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의 한진중공업 매각이 난항에 부딪혔다. 부산지역 여론은 산업은행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반발 중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사진=한진중공업
한진중공업 매각과 관련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알짜 자산’으로 꼽히는 영도조선소 부지의 활용 방안이다. 영도조선소 부지는 전용공업지역 26만㎡에 불과하지만, 아파트 등으로 개발할 경우 조 원 단위의 개발 이익이 거둘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도구는 서구‧동구 등 부산시의 원도심 지역으로 최근 부동산 가격 불안이 지속되며 2020년 12월 17일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에 부산지역에서는 한진중공업 예비입찰 때부터 다수 사모펀드 운용사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자 “투기자본이 부동산 개발 이익만을 노리고 한진중공업을 인수하려 한다”는 우려가 불거지기도 했다.
#부동산 개발 우려 배경에는 한국토지신탁 존재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동부건설과 한국토지신탁, NHPE, 오퍼스PE 등으로 구성됐다. 사모펀드와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업체가 모두 이름을 올린 셈이다. 한진중공업 인수전에서 동부건설 컨소시엄의 전략적 투자자는 동부건설이고, 한국토지신탁 등은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다. 그러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면 사실상 동부건설 컨소시엄의 수장은 한국토지신탁이다.
동부건설 지분 62.19%를 보유한 최대주주는 키스톤에코프라임(주)이고, 키스톤에코프라임(주)의 최대주주는 지분 58%를 보유한 키스톤에코프라임스타 기업재무안정 사모투자합자회사다. 키스톤에코프라임스타 기업재무안정 사모투자합자회사의 최대주주는 지분 87%를 보유한 한국토지신탁이다. 한국토지신탁은 부동산신탁업을 영위할 목적으로 1996년 4월 설립된 회사다. 부동산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토지신탁사업과 비토지신탁사업, 도시정비사업, 투자사업 등을 수행한다.
부산시는 2020년 12월 24일 한진중공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공시 직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한진중공업 조선업 정상화와 고용유지가 어려운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선정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부산 경제와 국가 기간산업의 미래보다 개발 중심의 경제적 논리에 따른 것 같아 실망을 금치 못하겠다”고 전했다. 또 “영도조선소 부지의 용도변경 불허 등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난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고리를 철저히 차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두 차례 보도자료를 내고 부동산 개발설을 부인했다.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2020년 12월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한진중공업의 건설업 부문과 동부건설의 사업적 시너지를 강조했다. 한진중공업 공동주택 브랜드 ‘해모로’가 부산‧경남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아 동부건설의 센트레빌 브랜드와 수주 네트워크 등 영업활동 부분에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다음날인 12월 24일 낸 보도자료에서는 한진중공업의 함정과 LNG선박 기술력을 언급하며 “조선업 성장을 고려하는 상황에서 인력 보유는 꼭 필요한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어 고용승계도 뒤따라야 한다고 보고 있다”고 밝혔다.
동부건설 컨소시엄은 “주식매매 계약상 인력의 고용 승계를 보장하는 데다 기술력을 살려 제대로 된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고용을 보장하지 않거나 영도조선소 부지를 매각하는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또 “영도조선소 부지는 부산에서도, 조선업계에서도 상징적인 곳인 만큼 개발이 아닌 조선업을 영위해 나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개발설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매각 딜이 완료되고 3년이 지난 이후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한진중공업의 조선업을 포기할 경우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임에도 불구, 해운업에 이어 후방사업인 조선업까지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산은, 숙원사업 해결이냐 책임론 재점화냐
하지만 지역의 우려는 불식되지 않고 있다. 산은의 한진중공업 인수 입찰요강에서 근로자 고용유지 의무와 조선사업 지속 의무를 3년까지로 정하고 있어 3년 이후 조선업을 포기하더라도 이를 제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지역에서는 조선업의 특성을 고려해 최소 10년은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지역 내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는 데에는 2017년 산은을 비롯한 채권단이 지원을 포기하면서 한진해운이 파산하는 과정을 지켜봤던 경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신항 한진해운 신항터미널은 한진해운의 모항이었다. 당시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해양항만 관련단체 등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며 한진해운 파산에 반대했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파산 이후 대규모 해직 사태가 이어졌다.
이는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세계 해운업 시장이 활황인 가운데 국내 업계 1위 HMM(옛 현대상선)은 세계 시장에서 2.6% 정도의 비중을 차지해 파산 전 한진해운이 3%를 차지했던 것보다 비중이 작다”며 “우리 해운업이 위기인 이유가 산업은행이 근시안적 태도로 너무 쉽게 해운업 구조조정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매각 딜이 완료되고 3년이 지난 이후 동부건설 컨소시엄이 한진중공업의 조선업을 포기할 경우 산은은 국책은행임에도 불구, 해운업에 이어 후방산업인 조선업까지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부산경제살리기시민연대는 성명서를 통해 “3년이 지나면 조선소 폐업은 물론 많은 근로자들이 사직에 처해져 부산 지역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 명약관화하다”며 “설립 목적에 따라 국가 산업 경쟁력을 보호하고 국민경제의 발전에 책임과 소임을 다할 의무가 있음에도 산업은행은 부산시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관련, 부산시와 부산시의회도 공동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도용회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장은 “부산시는 르노삼성 등 제조업체들이 빠져나가며 좋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라며 “일자리를 유지하고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한진중공업의 조선업 영위와 고용 유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본 입찰 전 산은 관계자들과 만나 이 같은 의견을 전달했고, 당시 산은 또한 동의했다”며 “아직 매각이 완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향후 제안서 등 계약 세부 내용을 확인하고 조선업과 일자리 유지 등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할 것이라 판단되면 영도조선소 부지 용도변경 제한 등 제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산은은 말을 아끼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3년 유지 조항 관련) 계약 내용에 대해 밝힌 바 없고, 매각과 관련해서 드릴 수 있는 말씀도 없다”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