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구직자들이 자주 찾는 취업사이트에 ‘1년 이상 근무한 메이저 항공사 출신 승무원을 모집한다’는 채용공고가 올라와 구직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구직 공고를 올린 회사는 인터넷 검색 사이트 회사인 프리챌이었다.
채용공고를 자세히 읽어보면 승무원 경력자, 미인대회 출전자 등으로 지원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구직자들은 ‘아예 드러내놓고 예쁜 사람을 뽑겠다는 것’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채용공고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일요신문>은 뜻밖의 제보를 받았다. 이번 채용공고가 난 곳은 여사원 A 씨가 성희롱 논란으로 퇴사한 부서라는 것이다.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프리챌의 채용 논란 속으로 들어가 봤다. 프리챌 측은 애초 홈페이지를 통해 전략기획실에 적합한 인재상에 대해 ‘광고대행사 경험자 및 마케팅·경영학 전공자’로 정의해 둔 상태였다. 전략기획실 한 관계자는 언론을 통해 “승무원이나 미인대회 출신이라는 자격 조건을 둔 건 일종의 역발상”이라며 “그 같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사회에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들여 키운 인재들이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는 대외 홍보나 기획 업무에도 뛰어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프리챌 측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채용 배경을 의심케하는 제보가 <일요신문>에 접수됐다. 익명의 제보자는 채용공고를 낸 부서에서 있었던 불미스런 일에 대해 털어놨다. 이 부서에서 여사원 A 씨가 상사 B로부터 상습적인 성희롱을 당한 후 퇴사했다는 것이다.
어렵게 기자와 연락이 닿은 A 씨는 “채용공고를 보고 망연자실했다”며 그동안의 일들에 대해 털어놨다.
A 씨는 올해까지 프리챌 내 주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사 B 씨의 상습적인 성희롱 때문에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상사 B 씨는 “이 분야에서 성공하려면 톱스타의 몸매가 아닌 너로서는 타이트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어야 하고, 화장을 진하게 해야 한다”라고 말하거나 업무와 관련해서도 “기자들에게 ‘오빠’라고 부르고 스킨십과 귀여운 애교는 기본이니 연습하라”는 등의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A 씨는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입사했는데 외모에 관한 평가를 자주 하는가 하면 심지어 ‘넌 예뻐서 뽑힌 거다’ ‘오빠라고 불러봐’라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들었을 때는 성매매 여성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입사 후 반복되는 성희롱에 A 씨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됐다.
회사를 방문할 용기가 없었던 A 씨는 인사팀에 전화를 걸어 퇴직의사를 밝히고 상사 B 씨의 성희롱이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며칠 후 인사팀장이 A 씨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 ‘회사에서 B 씨의 문제를 알게 됐다. A 씨에게 정식 사과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져 B 씨가 사과전화를 할 것이다. 만약 받기 싫다면 받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 뒤 ‘퇴직사유에 일신상의 이유라고 적으면 된다’고 주문했다. A 씨는 관련 메일을 기자에게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A 씨는 상사 B 씨에 대한 조치가 취해지고 있다는 인사팀장의 말을 믿고 ‘일신상의 이유로 퇴사한다’고 적었다.
그러나 B 씨에 대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고 퇴사 사유를 ‘일신상의 이유’라고 적은 탓에 A 씨는 실업급여 대상자도 될 수 없었다.
A 씨는 회사 측에 퇴사 사유를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오히려 며칠 후 회사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상사 B 씨는 A 씨가 퇴직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과 아나운서 출신의 사원 두 명을 충원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채용공고 역시 상사 B 씨가 직접 미인대회 출신, 승무원, 모델 출신 등으로 자격을 제한해 채용공고를 냈다고 한다.
A 씨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프리챌 측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9월 1일 기자와 통화한 인사팀장은 “성희롱 때문에 퇴사한 사원은 아무도 없다.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이 있긴 했는데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걸로 해결됐다”고 말한 뒤 ‘여사원으로부터 성희롱에 관한 제보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농담 식으로야 몇 번 듣긴 했지만 퇴사 사유가 성희롱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동부에 접수된 사건이 B 상사에 관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혀 상관 없는 것이다”고 답했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한 결과 A 씨는 퇴직 사유를 성희롱으로 변경하기 위해 노동부에 경위서를 제출한 상태였고, 기자와 통화한 인사팀장은 성희롱 사실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한다는 메일을 A 씨에게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