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2월 30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박은숙 기자
판사 출신 ‘3선’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일찌감치 ‘추미애 후임’으로 거론됐다. 하지만 ‘추-윤 전쟁’ 피로감이 극에 달한 상황이라는 점이 변수로 작용했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을 완수하되, 비교적 온건하고 통합형 장관을 발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퍼졌다. 검사 출신 소병철 민주당 의원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승전-검찰개혁’이었다. 직무에서 복귀해 청와대를 향해 칼을 겨눌 것으로 점쳐지는 윤 총장을 상대하기 위해선 중량감을 갖춘 정치인을 기용해야 한다는 견해에 무게가 실렸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요구됐다. 자연스레 정가의 시선은 검찰개혁을 줄기차게 외쳐온 ‘친문’ 박범계 의원에게로 쏠렸고, 문 대통령은 예상대로 그를 골랐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3기)이기도 한 박 후보자는 공수처 출범에 따른 검찰과의 업무 분담, 검찰로부터의 수사권 분리 등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의 남아 있는 과제를 맡게 됐다. 이 과정에서 윤 총장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국·추미애에 이어 제3차전이 발생할 수도 있는 셈이다.
당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월 28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임명안을 재가한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변 장관이 각종 구설에 휘말리자 여권 내에서조차 조심스럽게 낙마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임명에 확고한 입장을 보이자, 민주당 역시 ‘변창흠 구하기’에 나섰다. 이에 친문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 판단으론 변창흠 장관이 자진사퇴하거나, 문 대통령이 철회하길 원했다. 하지만 윤 총장 직무복귀로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장관 인사까지 철회하면 그야말로 레임덕 둑이 터지는 격이다. 정권 차원에선 좋건 싫건 변창흠을 밀고 나가야 했던 상황이다. 부동산 시장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도 작용했다. 흠결을 걷어내면,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만큼 변창흠만 한 인물도 없다. 이런 부분을 청와대가 민주당 측에 잘 설명한 것으로 안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 장관 재가와 같은 날,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도 재가했다. 앞선 12월 24일엔 전해철 의원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권덕철 전 보건복지부 차관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가했다. 또한 한정애 의원을 환경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서울시장 출마설이 도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교체가 임박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이던 2019년 1월 19일 국회에 참석한 유영민 비서실장. 사진=박은숙 기자
정부부처 개각과 함께 청와대 개편도 착수했다. 예상보단 큰 폭이었다.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상조 정책실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또 임명된 지 4개월밖에 안 된 김종호 민정수석도 사직서를 냈다. 감사원 출신의 김종호 전 수석은 윤석열 징계 절차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노영민 김상조, 두 실장 역시 부동산 및 백신 확보 정책에서 혼란을 초래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단, 김상조 실장은 사표가 반려돼 유임됐다.
12월 31일 문 대통령은 신임 비서실장으로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발탁했다. 비서실장 하마평에 거론되지 않던 인물이다. 당초 우윤근 전 러시아 대사가 유력하게 점쳐졌지만 본인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최재성 정무수석,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이 오르내렸지만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애초 후보군에 포함되지도 않았다고 한다.
유 실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이른바 ‘문재인 키즈’ 중 한 명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과기부 장관을 지낸 뒤 21대 총선에서 부산 해운대갑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총선 직후 노영민 전 실장 사의 가능성이 나오자 김부겸 전 의원과 함께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점쳐졌던 인물이기도 하다.
여권에선 이번 청와대 개편의 핵심으로 신현수 신임 민정수석을 꼽는다.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신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법조 브레인’ 중 한 명이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밑그림 작업에 참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초대 민정수석이 유력했지만 인사 막판 조국 전 수석으로 결론이 났고, 신 수석은 국정원 요직인 기조실장에 발탁돼 서훈 전 원장(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적폐청산을 주도했다.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2004년 청와대 사정비서관으로 일했던 신 수석은 검사 출신이다. 이번 정부 들어 검사 출신 민정수석은 처음이다. 조국(학계) 김조원 김종호(감사원) 전 수석들은 모두 비검찰 출신이다. ‘검찰 배제’ 불문율이 깨진 셈이다. 온화한 성품의 신 수석은 검찰 측과도 관계가 좋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를 놓고 정가와 법조계에선 강경 일변도였던 청와대-검찰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검찰 조직 생리를 잘 아는 신 수석이 완충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일각에선 문 대통령 신임이 각별한 신 수석이 검찰과의 전쟁에서 선봉장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