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리버리히어로(DH)가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을 인수하고자 요기요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최준필 기자
#1년 만에 결론, 승인이지만 승인이 아닌…
2020년 12월 28일 공정위는 DH가 (주)우아한형제들의 주식 약 88%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요기요를 운영하고 있는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코리아)의 지분을 팔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DH가 배민의 운용업체인 우아한형제들의 주식을 40억 달러(약 4조 7500억 원)에 취득하고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한 지 1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
DH는 시정명령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 내에 자회사 DH코리아의 지분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 다만 기간 내에 매각할 수 없을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 인정될 경우, 6개월 내에서 그 기간의 연장을 신청할 수 있다. DH는 배달앱 요기요, 배달통의 운영사인 DH코리아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2019년 거래금액 기준 배민 78%, 요기요 19.6%, 배달통 1.3% 등이다. 양사가 결합했다면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이 99.2%에 달한다.
공정위는 “배민과 요기요 간의 경쟁이 사라지면 소비자 혜택 감소, 음식점 수수료 인상 등 경쟁제한 행위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음식점 유치를 위한 수수료 할인 경쟁이 축소되거나 기존 입점 음식점들에 대한 수수료를 인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DH는 공정위 발표 당일 오후 결정을 존중하며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기업결합을 위해 매각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점에 대해선 유감이라고 표명했다. DH는 기업결합 승인 심사보고서가 나온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요기요를 매각할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최종 심사결과에 대해선 행정소송이 아닌 입장 선회를 택한 것이다.
우아한형제들도 “이번 기업 결합을 계기로, 앞으로 아시아 시장 개척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싱가포르에 딜리버리히어로와 우아한형제들의 합작법인인 ‘우아DH아시아’ 설립을 추진한다. 양사의 인수합병 최종 서명은 2021년 1분기 중 이뤄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딜리버리히어로(DH)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까지 섭렵하고자 김봉진 우아한형제 의장을 우아DH아시아의 이사장 겸 합작사업본부장으로 선임할 예정이다. 사진=이종현 기자
#요기요 매각 받아들인 배경은?
DH의 입장 변화는 배민을 통해 국내 배달앱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내 배달앱 시장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배달앱 시장 규모는 9조 29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84.6% 성장했다. 전체 배달외식 시장 규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3%로 성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2020년은 코로나19 여파로 배달앱 시장 규모가 15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실제 DH가 요기요를 매각해도 국내 배달앱 시장에서의 지위는 유지될 전망이다. 지난 5년간 국내 배달앱 시장 점유율 순위는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 후발주자인 쿠팡이츠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는 있지만, 시장점유율이 3.1%에 불과하다. 서비스 지역도 수도권에 한정됐다. 추후 대규모 자금을 동원하기도 어렵다. 쿠팡 누적 적자 규모는 4조 원에 달한다. 쿠팡의 대주주 소프트뱅크도 2019년 7조 원의 적자를 내면서 앞으로 투자 대상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고 구제하는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DH는 20여 개 브랜드를 거느리며 유럽, 아시아, 중남미, 중동 등 전 세계 40여 개국에 온라인 음식배달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특히 아시아는 DH 전체 주문량과 수익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베트남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배달 시장 성장세가 연간 40%에 달한다. 이에 DH와 우아한형제들은 50 대 50 지분으로 싱가포르에 합작회사인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할 예정이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우아DH아시아의 이사장 겸 합작사업본부장을 맡아 한국과 베트남, 일본 등 배민 지역법인과 12개 DH 지역 법인을 총괄한다. 우아DH아시아는 음식배달·공유주방·퀵커머스(즉시배달서비스) 등의 사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DH는 아시아 시장에 투자를 단행한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베트남 시장에서는 그랩에 밀려 철수한 적도 있다. 반면 우아한형제들은 2019년 5월 베트남 배달앱 시장에 진출해 1년 만에 그랩에 이어 배달앱 시장 업계 2위에 올라설 정도로 시장 공략 노하우를 갖췄다는 평가다. 공정위 조건부 승인이 발표된 직후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우리의 파트너십은 배달업계 전체 생태계를 발전시킬 것이며, 함께 협력해 아시아의 배달 산업을 혁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요기요 운영사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의 강신봉 대표(왼쪽)와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김범준 대표가 지난 10월 8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6개월 안에 매각하려면 몸값 낮춰야 하나
요기요 매각 시한은 6개월이다. 연장을 한다 해도 최대 12개월이다. 연간 거래액을 기준으로 기업가치를 측정하면 요기요의 몸값은 1조 원 중반대로 추정된다. 요기요의 2019년 연간 거래액은 1조 8200억 원이다. DH는 2019년 연간 거래액이 7조 2500억 원인 배민을 4조 7500억 원에 인수했다. 연간 거래액 대비 기업가치 배수는 0.66배다. 이를 요기요에 적용하면 1조 2000억 원이 나온다. 배달통, 푸드플라이는 약 1000억 원이다. 총 1조 3000억 원가량에 코로나19로 증가한 거래액까지 추가해도 1조 원 중반대로 추정된다.
짧은 시일 내에 조 원 단위 규모의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일단 유통 대기업부터 네이버,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까지 인수 후보군으로 꼽힌다. 김현용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네이버는 네이버 예약을 통해 식당예약에 진출했고, 인지도가 낮은 네이버 간편주문을 단번에 2위로 끌어올려 플랫폼 내 서비스 간 시너지를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딜 추진 의의가 크다”며 “카카오톡도 연동을 통해 인수 후 1위와의 격차를 가장 빠르게 줄일 것으로 기대되는 사업자”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후보로 거론되는 곳들은 모두 인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요기요를 인수하고 배달의민족과 경쟁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여 수익을 꾀하려면 마케팅비 등 큰 출혈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당장 수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요기요의 2019년 순손실은 약 580억 원에 달한다. 사모펀드도 뛰어들긴 쉽지 않다.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거나 단기간에 매각해서 투자금을 회수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요기요의 몸값을 낮춰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배민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점유율을 높이고, 요기요는 마케팅을 줄여 점유율을 낮추는 방법이다. 요기요를 매각할 때까지 배민의 경영 상황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우려한 공정위도 “요기요 서비스의 품질 등 경쟁력 저하를 방지하고 매각대상자산의 가치를 유지시키기 위해 DH코리아의 매각이 완료될 때까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DH는 우아한형제들 인수를 위해 자회사 배달통의 점유율을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민과 DH가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달통을 죽인 것”이라며 “정부당국이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요기요 관계자는 “2019년 3월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전략을 얘기할 때 요기요에 사업을 집중하고 배달통은 현상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고, 이동주 의원 지적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다”며 “공정위 최종 심사결과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매각 관련해서 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