.”
김하성 측 관계자는 김하성도 샌디에이고의 내야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자신의 메이저리그 도전자 입장이고, 도전하는 상황에서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과 함께하며 자신도 성장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출전 기회만 놓고 본다면 김하성한테는 토론토가 맞는 팀이다. 토론토에서는 어느 자리에서든 주전으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하성은 도전과 배움을 택했다. 경쟁은 어느 팀에서든 벌어지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이 야구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팀에서 뛰는 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욱이 샌디에이고에서는 2루에 있던 크로넨워스를 외야로 보내겠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부분이 김하성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타도 다저스’ 외치는 샌디에이고 단장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타도 대상은 내셔널리그 같은 지구에 속한 LA 다저스다. 샌디에이고의 A.J. 프렐레 단장은 지난 시즌부터 다저스를 벤치마킹하며 선수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다저스에는 ‘슈퍼’ 유틸리티맨들이 수두룩하다. 맥스 먼시는 1, 2, 3루수를 번갈아 맡는다. 코디 벨린저도 1루수를 맡다 외야수로 자리를 옮긴 바 있고 키케 에르난데스와 크리스 테일러는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투입된다. 멀티 포지션은 특정 선수가 부상당할 때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샌디에이고 프렐레 단장은 다저스처럼 자신의 팀도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는 선수들이 많기를 바란다. 김하성 영입은 2021시즌 프렐레 단장의 팀 운영 방향성을 알게 해주는 단초다.
MLB닷컴은 2020년 12월 30일 샌디에이고가 공식적으로 좌완 투수 블레이크 스넬과 우완 투수 다르빗슈 유를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전했다. 탬파베이 레이스의 블레이크 스넬은 2018년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다. 다르빗슈는 2020시즌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투수다. 샌디에이고는 두 명의 투수를 영입하며 여러 명의 유망주를 다른 팀으로 보내야만 했다.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김하성까지 영입한 샌디에이고 프렐레 단장의 2021시즌 목표는 우승밖에 없다. 더욱이 이와 같은 공격적인 투자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프렐레 단장의 움직임이 눈길을 모은다. 스넬과 다르빗슈의 계약은 2023년까지고, 김하성도 2024년까지 샌디에이고에서 뛸 예정이다.
한편 김하성과 함께 토론토에서 뛰고 싶었던 류현진은 김하성의 샌디에이고행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후배의 새로운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