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종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힘겨루기다. 안 대표가 인지도를 앞세워 야권 단일후보로 급부상할 경우 자칫 국민의힘은 ‘남의 자식’을 데려와 가업을 물려줘야 할 판이다. 3종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수싸움이다. 강력한 대선주자로 떠오른 윤석열 검찰총장 역시 적자는 아니라, 국민의힘의 새해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4·7 재보궐 선거 공천관리위원회 1차 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긴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박은숙 기자
#바람 불어도 이기기 힘들다?
국민의힘은 최근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강력한 정권 심판의 바람’이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텃밭인 부산시장 선거는 당연히 이기고, 서울시장 역시 매우 유리한 국면으로 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선거를 많이 치러본 당내 구성원들은 보궐선거라는 특성을 감안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아 바람몰이가 약하기 때문에, 조직이 센 쪽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해봤던 국민의힘 한 원외 위원장의 분석이다.
“서울시내 25곳 구청장 가운데 서초구를 제외하고 24곳 구청장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다. 지자체장은 주민 접촉도가 높아서 주민들이 민주당을 목격하는 빈도가 높다. 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낮아서 정치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만 갈 가능성이 크다. 바람선거가 아닌 조직선거가 될 수 있다. 국민의힘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고 바람선거만 기대하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실제 역대 보궐선거 투표율은 대체로 낮았다. 역대 광역단체장 보궐선거를 살펴보면 총선이나 대통령선거 등과 동시 선거로 진행된 것이 아닌, 단독 보궐선거를 치를 경우 정치적으로 큰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투표율이 형편없었다.
2004년 6월 5일 진행된 재보궐 선거의 경우 역대 최대 규모였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얻어 압승한 17대 총선 직후 두 달 만에 치러진 선거로, 2006년 지방선거 전초전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실제 부산시장에 한나라당 허남식, 전남지사에 새천년민주당 박준영, 경남지사에 한나라당 김태호, 제주지사에 한나라당 김태환이 각각 당선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선거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으면서 투표율은 28.5%에 머물렀다. 10명 중 3명 정도만 투표장으로 간 셈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 패배에 따른 사퇴로 치러진 2011년 10월 26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전국적 관심이 쏠린 선거였다. 안철수 당시 서울대 교수의 지지선언을 등에 업은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가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민주당 박영선·민주노동당 최규엽 후보를 누른 뒤 본선에 올라,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대결을 펼쳤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선거였음에도 투표율은 45.9%에 머물렀다.
국민의힘 한 당직자는 “보궐선거라는 특성상 투표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방정부를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장 선거는 그래서 더욱 힘들다. 구조는 무조건 불리하다. 탁월한 후보, 그리고 ‘갈아보자’는 강력한 바람을 통해 구조를 깨야 한다”고 말했다.
#남의 자식한테 가업 물려줄 판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바라보는 국민의힘 속내는 복잡하다. 인지도가 높은 만큼 야권 단일후보가 되면 민주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면 당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폭탄이 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당내에서는 이미 “안철수 말고 누가 있느냐”는 ‘대안 부재론’이 형성되고 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만 봐도 이러한 기류를 읽을 수 있다. 앞서 김종인 위원장은 초지일관 당내 후보 육성론을 펴왔다. 안철수 대표 등 외부 사람에 대해서는 “당 밖 사람”이라며 불가론을 만들어왔다.
그런데 최근 안 대표가 출마선언을 하면서 “야권 단일 후보가 되겠다”는 말까지 꺼냈지만, 김종인 위원장은 “절대 안된다”는 말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2021년 보궐선거를 총지휘하면서 반드시 승리를 따내야 하는 김 위원장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않느냐”는 해석을 내놓는다. 김 위원장도 노선 변경을 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한 핵심 관계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김 위원장이 안 대표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생각이 있으면 당으로 들어오라’는 입장이다. 안 대표에 대해 생각이 바뀐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인 정진석 의원도 2020년 12월 30일 첫 회의에서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종식하는 범야권의 플랫폼이 될 것이다. 누구라도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고 경선에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범야권 단일 후보를 만들기 위해 안철수 대표, 금태섭 전 의원 등에 대해 경선 문턱을 낮춰준 뒤 국민의힘 경선에 참여시키겠다는 복안으로 보인다.
당 바깥의 인물이 당내 경선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방침도 고려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이 안 대표가 원하는 방식으로 ‘대폭 양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일화 과정에서 싸우는 모습이 벌어지면 본선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하지만 국민의힘 한 다선 의원은 “우리 당 서울시장 후보도 좋은 사람들이 많고 정말 열심히 뛰고 있는데 지금 추세라면 안 대표에게 후보 자리를 갖다 바칠 판”이라며 “서울시장이 되고 나면 국민의힘의 지원이 아니라 안 대표 자신의 개인기로 당선됐다는 구도를 만들어버리면서 당을 좌지우지하려할 게 뻔하다. 제1야당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이혜훈 전 의원, 조은희 서초구청장, 김선동 전 사무총장, 김근식 경남대 교수, 이종구 전 의원 등이 이미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이어 오신환 전 의원이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전 의원과 오세훈 전 서울시장 차출설도 나온다.
2020년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안철수 대표. 사진=박은숙 기자
#윤석열 ‘분란의 씨앗’ 우려
윤석열 검찰총장 최근 행보는 파죽지세다. 문재인 대통령과 직접 맞서는 구도를 만들어낸 뒤, 여러 차례 대결에서 연전연승하며 확실한 범야권 대선 주자로 올라선 모습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12월 28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은 23.9%로 이낙연 민주당 대표(18.2%), 이재명 경기지사(18.2%)를 오차범위 밖으로 제치고 선두에 올랐다. 윤 총장이 리얼미터 조사에 이름을 올린 2020년 6월 이후 단독 1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리얼미터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여론조사업체 홈페이지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윤 총장은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등 문 대통령과 청와대를 정조준하는 수사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 여권 고위 인사의 이름 오르내리는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 수사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사 결과에 따라 집권세력을 향한 초강력 태풍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 총장이 계속해서 높은 주목도를 만들어낸다면 국민의힘이 ‘모셔가야 할’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관측이다. 지난 총선 때 수도권에서 낙선한 국민의힘 한 전직 의원은 “고건 반기문 등 공무원 출신 대선 후보 낙마 얘기를 꺼내면서 윤 총장도 결국 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다. 하지만 윤 총장은 그들과 달리 정치권력과의 싸움을 해본 사람”이라며 “싸움도 보통 싸움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과 겨룬 것인데 이런 연습을 거쳤다면 거친 정치판으로 나온다 해도 무리 없이 본선까지 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윤 총장이 결국 제1야당이 분열하는 분란의 씨앗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좋다고 덥석 물었다가 입천장을 다 델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윤 총장은 우리 당 출신 대통령 2명을 구속기소한 총 지휘자다. 언젠가는 이런 전력이 크게 이슈화될 것이고, 우리의 맞상대인 민주당도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할 것이다. 선거는 분열하면 지는데 왜 뻔한 결과를 예측하면서 그 길을 가나”라고 되물었다.
실제 국민의힘 핵심 지지세력인 대구·경북(TK) 국회의원들은 윤 총장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총장은 대선을 위한 마중물 역할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강민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