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오너이자 이사회 김범석 의장이 창립 초기부터 내세우던 자사 모토다. 김 의장은 해외 언론과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모든 사용자 입에서 자사 모토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는 포부를 밝혀왔다.
“How would I live without Coupang?(쿠팡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쿠팡의 오너이자 이사회 김범석 의장이 창립 초기부터 내세우던 자사 모토다. 김 의장과 손 마사요시(한국명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창립자이자 회장이 악수를 하며 웃고 있다. 사진=쿠팡 제공
쿠팡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최대 수혜를 누린 동시에 가장 이미지를 많이 실추한 기업이다. 쿠팡은 2020년 2월부터 9월까지 국내 기업 가운데 신규 채용을 가장 많이 했다. 그만큼 주문 물량이 급증한 셈이다. 하지만 쏟아지는 물량을 쳐 내기 위해 무리수도 뒀다. 2020년 5월엔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숨기고 직원들을 출근시켜 152명 집단감염을 일으켰다. 바쁘게 돌아가던 쿠팡 사업장에선 2020년 한 해 동안 밝혀진 사망자만 5명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은 모두가 ‘쿠팡 없인 못 살아’를 외치게 하겠다는 김 의장의 바람을 앞당길 호재일까, 혹은 ‘쿠팡 때문에 못 살아’를 외치게 하는 악재일까. 2020년 한 해 코로나19와 관련해 쿠팡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갓팡” 코로나19 특수 톡톡
쿠팡은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보며 많은 사용자의 호감을 샀다. 물건을 당일 배송해주는 ‘로켓배송’과 신선식품 새벽 배송 ‘로켓프레시’는 집밖 출입이 꺼려지는 코로나19 정국에서 효자 서비스로 떠올랐다.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쿠팡은 마스크 가격을 동결하며 ‘갓팡’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배달 기사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회원들이 서울 잠실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주문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쿠팡에선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쿠팡은 2020년 3분기 말 기준 4만 3171명을 고용하며 삼성전자, 현대차에 이어 고용 규모 국내 3위를 기록했다. 신규 일자리 창출만 놓고 보면 1위다. 2020년 2월부터 9월까지 1만 3744명을 신규 고용했다. 쿠팡의 성장을 알 수 있는 지표다. 쿠팡이 운영하고 있는 음식 배달 중개 서비스인 ‘쿠팡이츠’ 또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150만 명이 쿠팡이츠를 썼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기존 3강 구도를 깨고 3위를 차지했다. 쿠팡이츠는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50만 명 이상 사용자가 늘며 70% 성장했다.
#쿠팡발코로나19 피해자 모임 결성
쾌재를 부르던 쿠팡이 가장 큰 패착을 둔 건 지난해 5월이었다. 쿠팡은 5월 23일 부천 신선식품 물류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사실을 감추고 직원들을 정상 출근시켰다. 확진자가 속출하자 5월 25일 쿠팡은 부천 물류센터를 폐쇄했다. 하지만 결국 152명의 집단감염을 불러왔다.
쿠팡피해자모임과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지원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서울 잠실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로나 집단 감염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쿠팡발 집단감염의 대표적인 피해자로 꼽히는 건 전 아무개 씨다. 전 씨는 부천 물류센터에서 일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곧 감염이 남편과 딸에게 전파했다. 남편은 코로나19 감염으로 혼수상태에 빠졌고 여전히 병원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쿠팡 집단감염을 계기로 쿠팡발코로나19피해자모임이 결성됐다. 피해자모임은 거리두기가 이뤄질 수 없는 현실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쉬는 시간이 허용되지 않거나 화장실 갈 때도 이름과 전화번호를 쓰고 가야 하는 등의 열악한 쿠팡 노동 환경을 언론에 지속해서 고발했다. 결국 9월과 11월 두 달 이상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의 중재로 쿠팡과 피해자모임은 집단감염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고건 피해자모임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했지만 보상을 해주면 차후 소송에 불리해질 수 있다며 쿠팡이 이를 묵살했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쿠팡의 입장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여기는 세기말 7층”
2020년 한 해 동안 쿠팡 관련 사망자는 5명이다. 쿠팡이 사과한 적은 없다. 시작은 3월이었다. 한창 주문이 늘고 있을 무렵 46세 쿠팡맨(현 쿠팡친구)이 새벽배송 도중 물건을 옮기다가 안산의 한 빌라 계단에서 사망했다. 쿠팡맨 노조는 1시간에 20가구를 소화해야 하는 과도한 물량이 배정됐다고 주장했고, 이에 쿠팡은 해당 쿠팡맨은 들어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숙달된 쿠팡맨의 50% 물량을 배정했다고 주장했다.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뒤 집에서 갑작스럽게 숨진 고 장덕준 씨 어머니 박미숙 씨가 2020년 10월 26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가 열린 정부세종청사 고용부에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과 면담을 갖고 아들이 근무했던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0월 12일 오전 6시쯤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27세 장덕준 씨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뒤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장덕준 씨는 1년 넘게 일용직으로 저녁 7시부터 이튿날 새벽 4시까지 심야 노동을 했다. 쿠팡에서 일하는 1년 4개월 동안 75kg이던 몸무게는 60kg으로 줄었다. 자신이 일하던 곳을 두고 “여기는 세기말 7층”이라는 표현을 쓰던 그였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장 씨의 부모에게 쿠팡은 홈페이지에 반박자료를 올려 “고인은 택배 분류가 아닌 포장 지원 업무를 맡았고, 주 52시간을 넘기지 않았으며, 매월 쿠팡이 상시직 전환을 권유했지만 고인이 자발적으로 일용직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장덕준 씨는 과로사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이후 이천에 있는 쿠팡 마장 물류센터에서 일하던 50대 납품업체 직원이 11월 10일 갑자기 어지러움을 호소한 뒤 그 자리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이 직원은 물류 자동화 시스템 설비의 검수 작업을 하던 납품업체 소속이었다. 그는 사망하기 전 70일 동안 추석 연휴를 포함해 고작 15일 쉬었다. 정확히 확인되는 시간만 41일 동안 576시간을 일했다. 하루 평균 14시간 이상 일한 셈이다.
당시 쿠팡은 일요신문에 “쿠팡은 건설공사의 발주사로서 실제 시공을 맡은 화동하이테크의 업무에 관여할 수 없다”고 답했다.
#국감장서도 불성실한 답변
장덕준 씨가 사망한 뒤 쿠팡의 태도는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쿠팡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했다. 10월 27일, 국감장엔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나왔다. 변호사를 대동한 엄 전무는 국어책 읽듯 준비된 답변을 했다. 준비된 답변에 사과는 없었다.
엄성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전무가 2020년 10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근무 후 집에서 숨진 고 장덕준 씨와 관련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은미 의원이 엄성환 전무에게 “스물일곱 살이 야간 근무한 뒤 쓰러져서 죽었다. 8월 한 주 7일 연속 실 근무 시간이 59시간이다. 야간 근무를 고려한다면 근로 시간이 70시간이 넘는다. 고인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엄성환 전무는 “고인과 그의 가족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달 드린다”고 답했다.
보다 못한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위로를 드린다고 하는데 사과 뜻이죠?”라고 묻자 엄성환 전무는 “심심한 애도를 표한다”고 버텼다. 윤준병 의원이 다시 한번 “그게 사과의 뜻이죠?”라고 물었지만 엄성환 전무는 “말씀 그대로 이해해달라”고만 말했다. 결국 엄성환 전무는 이날 장덕준 씨의 부모를 만나지 않고 회사로 돌아갔다.
쿠팡과 관련한 질의가 끝나자 보다 못한 송옥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엄성환 전무에게 일침을 날렸다. 송옥주 위원장은 “증인께서 답변하는 태도를 온 국민이 보고 있다. 이렇게 불성실하게 답변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사과나 반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된다. 쿠팡에 대한 기업 이미지가 많이 훼손됐다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사과 한마디면 됐을 걸”
쿠팡은 여전히 좋은 이미지로 많은 사용자에게 호감을 사고 있다. 하지만 고건 쿠팡피해자모임 대표는 “겪어봐야 안다. 쿠팡을 겪어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며 “쿠팡은 대외적으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노동자와는 소통하지 않는다. 사과 한마디면 됐을 걸 여기까지 끌고 왔다. 유체이탈화법으로 모든 사안에 대답을 회피한다. 쿠팡발 코로나19 최대 피해자인 전 씨에겐 아무런 말도 없이 월급의 두 배를 입금했다. 차후 소송에 대비해 위로금을 준 것으로 이해한다. 굉장히 모멸적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고 장덕준 씨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위원들에게 애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실제 엄성환 전무가 국회에 나와서 보인 ‘유체이탈화법’을 겪은 뒤 송옥주 위원장뿐만 아니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양이원영 의원이 가혹한 근무 환경을 지적하며 “교대제를 도입할 의향 없느냐”고 묻자 엄성환 전무는 “지금 고인은 단기직 근무자로서 본인이 근무 시간과 근무 날짜를 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동문서답했다.
양이원영 의원이 보충 설명을 기다리자 엄성환 전무는 13초 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개선할 점이 없는지 찾아보고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양이원영 의원은 “사업장에서 스물일곱 살짜리가 죽어 나가는데, 그렇게 답변하면 되느냐”며 지적했다.
두 달 넘게 쿠팡과 쿠팡피해자모임을 중재한 이원정 을지로위원회 총괄팀장은 “쿠팡이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는 피해자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법적으로 하라고 나왔다. 이곳이 손해배상 규모가 큰 미국이었다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안타깝다”며 “코로나19라는 처음 있는 이런 사태에서 노동자를 위로하는 게 맞다. 결국 쿠팡의 기업문화와 소통의 부재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