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우한의 한 초등학교 수업 장면.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사진=중국 방송 캡처
2020년 12월 28일 우한의 한 수산시장을 찾았다. 중국 대부분 수산시장은 자국 내 수산물뿐 아니라 뱀, 박쥐, 너구리, 낙타 등 야생동물을 판매한다. 코로나19 최초 발원지로 추정되는 우한 화난 시장도 비슷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화난 시장에서 거래되는 뱀, 박쥐 등이 코로나19 숙주일 것이란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화난 시장은 코로나19가 나온 이후 폐쇄됐다. 지금은 울타리만 쳐진 채 아무도 출입을 할 수 없다. 화난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상인들 대부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우한에서 최초 확진자가 나온 날은 2019년 12월 초 무렵이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 우한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말인 ‘되찾은 일상’을 실감케 했다. 상인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로 장사를 했다. 시장을 찾은 방문객들 중 상당수 역시 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았다. 한 상인의 말이다.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영업은 중단됐고, 우리는 집에서 나올 수 없었다. 도시 전체가 마비됐다. 생필품을 구하기 어려워서 생활이 어려웠다. 수급이 어려울 땐 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정부 노력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사라졌다. 관광객들이 오지 않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회복됐다. 다른 나라는 오히려 더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고 들었다. 중국 방역이 성공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장뿐만이 아니다. 유치원과 학교도 이제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직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곧 이런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수업 중 마스크를 착용하는 학생들은 드물며 학예회 등 단체 활동도 활발하다. 회사 역시 모두 마스크 없이 출근하고 있다. 극장과 공연장은 인산인해다. 우한은 생화학, 자동차, IT 등 기술 산업 외국기업이 많이 진출해있는 곳인데 코로나19 이후 많이 줄었다. 이제 외국인들이 들어와 생활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오히려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분위기다.
우한에선 5월 이후 코로나19 환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2020년 12월 30일에도 확진자는 없었다. 2019년 12월 초 최초 확진자 발생, 2020년 1월 23일 봉쇄령 선포, 1월 29일 확진자 5000명 돌파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빠르게 극복했다. 무엇보다 고립된 생활 속에서 방역 지침을 잘 따라준 우한 시민들의 희생이 높게 평가된다. 중국에선 우한 시민을 ‘영웅’이라고 칭한다.
중국 정부는 우한 사례를 ‘위대한 승리’라고 자화자찬한다. 이를 기념하려 전시관도 만들었다. 2020년 12월 19일 우한 당국 등에 따르면 중국은 역사상 최초로 국가문화와 관광 소비 시범도시로 우한을 지정했다. 코로나19를 이겨낸 영웅의 도시라는 타이틀이다. 또한 2022년엔 최고 수준의 공중위생 및 응급관리 체계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죽음의 도시’가 될 뻔했던 우한을 관광과 의료서비스 특화 도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2020년 1월 코로나19로 인해 봉쇄령이 선포됐을 당시 우한의 텅 빈 거리. 사진=현지 언론인 제공
중국이 이처럼 우한을 선전하는 것은 시진핑 주석의 공을 드높이기 위한 의도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지금 주요 언론들은 코로나19 현황보다는 당과 시진핑 주석의 지도력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코로나19 대응국가가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국의 신속한 조치, 물질적인 지원 등을 칭송하는 우한 시민들 인터뷰는 언론의 단골 메뉴가 됐다.
이를 두고 중국 최대 정치 일정인 ‘양회’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양회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를 뜻한다. 중국의 경제 목표, 권력구도 등 중요한 사안을 논의한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3월 전인대에서 주석 임기 제한 조항을 삭제하며 장기집권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양회는 통상 3월에 열리는데, 2020년엔 코로나19로 5월 열렸다. 경제목표조차 세우지 못했다. 이번엔 3월 5일로 정했다. 양회엔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각 지방에서 올라온 지도자들이 참석한다. 이들은 양회 개최 2주 전 베이징으로 모여 회의도 한다. 그만큼 방역에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고, 이를 외부에 알리려는 의도다. 동시에 전국 지도자들 앞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주도한 시진핑 주석 지도력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것으로 읽힌다.
중국은 자국산 백신(시노팜) 접종이 본격화되면 코로나19 종식을 선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2월 30일 기준 중국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24명이다. 이 중 본토 확진자는 7명. 양회가 열리는 베이징은 1명이다. 나머지 17명은 해외 유입 확진자다. 전 세계에서 보고되고 있는 확진자 수에 비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당국은 과거의 아픈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백신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20년 12월 28일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우한이 18~59세 사이 수입 냉동 물류창고 직원 및 의료진 대상으로 접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2020년 7월부터 코로나19 고위험 지역인 광둥성, 쓰촨성, 저장성 등의 고위험 노출군에 대해 백신을 접종했다. 중국 포털 ‘봉황망’에 따르면 지금까지 백신 접종 누적 인원은 50만 명이다. 아직까지 심각한 부작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백신 접종자 중 6만여 명이 해외 고위험 지역을 방문했지만 심각한 감염 사례도 없었다.
중국 당국은 최대 명절인 춘제를 코로나19 분수령으로 본다. 이 기간 중국인들은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귀성길에 오른다. 이를 ‘춘절 대이동’이라 부른다. 이번 대이동은 1월 28일부터 3월 8일까지, 총 40일간 이뤄질 전망이다. 중국국가철도그룹에 따르면 전국에서 4억 7000만 명, 하루 평균 1018만 명이 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추산된다. 기차표는 12월 30일부터 판매가 시작됐다.
중국이 자국민에게 접종 중인 백신. 사진=현지 언론인 제공
베이징 전염병통제지휘부는 이 기간 시민들이 집에서 머물도록 권고했다. 주요 관광지엔 단체 여행객을 받지 않거나 인원수를 통제할 방침이다. 베이징은 3월 양회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방역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우한이 위치한 후베이성 코로나발생통제본부도 유동인구를 줄이기 위해 위문, 친목, 회식 등의 행사를 취소하고 온라인으로 대체하도록 장려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난 중국의 모습만 살펴보면 제법 양호해 보인다.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백신 접종이 늘어나고 치료제도 개발되면 미래는 더 밝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정확한 실상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 해외 언론은 물론 내부에서 파다하다. ‘코로나19 확진자 0’이라는 우한 통계 발표를 믿지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 우한의 한 수산시장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정부가)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고 하니 그렇게 하고는 있지만 불안하다. 얼마 전 에콰도르에서 들어온 냉동수산물 포장지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견됐다고 한다. 안심할 수 없는 상황 같은데 우려를 나타내면 오히려 욕을 먹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그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우한 확진자는 수개월째 제로다. 통계가 정확한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우한 소재 통지병원 근무 경력의 한 30대 의료인은 자국산 백신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백신이 안전하다고 홍보하는데, 그렇다면 왜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거는 다른 나라들이 중국산 백신을 구매하지 않느냐. 우리도 다른 백신들과 꼼꼼하게 비교해서 접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불안을 조장해선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환상을 심어줘선 안 된다”면서 “특히 의료인 등 전문가 역할이 중요한데 바른 말을 했다간 불이익을 받으니 아무 말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또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코로나19 실태가 부정확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대외적으로 비치는 것과 실제 국민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괴리가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 최초 발원지였다가 지금은 ‘코로나 청정구역’으로 불리는 우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의 강력한 통제로 팩트가 왜곡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에 대해 중국 언론인들은 당이 코로나19 대응보다는 3월 5일 양회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고 있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우한=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