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 집으로 입양되기 전 아이 사진. 오른쪽 손등의 반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상처가 없다. 사진=위탁모 신 씨
양부모에게 입양된 뒤 줄곧 학대를 당하다 사망한 16개월 정인이 사건을 두고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양기관 등의 부실 대응이 드러나고 있다. 주변인들은 지속적으로 학대 의심 신고를 해왔으나 아동 보호 의무가 있는 기관이 이를 외면해온 것이다.
경찰은 학대 의심 신고를 모두 내사 종결하거나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의견 송치했다.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은 조사에 동행하고도 양부모의 진술을 듣고 경과를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에는 “아이가 양부에게 거부하는 모습 없이 잘 안겨 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일각에서는 입양을 담당한 기관의 부실한 사후관리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입양기관은 입양특례법상 입양이 이뤄진 뒤 1년 동안 가정을 방문해 아동의 발달과 적응상황, 어려움을 조사해 이를 보고서로 작성하는 등의 사후관리를 하도록 되어 있다. 학대가 있었다면 이 과정에서 발견됐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입양기관은 아동학대 징후를 포착하고도 아동보호기관과 상황을 공유할 뿐 신고는 하지 않았다.
2020년 아동권리보장원이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인 양의 입양을 담당한 홀트아동복지회는 2020년 3월과 5월 두 차례 가정방문을 했다. 1차 방문 당시 보고서에는 ‘특이사항이 없었으며 부부와 아동 및 친생자녀는 건강하고 안정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쓰여 있었다. 5월 26일 2차 방문 당시에는 이미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으로부터 아동학대 의심 신고 사실을 공유받은 시점이었다. 정인이의 몸 주변에서는 상흔이 발견됐고 양부모는 아이의 배와 허벅지 안쪽에 생긴 멍자국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후관리보고서에는 ‘아동양육에 보다 민감하게 대처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안내’라고만 기재되었다.
7월 한 차례 더 가정방문이 있었으나 신고가 재접수된 9월과 10월에는 유선전화로만 정인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양부모가 방문을 거부한 까닭이다. 마지막 통화는 10월 3일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양부모와 통화를 하고 ‘현재 아동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여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정인 양 사망 10일 전이었다. 입양기관장과 종사자는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로 규정되어 있다.
2016년 국내 4대 입양기관의 인력 현황. 출처=보건복지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이분에 따른 입양 지원 체계 개편 방안’
사후관리를 담당하는 인력도 부족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을 위해 입양기관들로부터 제출받은 업무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4대 입양기관의 사후관리 상담사는 각각 6명, 5명, 4명, 1명에 불과했다. 그해 입양아동은 880명이었다. 1인당 입양아 55명씩 사후관리를 맡은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 결과 입양기관의 전체 고용인력은 2012년부터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문가에 따르면 지금까지 입양기관의 업무 현황과 관련해서 공개된 자료는 위 자료가 유일무이하다. 정부도 위탁아동의 정보, 입양 비용, 수입 및 지출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우리나라 입양 업무를 65년 이상 민간 입양기관에서 주도해 온 까닭이다. 국가가 개입하는 단계는 가장 마지막 절차인 가정법원 허가 과정이 유일하다. 2020년 사후관리 상담 인력 현황에 대해 홀트아동복지회는 답하지 않았다.
홀트아동복지회는 2014년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입양진행절차 부적정으로 지적을 받기도 했다. 입양아동을 부모와 결연하기 전 가정조사 실시, 작성 및 발급과 범죄경력조회, 예비양부모교육 등의 과정을 진행해 양부모가 될 자격이 있는지 충분한 검토를 거쳐야 하는데 가정조사 전 결연을 진행한 것이 총 29건이나 드러났다. 이후 두 건의 입양은 취소된 바 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지난 6일 입양아동 학대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복지회 관계자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기에 내용이 부족한 공식 답변으로 상황을 전해 많은 분들께 실망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잔혹한 죄를 저지른 양부모가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입양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입양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동시에 평생에 걸친 여정이기에 책임감 있는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민간 입양기관은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가능하면 많은 아동을 입양 보내는 방향으로 업무가 진행되기 쉬운 구조”라며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원칙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는 입양기관에 입양 건당 270만 원(국내)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있다.
한편 20대 국회에서는 아동의 입양 적격성을 지방자치단체에서 판단하도록 하는 등 민간주도로 진행해 온 입양 과정과 절차에 공공성을 강화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안이 발의되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21대 국회에는 관련 개정안이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