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한은행이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을 고소해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신한은행 본점 전경.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신한은행은 지난 2일 오전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신 사장의 친인척 관련 불법 대출에 대한 민원이 접수돼 조사를 벌인 결과 상당부분이 사실로 드러나 신 사장과 당시 대출 관련 여신담당자 등 7명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한은행 측은 지난 2003년 신 사장이 자신의 사촌 매형이 대표이사로 있는 종합레저업체 K 사와 관계사 2곳에 950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신 사장이 시중은행들이 통상 취급을 꺼리는 브리지론(사업 착수를 위한 초기자본)을 이용해 K 사의 골프장 개발을 위한 명목으로 500억 원을 대출토록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는 것이다.
또 신한은행은 자격요건에 미달됨에도 불구하고 신 사장의 지시하에 K 사 관련업체 2곳에 워터파크와 에너지 관련 개발 자금 명목으로 450억 원의 부정 대출이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시 심사를 담당한 직원은 대출을 거부했다가 좌천됐고 사표를 쓰는 사태까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 외에도 신한은행 측은 신 사장이 자문료 명목으로 약 15억 원을 횡령해 업무추진비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사장이 ‘카드깡’을 하거나 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만들어 자문료를 빼돌렸다는 것이다.
이런 신한은행의 주장에 대해 신 사장은 “불법대출은 결코 없었다”며 배임·횡령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신 사장은 지난 3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은행 대출 심의 절차상 사장 개인의 결정으로 부당 대출이 이뤄질 수가 없다”며 “대출 받은 회사가 망해서 회사에 손실을 끼친 것도 아닌데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검찰 조사가 이뤄지면 무죄가 밝혀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신한금융지주는 그간 경쟁사인 KB금융 우리금융 등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과는 달리 견고한 리스크 관리와 확고한 지배구조를 갖춰 은행계의 신뢰를 얻어왔다. 그러나 최근 금융당국이 라응찬 회장의 금융실명제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시련을 겪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 신한은행이 직접 나서서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검찰 고발 조치는 물론 보도자료 등을 통해 대외적으로 이를 알리는 것을 두고 시중에서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그간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터지더라도 외부에 직접 나서서 알린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이례적인 사태의 배경을 차기 신한금융지주 후계구도의 충돌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장기 집권체제를 유지해 온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의 후계를 둘러싸고 경영진 내에서 불거진 갈등이 이번 사태를 촉발시켰다는 분석이다.
신상훈 사장과 라 회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 당시부터 함께해 온 사이다. 2001년 신한금융지주가 출범할 당시 라 회장이 회장 겸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1인자 지위를 확고히 한 후 신 사장을 지주사 상무로 발령 내면서 최측근 인사임을 알렸다. 이후 2003년 유력한 행장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신 사장이 행장에 발탁되면서 ‘포스트 라응찬’의 대표 인사로 꼽혔다.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2인자로 평가 받았던 최영휘 전 지주 사장이 라 회장과의 갈등으로 축출된 이후 후임이었던 이인호 사장 대신 신 사장이 지주사 사장으로 낙점되면서 이런 평은 대세로 굳어졌다. 금융권에선 당시 신 사장의 지주 사장 선임을 놓고 “신 사장이 치열한 후계자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근래 금융권에서는 계열사 임원 인사 문제와 라 회장 차명계좌 유포설을 두고 신 사장과 라 회장 사이가 틀어졌다는 얘기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최근 신한금융 내부에서 9년째 회장직을 맡아온 라 회장의 후계 논의가 본격화되자 퇴임론과 연임론이 엇갈리면서 내부 파벌 싸움이 시작됐다는 것. 이 과정에서 신 사장은 라 회장의 퇴임을 주장하는 편에 섰다가 라 회장의 분노를 샀다는 관측이다. 이번 부실대출 문제로 검찰에 고소를 당하기 직전의 일이다.
▲ 라응찬 회장(왼쪽)과 신상훈 사장. |
어쨌든 이런 논란을 뒤로하고 신한금융그룹 이사회는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신 사장 해임을 논의할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은행사가 직접 사장을 고소하고 해임 이사회를 개최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전 최영휘 전 사장이 해임됐을 때와는 많이 다른 양상이다. 국내 금융지주사를 통틀어서도 초유의 사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며 “국외에 머물고 있는 이사들의 소집 과정에 시간이 걸릴뿐더러 절차의 투명성과 의사결정의 합당성이 논의돼야 하는 만큼 빠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자신과 관련한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신 사장이 어떤 반격카드를 내 보일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는 일단 곧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소명을 하고, 검찰 조사에도 성실히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금융인으로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가 순순히 ‘칼’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그가 만일 금융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라 회장을 직접 겨냥한다면 그 폭발력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당분간 금융권 전체가 신 사장의 입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