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이 안치된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찾은 시민들이 남긴 추모 메시지와 꽃들. 사진=연합뉴스
#온라인 달군 좌표찍기
‘신상털기’와 ‘좌표찍기’라는 용어는 보통 ‘2차 가해’라는 개념과 함께 한국 온라인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사안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지만 정인이 사건에선 ‘신상털기’와 ‘좌표찍기’가 아무런 제지 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부모의 실명은 물론이고 직장 등에 대한 신상이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다. 정인이 양부가 직장에서 해고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정인이 양부’가 며칠 동안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에 올랐을 정도다. 게다가 정인이 양부는 정인 양을 입양한 뒤 가족이 함께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요즘 당시 방송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 돌아다니면서 사실상 얼굴까지 공개됐다.
신상털기에 이어 좌표찍기도 이어지고 있다. 아동학대 관련 이슈인 만큼 처음에는 맘카페를 중심으로 관련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런 흐름이 확산되고 있다. 정인 양의 구내염을 진단했던 병원, 정인이 양부모의 부친들이 목사로 있는 교회, 양모의 모친이 운영 중인 어린이집 등의 구체적인 정보가 온라인에서 공유되고 있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양부와 함께 정인 양을 데려간 소아과에서 단순 구내염으로 진단해 양부모와 정인 양의 분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알려지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해당 소아과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항의전화나 공격적인 댓글 수준에서 끝나지 않고 아예 해당 소아과 의사의 의사면허를 박탈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해당 소아과 의사는 한경닷컴 인터뷰에서 “정인이 입 안 상처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증상을 놓쳐 구내염으로만 오진한 게 아니며 부적절한 이유로 정인이 양부모를 도와준 게 절대 아니다”라며 “저와 저희 병원 의료진은 오해한 국민들로부터 견디기 힘든 비난을 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인이 양부모의 부친들이 목사인 교회들과 양모의 모친이 운영 중인 어린이집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도 공유됐다. 지역 맘카페를 중심으로 해당 교회와 어린이집을 향한 글이 거듭 올라오고 있다. 이처럼 정인이의 양부모는 모두 기독교 집안의 자제들로 기독교인이다. 이에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대표회장 소강석 목사)는 1월 4일 “정인 양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한다. 그리고 정인 양의 양부모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대신 깊은 사죄를 드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온라인에는 정인 양 양부모에 대한 각종 정보가 넘쳐난다. 실명은 물론이고 이들이 과거 방송에 출연했던 터라 당시 방송 캡처 사진까지 공유되고 있다. 사진=EBS 방송 화면 캡처
#경찰·검찰 ‘뭇매’
‘정인이 사건’이 다시 세간의 화제를 집중시킨 계기는 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정인이는 왜 죽었나? -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편을 방영하고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더 근본적인 계기는 2020년 12월 8일 서울남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이정우 부장검사)가 정인이 양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학대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양부는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이다. 양모에게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 양부는 공범이 아닌 아동유기·방임 혐의가 각각 적용된 것을 두고 비난 여론이 뜨거웠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내용을 바탕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만큼 검찰이 살인죄와 공범 등으로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판결도 아동학대치사와 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제한된다. 이에 시민들이 서울남부지검 청사 앞으로 근조화환을 가득 보내는 등 분노감을 표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이후 경찰을 향한 분노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1월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아동학대 방조한 양천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파면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고 단 하루 만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의 지휘책임을 물어 서울양천경찰서장을 6일자로 대기발령 조치했다.
경찰에 비난 여론이 집중된 까닭은 부실수사다. 서울 양천경찰서는 2020년 5월, 6월, 9월 세 차례나 양부모의 정인 양 학대 의심 신고를 접수했지만 학대 증거를 찾지 못했다며 사건을 내사 종결하거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양천경찰서 역시 좌표찍기의 대상이 돼 홈페이지가 한때 접속이 안 될 정도로 비난 글이 폭주하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6일 서울남부지검에 이화섭 양천경찰서장을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정인이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은 1월 13일 열린다. 경찰 수사와 검찰 기소를 두고 비난 여론이 뜨거운 가운데 이제 법원으로 공이 넘어가게 된다.
#발의와 계류만 잘하는 국회
당연히 정치권도 참전했다. 국회는 1월 8일까지 아동학대 예방과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여야가 합의했다. 소위 ‘정인이법’의 등장이다.
현재 국회에 올라가 있는 아동학대 관련 법 개정안은 민법, 아동학대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무려 40여 개나 된다. 국회는 제출돼 있는 관련 법안들을 정리해 법사위 소위 논의를 거쳐 8일 임시국회 종료 전까지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1월 5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아동학대방지3법(정인이보호3법)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박은숙 기자
해당 법안들에는 학대 피해 신고 접수 즉시 피해 아동과 가해자 분리, 가해자 신상 공개, 5년에서 10년으로 아동학대치사죄 형량 강화, 3년 이내 재범 시 형량 2배 가중, 가해자가 조사를 거부할 경우 과태료 부과 등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이런 국회의 발 빠른 움직임을 바라보는 민심은 여전히 불편하다. 아동학대를 둘러싼 논란과 사회적인 관심은 정인이 사건 이전에도 여전했다. 그렇지만 국회는 관련 법안을 발의하기만 했을 뿐 이를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계류시켰다. 법안 통과는 뒷전이고 정쟁만 일삼는 국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발의와 계류뿐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정인이법’처럼 피해자 이름을 활용할 수 있을 만큼 크게 사회적인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서만 움직이며 뒷북 대응을 하는 국회 역시 ‘생색법 메이커’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