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그것이 알고싶다
지난 10월 13일 생후 16개월의 아이가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차디찬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위독한 환자들을 수없이 경험한 응급실 의료진이 보기에도 당시 아이의 상태는 처참했다.
또래에 비해 눈에 띄게 왜소한 데다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인해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있었다. 숨진 아이의 이름은 정인.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입양 271일 만에 하늘로 떠났다.
남궁인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피가 딱 거꾸로 솟는 거 있죠. 콱 이렇게 솟는 거.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 소견이에요”라고 말했다.
의료진은 아이의 몸에 드러난 손상의 흔적들을 단순 사고가 아닌 아동학대라고 판단했고 현장에 있던 양모 장 아무개 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현재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장 씨는 구속기소 된 상태다.
어렵게 입수한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강한 외력으로 인해 췌장도 절단된 상태였다. 양모 장 씨는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 씨의 말에 따르면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홧김에 흔들다 자신의 가슴 수술로 인한 통증 때문에 정인이를 떨어뜨렸다는 것. 그러나 이런 양모 장 씨의 주장으로 아이의 몸에 난 상처들이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까.
입양되어 양부모와 같이 지낸 지난 271일 동안 아이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양모 장 씨 지인은 “차 뒷좌석에 애를 태우시면서 옆구리에 아이를 끼고 정말 짐짝도 그렇게 던지지는 않을 거예요. 팍 던지시더라고요. 아이를”라고 말했다.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한 후 300여개에 달하는 제보가 쏟아졌다. 제보자들의 증언이 쌓일수록 충격적인 학대의 정황이 윤곽을 드러냈다.
장 씨 부부는 입양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입양 가족 모임에 참여하는 등 입양을 염원하고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정인이의 몸에 남은 수많은 학대의 흔적들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었으며 양부모 장 씨 부부는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날 어린이집 측으로부터 정인이의 심각한 몸 상태를 전해 듣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지속적인 학대의 정황으로 인해 5, 6, 9월에 걸쳐 무려 세 번의 아동학대 신고가 있었지만 실제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 아동학대 혐의에 대해 수사가 이뤄지거나 정인이가 양부모로부터 분리되는 일도 없었다.
아이는 매번 장 씨 부부의 품으로 되돌아갔다. 온몸에 멍이 든 걸 알아차리거나, 차에 오랜 시간 방치된 것을 목격하거나, 영양실조 상태를 직접 진단한 이들이 용기를 내 어렵게 신고했지만 정인이를 구할 수 없었다.
수사기관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는 왜 16개월 정인이의 손을 잡아 줄 수 없었을까. 세 차례의 아동학대 신고 과정에서 장 씨 부부는 모든 게 입양 가족에 대한 편견일 뿐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하지만 참담하게도 이들은 건강했던 16개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검찰은 현재 양모 장 씨를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정인이의 죽음이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는게 장 씨의 주장이다.
이호 전북대 법의학교실 교수는 “척추. 이 앞에 이렇게 분포하는 것이 췌장, 소장, 대장, 장간막 이렇게 된다고. 이 부위가 한번 충격받아서 찢어져 있던 것이 (사망) 당일 날 또 충격 받아가지고 이제 장간막 파열이 온 거예요. 그래서 대량 출혈이 발생한 거거든”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실수로는 아이의 췌장이 절단될 만큼의 외력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제작진은 사건 당일 아이에게 가해진 외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실험을 전문가들과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16개월 정인이를 죽음까지 이르게 한 폭력행위, 과연 양모 장 씨의 행동을 실수라고 볼 수 있을까. 죽은 정인이의 몸이 말하는 사건 당일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우리는 정인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을까.
제작진이 단독 입수한 CCTV 영상, 부검감정서 및 사망 당일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되짚어보고 전문가와 함께 한 실험 등을 통해 사건 당일 정인이에게 일어났던 학대행위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