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쿠팡 창업자가 공동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만 맡고, 쿠팡은 2인 대표 체제로 전환한다. 왼쪽부터 김범석 의장, 박대준 대표, 강한승 대표. 사진=쿠팡 제공
#코로나19 수혜주 쿠팡, 다음 행보는 상장?
코로나19 사태 속 비대면 소비가 늘며 온라인 쇼핑거래액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1월 5일 통계청의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온라인 쇼핑거래액은 15조 63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2% 증가했다. 2001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월별 거래액이 15조 원대에 올라섰다. 지난해 1~11월 누적 거래액은 145조 원으로 2019년의 전체 거래액 135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1년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유통부문 대표는 “2020년 온라인 유통시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5년치를 한 번에 성장했다”며 “생필품 중심의 온라인유통 2.0시대에서 ‘직접 보고 구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선식품과 패션, 뷰티 제품 중심인 온라인유통 3.0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쿠팡’은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업계에서는 쿠팡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40%가량 늘어난 1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쿠팡 창업주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21년 쿠팡은 김범석·고명주·박대준·강한승 4인 각자 대표 체제에서 강한승·박대준 2인 대표 체제로 전환된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만 맡게 됐다. 지난해 10월 강한승 대표를 영입해 3인에서 4인 공동 대표 체제로 변경한 지 3개월도 안 돼 2인 체제로 다시 변경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김범석 창업주는 이사회 의장으로서 회사의 전략 수립과 혁신을 이끄는 일에 전념할 계획이다. 박대준 대표는 신사업을, 강한승 대표는 쿠팡 운영과 인사 노무 관리를 총괄한다. 이에 대해 쿠팡은 “보다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역할 분담을 통해 쿠팡의 사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결정”이라고 사내 직원들에게 공지했다.
하지만 대표 체제 전환을 두고 쿠팡의 나스닥 상장을 배경으로 꼽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추정대로 쿠팡이 모든 투자금을 소진했다면 상장을 통해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 블룸버그는 쿠팡이 이르면 2021년 목표로 기업공개(IPO·상장)를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8월 쿠팡은 미국 뉴욕에서 기관 투자자를 상대로 기업설명회인 로드쇼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곳간은 비어가고 있다. 누적 적자가 투자금을 넘어선 지 오래다. 2014년 세콰이어캐피탈과 블랙록으로부터 각각 1억 달러, 3억 달러를 투자받았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총 3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금까지 총 유치한 투자금은 총 34억 달러(약 3조 6941억 원)다. 2019년 기준 쿠팡의 누적 적자는 3조 7496억 원이다. 1조 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이는 2020년 적자까지 합치면 5조 원에 육박한다.
문제는 성장의 발판이 된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투자를 유치하기도 쉽지 않다. 대주주인 소프트뱅크까지 앞으로 투자 대상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고 구제하는 일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사업에서 약 20조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체 투자사 88곳 중 50곳의 기업 가치가 떨어졌다. 지난해 1~3월 소프트뱅크그룹은 16조 5000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대표에서 물러난 김범석 창업주가 나스닥 상장에 집중할 것으로 분석되는 이유다.
쿠팡이 정·관계, 금융계 인사를 영입하고 핀테크, 배달앱, 택배업, OTT 등 신사업에 과김히 진출하는 배경으로 나스닥 상장이 꼽힌다. 사진=일요신문DB
#거물급 인사 영입에 신사업 진출까지
쿠팡이 공식적으로 상장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다만 물밑에선 상장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중론이다. 실제 쿠팡은 2019년 글로벌 정·관계, 금융계 인사를 연이어 영입했다. 3월 월마트 부사장을 지낸 제이 조르겐센을 최고법률책임자 겸 최고윤리경영책임자(CCO)로, 10월에는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를 쿠팡LLC 이사회 멤버로 선임했다. 케빈 워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거물급이다. 같은 해 11월에는 나이키와 월마트를 거친 재무 전문가 마이클 파커를 최고회계책임자(CAO)로 영입했다. 12월에는 한국, 미국, 유럽 회사에서 CFO로 활동한 25년 경력의 알베르토 포나로를 신임 최고재무관리자(CFO)를 영입했다.
이런 가운데 쿠팡의 신사업 진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배달앱 쿠팡이츠는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인수합병 발표를 기점으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지난해 7월에는 ‘로켓제휴’를 선보이며 풀필먼트서비스 사업을 본격화했다. 풀필먼트는 상품 입고부터 포장, 출하, 배송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처리해주는 택배사의 3자 물류 사업이다.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는 택배 사업을 하기 위해서 국토교통부에 화물자동차 운송사업자 지정 신청서를 지난해 10월 제출했다. ‘로켓배송’에 집중하겠다며 택배 사업 자격을 자진 반납한 지 1년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지난해 8월에는 자회사 ‘쿠팡페이’를 공식 출범하고 핀테크 사업에 나섰다. 12월에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를 론칭했다. 쿠팡 상해 무역 유한회사를 설립해 해외직구 서비스인 ‘로켓직구’를 중국으로까지 사업을 확대하기도 했다. 올 초에는 ‘쿠팡 라이브 크리에이터’ 앱을 출시해 라이브 커머스 플랫폼에 나설 예정이다.
쿠팡의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 배경으론 상장 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증시까지 ‘꿈 대비 주가 비율’을 뜻하는 ‘PDR(Price to Dream Ratio)’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전기차 기업 테슬라 주가는 연초 86달러에서 연말 700달러까지 급등했다. 시가총액이 715조 원으로 치솟아 주가수익비율(PER)이 1300배를 넘어섰다. 전기차 시장에 대한 성장 기대감 이외에 기존의 주가평가지표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수치다. 쿠팡이 누적 적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신산업에 무리하게 진출하는 것이 상장 전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되는 이유다.
다만 기존 사업부터 신사업까지 수익성을 증명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실제 2019년 미국의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는 수익성에 대한 물음표를 해결하지 못한 채 2019년 IPO를 추진하다가 무산됐다. 상장서류 제출 후 사업모델의 수익성, 기업 지배구조 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됐고 결국 이 고비를 넘지 못했다. 결국 기업가치는 470억 달러에서 150억 달러까지 급락했다.
쿠팡의 상장을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승우 SK증권 연구원은 “쿠팡은 사업별 평가가치 합산(SOTP)을 활용해 신사업의 미래 수익성을 반영해 상장에 나설 수 있다”며 “2020년 연간 실적이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쿠팡의 적자 폭이 상당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적자 폭이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투자설명서를 작성할 것이다. 위워크가 수익성을 증명하지 못한 것과 상황이 다르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쿠팡 관계자는 “상장에 나서겠다고 밝힌 적이 없고, 재무 상태를 말씀드릴 수는 없다”며 “신사업 진출도 고객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에 진출한 것이지 상장과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