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 사진=임준선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은 끊임없이 특별감찰관 임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응하지 않았다. 정부와 여당은 공수처가 출범하면 특별감찰관 임명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2018년 4월 27일 차정현 청와대 특별감찰관 직무대행이 임기를 마친 뒤 문재인 정부는 특별감찰관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특별감찰관 제도는 박근혜 전 대통령 2012년 대선 공약이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공수처 신설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전 대통령은 특별감찰관 운용만으로 대통령 특수관계인, 청와대 관계자들을 충분히 감시할 수 있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승리한 뒤 특별감찰관 공약을 이행했다. 2014년 3월 특별감찰관법이 제정됐다.
초대 특별감찰관을 선임하는 과정은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초대 공수처장을 선임하는 과정과 유사했다.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과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초대 특별감찰관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쳤다. 공수처장 선임 과정과 비교하면 여당과 야당 입장만 바뀌어있을 뿐이다. 최근 들어 국민의힘이 공수처를 두고 “정권 수사 기관이 아닌 정권 사수 기관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은 특별감찰관 제도가 악용될 소지를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감찰관으로 임명된 건 이석수 변호사였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은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사기혐의로 고발했으며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였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감찰하기도 했다. 2016년 8월 이 전 특별감찰관은 우 전 수석 감찰 내용 유출 의혹에 휘말렸다. 특별감찰반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하는 입장이 됐다. 8월 29일 이 전 특별감찰관은 정상적 직무수행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아래 사표를 제출했다.
이 사건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이 다시 한번 공수처 신설을 강력하게 요구하게 된 배경이 됐다. 진보 정치권 관계자들은 특별감찰관 제도가 애초부터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여건이라고 주장했다. 한 진보 진영 인사는 “당시 특별감찰관 제도를 살펴보면 대통령 특별관계인에 대한 감찰에 있어 대통령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가속페달을 밟았다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서 “이 전 특별감찰관 해임 과정을 봐도 청와대가 감찰에 강력히 반발하자 검찰 등 수사기관이 특별감찰관을 향해 날을 세우는 상황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 전 특별감찰관이 제 몫을 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 전 특별감찰관이 감찰하던 우 전 수석 관련 의혹은 시간이 지난 뒤 ‘국정농단’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전 특별감찰관 사표가 수리된 뒤 후임은 임명되지 않았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반까진 탄핵 정국이 이어졌다. 그 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특별감찰관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양새다. 4년 동안 문 대통령은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여전히 처음이자 마지막 청와대 특별감찰관으로 남아 있다.
2016년 9월 23일 이 전 특별감찰관 사표가 수리된 뒤 차정현 특별감찰담당관이 직무대행 역할을 맡았다. 차 직무대행은 2018년 4월 27일 임기를 마쳤다. 차 직무대행이 짐을 뺀 뒤 특별감찰관실은 허울뿐인 조직이 됐다. 한 국민의힘 당직자는 “문재인 정부는 공수처 도입을 전제로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면서 “전 정부가 도입한 특별감찰관 제도 정통성을 부인하고 공수처에 힘을 실어주려는 판단일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특별감찰관이었던 이석수 변호사. 사진=박은숙 기자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특별감찰관 부재가 현 정부 입장에서도 뼈아픈 부분은 있을 것이다. 울산시장 선거 하명수사 사건, 라임·옵티머스 사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경제성 판단 조작 의혹 등 의혹이 수도 없이 불거지지 않았느냐”면서 이렇게 말했다.
“특별감찰관을 임명했으면 앞서 언급한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감찰이 먼저 진행됐을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시시비비도 더욱 명확히 가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검찰이 직접적으로 정권 핵심을 겨냥해 수사를 하는 상황도 예방할 수 있으며, ‘검찰개혁’에 대해 이렇게 큰 목소리를 낼 필요도 없었을 거다. 하다 못 해 최근 대통령 아들을 둘러싸고 불거진 ‘전시회 논란’ 역시 특별감찰관이 감찰할 수 있는 대상 아닌가.”
정치권에선 공수처가 신설되더라도 특별감찰관 임명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수처가 2021년 1월 출범을 앞두고 있는데, 출범하더라도 어느 정도 적응기가 필요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다 초대 공수처는 여당과 대통령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수처가 국민으로부터 ‘공정하다’는 공감대를 얻을 때까지 특별감찰관 제도는 함께 병행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반면, 한 여당 인사는 “특별감찰관 제도가 시행된 뒤 박근혜 정부 특별감찰관은 사실상 정권을 무너뜨리는 초석을 놨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공수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공수처가 과거 특별감찰관이 했던 것처럼 공정함을 발휘해 정치 핵심 권력을 겨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검찰이 정치 수사를 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 상황에서 현 정부는 공수처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식 장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특별감찰관과 공수처는 모두 정권 핵심을 감시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감찰’ 권한을 가진 감찰 조직이다. 감찰로 비위행위가 적발되면 특별감찰반은 이 내용을 고발하고, 수사기관이 나머지 법적인 수사를 담당한다.
공수처는 과거 ‘고발-수사’ 과정으로 이어지던 권력 핵심부 비위 수사를 간소화하는 기관이라고 보면 된다. 공수처는 수사기관이다. 공수처가 출범하게 되면 검찰이 담당하던 대통령 특수관계인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맡게 된다. 권한 발동 조건도 다르다. 특별감찰관은 비위 행위에 대한 신빙성이 있을 경우 바로 감찰에 착수할 수 있다. 공수처의 경우엔 국회 요구에 따라 정권 핵심을 수사할 수 있다. 수사 방아쇠가 국회에 주어지는 셈이다.
21대 국회 들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공수처장과 특별감찰관 임명을 두고 줄다리기를 펼쳐왔다. 김 원내대표는 “공수처 출범을 국민의힘이 약속하면 특별감찰관 추천을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주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법률상으로 하도록 돼 있는 특별감찰관 임명을 4년째 하지 않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정치평론가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특별감찰관이 4년째 공석인 상황과 관련해 “아무래도 현 정부가 ‘검찰개혁’이란 공약 완수 및 치적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공수처 쪽에 훨씬 무게를 싣는 모양새”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