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은 최근 사모펀드(PEF)운용사 JC파트너스와 KDB생명의 경영권을 넘기는 내용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JC파트너스는 PEF를 설립해 KDB생명 공동 대주주인 산은과 칸서스자산운용이 운영하는 ‘KDB칸서스밸류’가 가진 지분을 모두 넘겨받고 KDB생명에 자본확충을 할 계획이다. 남은 절차는 금융당국의 대주주적격성 심사와 본계약 체결 등이다. 이 과정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산은은 10년간 4번째 시도 끝에 KDB생명을 매각하게 된다.
KDB생명의 전신은 금호생명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인 2010년 산은과 칸서스자산운용이 금호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6500억 원을 투입해 이 회사를 떠안았다. 금융위기 후 초저금리 기조가 확산하면서, KDB생명의 최대 무기였던 고금리 저축성 보험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부실이 커졌고 시장에서도 외면 받았다.
서울 용산구 KDB생명보험 본사 전경. 사진=최준필 기자
이번 거래도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이동걸 산은 회장 취임 1년 만에 ‘손해를 보더라도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매각 작업이 다시 시작됐지만, ‘A급 매물’로 꼽힌 푸르덴셜생명과 오렌지라이프가 잇따라 시장에 나오면서 유력 인수자로 꼽혀왔던 주요 금융지주들이 KDB생명 인수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JC파트너스가 2020년 초 등장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산은이 기대했던 6000억~8000억 원 수준보다 낮은 가격인 2000억 원을 제시했다. 여기에 주어진 기한까지 이 인수자금도 모으지 못해 본계약 체결이 미뤄지는 등, 매각이 다시 표류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현재로선 매각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다만 우려 목소리가 크다. 새 주인 JC파트너스의 인수자금 조달 방식 때문에 KDB생명의 자본확충 및 정상화 방안이 불투명해서다.
이번 계약에서 전체 거래 금액은 총 5500억 원이다. JC파트너스는 KDB생명 지분 92.7%를 2000억 원에 사들이고, 투자자를 모아 펀드를 조성해 3500억 원을 유상증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거래 규모는 3500억 원이다. 산은이 1000억 원 어치 대금을 받아 JC파트너스가 조성할 새로운 펀드에 후순위 지분으로 재투자한다. 사실상 매각대금의 절반을 다시 투입하는 셈이다. 여기에 우리은행도 산은보다 선순위로 1000억 원을 투자한다. JC파트너스가 당장 투입할 자금은 1500억 원이고, 나머지 2000억 원은 인수 후에 2차 자본확충 금액으로 추후 조달하게 된다.
산은은 2010년 KDB생명 인수 당시 투입한 자금과 수차례의 유상증자 등을 통해 지금까지 1조여 원을 투자했다. 한 IB(투자은행)업계 관계자는 “과거 산은과 함께 회사를 인수한 공동투자자 등에 대한 매각 대금 정산 등을 마치면, 결국 산은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1000억 원이 채 안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산은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매각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그래도 너무 헐값에 파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 산은과 공동으로 KDB생명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펀드 칸서스자산운용은 앞서 이 거래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으나, 산은 및 다른 출자자들로부터 비토권을 박탈당했다. KDB칸서스밸류는 2020년 9월 10일 사원총회를 열고 펀드 정관을 개정했는데, 펀드의 주요 사항 결정을 위해 투자심의위원회 6명 중 5명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자산 매각이나 SPA 체결도 6명 중 4명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정관 개정에 대해 칸서스자산운용은 반대하고 기관투자자 코리안리는 기권했지만 산은과 다른 출자자들의 동의로 통과됐다. 다른 투자자들은 국민연금, 아시아나항공, 금호석유화학 등이다.
JC파트너스가 조달하는 자금이 후순위채로 발행되는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후순위채는 자본으로 인정은 받지만 당장 들어올 수 있는 돈은 아니다. 만기가 5년 이하로 줄어들면 매년 발행금액의 20%씩 자기자본에서 제외해야 한다. 자본확충을 통해 경영 정상화가 시급한 KDB생명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되는 방식이 아닌 셈이다.
JC파트너스가 우선 투입하는 1500억 원의 절반가량도 후순위채다. 앞서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투자자 모집이 쉽지 않자 후순위채를 섞는 방식으로 투자자 모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추후 유상증자 자금도 투자자들이 보통주 투자를 꺼리고 있어 후순위채로 투자를 모집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1차 인수 자금 모집에도 난항을 겪었던 JC파트너스가 이 자금을 제대로 조달할 수 있을지 우려가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KDB생명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렸다. 대주주가 바뀌면서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약화됐다는 이유다. 특히 후순위채와 신종자본증권이 자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사진=이종현 기자
다만 이번 거래는 산은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반론도 있다. 인구 감소 등으로 보험업황은 앞으로도 하향세가 전망된다. 보험사들에게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관측되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킥스(K-ICS) 도입이 2년 뒤인 2023년으로 다가왔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매각을 미루면 부담만 가중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푸르덴셜생명과 오렌지라이프 등이 높은 가격에 매각되면서 잠재 인수자들이 줄었고, 추가로 중소형 생명보험사 3~4곳도 매물로 언급되고 있어 JC파트너스 외에 새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이번 산은 결정에 힘을 싣고 있다.
JC파트너스는 주식매매계약 체결 전 KDB생명에 신임 각자 대표를 내정했다. 매각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우선협상대상자가 인수할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선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동시에 경쟁 보험사 등에서 전문가들을 경영진으로 스카우트 제안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KDB생명은 인수 완료 뒤 공동재보험사로 탈바꿈한다는 계획이다.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공동재보험은 보험사들의 재무 건전성 관리를 위해 2020년 6월 도입됐다. 보험회사의 금리 위험을 이전하기 위한 재보험 상품으로, 보험사가 보유한 금리 위험을 재보험사에 넘기는 방식이다. 산은은 이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KDB생명을 공동재보험사로 전환하는데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게 보험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초기에 JC파트너스와 업무 협력을 논의하던 미국 칼라일그룹이 국내 하나뿐인 재보험사인 코리안리와 업무 제휴를 체결한 점도 걸림돌이다. 재보험 구조상 보험료 협상이 중요한데, 길어진 저금리 기조가 변수라는 지적도 있다.
관건은 KDB생명의 경영 정상화다. 결과에 따라 이번 산은 선택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거래에 대해 “쉬운 결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산은이 계속 품고 있는 게 산은이나 KDB생명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 새 주인을 찾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다, JC파트너스가 계획한 대로 경영을 하면 KDB생명 정상화도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