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권에서 PC방을 운영하다 가게를 정리하고 있는 A 씨의 말이다. 앞서 정부의 형평성을 꼬집었던 A 씨는 결국 2020년 말 폐업을 결정했다. 그는 ‘더 이상 나아지리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PC방에 있던 컴퓨터도 업자에게 헐값에 넘기게 됐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점포들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여기저기 형평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운동시설 운영자들은 단체행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헬스트레이너 겸 방송인 양치승 씨, 헬스장 4개를 운영하는 래퍼 스윙스 씨도 헬스장 운영을 요구하며 국민청원 참여를 호소했다. 이들은 ‘태권도장은 되는데 헬스장은 안 되는 이유를 말해 달라’며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자영업자들은 정부 지침에 자신의 업종이 포함되는 순간 매출 제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2020년을 거쳐 2021년 현재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은 2018년 기준 국내 자영업자 비중이 25.1%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7번째로 높다. 코로나로 인해 극한 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쏟아지고 있다. 일요신문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호소하는 자영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앞서 A 씨는 “코로나 이후 지속적으로 장사가 악화됐다. 3월 마스크 의무 조치 이후로 손님이 확연히 줄었고 영업금지 조치가 있던 8월부터는 손님 구경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PC방은 고위험 시설로 분류돼 8월 19일부터 9월 14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영업금지 조치가 있었다. A 씨는 “이때 단골 고객들이 고사양 컴퓨터를 사기 시작했다. 어차피 언제 다시 닫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단골마저 사라지자 영업하는 의미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PC방의 경우 요금은 전기료, 게임사에 내는 돈 정도고 실제로는 음식을 팔아 매출을 올리는데 음식 섭취가 금지돼 문을 닫는 게 더 이득인 상황이 됐다. 지금은 카페도 중단됐지만 얼마 전까지는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카페는 되고 PC방은 안 된다는 게 형평성에 안 맞는다고 생각했었다”고 털어놨다.
동대문 패션상권의 한 대형쇼핑몰에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B 씨도 장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손님이 아예 없다. 중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이 아예 사라지면서 거리가 한산해진 탓인지 우리나라 사람들도 발길이 끊겼다. 순수익이 아니라 매출이 100만 원이다. 임대료가 1000만 원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B 씨는 “동대문은 외국인이 들어오지 못하면서 사실상 사망선고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지하상가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는 호소문이 붙어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같은 쇼핑몰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C 씨는 임대료가 밀려 집에 압류까지 들어온 상태다. 그는 취재진과 얘기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C 씨는 “대형쇼핑몰 빌딩들이 이런 천재지변에 임대료라도 조금씩 부담해줄 수는 없나. 지금 상황은 아예 장사가 불가능한 말 그대로 재난 상황이다”라고 울먹였다.
5인 이하라면 상대적으로 운영이 자유로운 음식점도 타격은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요식업계에서는 맛집으로 소문난 경복궁 인근 삼계탕집 토속촌이 배달을 시작한 게 화제였다. 한겨울에도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는 토속촌마저 배달한다는 게 현재 요식업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다만 음식점들의 타격은 일정하지 않았다. 최근 홍대 상권에서 음식점을 하다 폐업한 D 씨는 “배달이 핵심이 되면서 1, 2등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전부 어려워지는 세상이 됐다. 손님 입장에서는 예전에는 줄서서 먹던 1등 업체도 사람이 줄어들면서 굳이 3등, 4등 업체를 찾을 필요가 없다. 맛집이 배달에 뛰어들면서 굳이 배달도 애매한 곳은 주문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D 씨는 “나도 빠르게 배달 시장에 진입하면서 초기에는 수익이 꽤 많이 났고 일손이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가 심해지고 배달이 늘어난다는 기사가 나면서 오히려 배달 주문이 줄어들었다”고 회상했다.
신촌에서 와인바를 하는 E 씨는 ‘음식점은 상황이 오히려 낫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와인바는 대체로 1차로 식사를 하고 2차로 오는 곳이다. 우리 가게도 저녁 7시부터 시작해 새벽 2~3시까지 영업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저녁 7시에 오픈해 9시면 닫아야 한다. 손님 구경을 아예 못하는 날이 훨씬 많다. 와인바는 장시간 대화를 나누려고 오는 데다. 식사하고 30분~1시간 이용하려고 오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E 씨는 오는 2월 와인바 가게 임대 계약이 만료되면 장사를 접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가게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 나갈 수도 없었다. 2월이 되면 장사를 접을 생각이다. 권리금은커녕 건물주가 원상복구하고 나가라고 하면 비용이 얼마가 들지 벌써부터 걱정된다”고 밝혔다.
소위 유흥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대구에서 노래클럽(단란주점)을 운영하는 F 씨는 “오늘이 한계라고 생각한 지 몇 주일 됐다. 정말 죽을 생각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하소연했다. F 씨는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그 전에 사람이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막아야 하는 50만 원이 없어 빌리러 다녔다. 정말 길게 잡아 2주도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F 씨는 기자에게 “좌절하지 않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명동거리에 관광객과 시민의 발길이 뜸하자 노점상이 사라지고 임시휴업·영업종료 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코로나 사태 약 1년이 지나면서 중국인, 일본인 상권으로 대표되는 명동도 죽은 거리가 됐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이 없다. 메인 도로는 전부 임대 표시가 붙어 있다. 유명 패션브랜드 점포마저 임대를 내놓은 상태다. 전국 땅값 1위 명동 네이처 리퍼블릭 옆 유니클로 명동중앙점도 1월 31일 문을 닫는다. 명동중앙점은 유니클로 국내 최대 규모 매장이다. 일본 불매운동에다 명동 상권 쇠퇴까지 겹치면서 결정한 선택으로 보인다. 한 명동 상인은 “한때 가장 장사가 잘 되던 유니클로가 문 닫는 걸 보면 나머지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혀를 찼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