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부터 배달대행업체들의 배달료가 인상됐다. 지난해부터 수시로 인상된 이들의 배달료는 뚜렷한 기준도 상한선도 없다. 사진=최준필 기자
배달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배달대행 업체들은 올해 1월 1일부터 배달료를 단계적으로 인상했다. 배달대행 업체별·지역별로 적게는 200원, 많게는 1000원까지 인상된다. 지난해 배달료가 3000원대였던 점을 고려하면 기존 배달료에서 최대 30%까지 인상되는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3차 유행 상황에서 배달료 인상은 요식업 점주들의 어려움이 가중시키고 있다. 더욱이 배달료 인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부터 배달 수요가 많아지면서 배달대행사들이 일부 지역의 기본 배달료를 인상해 왔다. 게다가 ‘장마 할증’ ‘비 할증’ ‘눈 할증’ 같은 날씨에 따른 할증과 자정 이후 배달 건에 대한 ‘야간 할증’ 등 다양한 명목의 할증이 붙으면서 배달료가 뛰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서 닭발집을 운영하는 이영민 씨(28)는 매출은 올라갔으나 지난해부터 이어진 배달료 인상과 온갖 할증으로 수익률이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이 씨는 “쿠팡이츠의 배달료는 5000원으로 고객이 3000원, 업주가 2000원을 부담한다. A 배달대행사를 이용할 경우, 배달료는 1.5km 거리 기준 3500원이며 고객과 내가 각각 2000원, 1500원씩 부담한다”며 “자정이 넘으면 500원 추가, 눈이 오면 500원 추가, 이런 할증이 붙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배달료 비중이 점점 커지면서 이전과 비교해 수익이 16%가량 감소했다”고 했다.
해산물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40)는 “현재 B 배달대행사와 계약을 맺고 있는데 작년에 배달료가 4500원이었다가 어느 날 아무런 통보 없이 5300원이 됐다. 이후 점주들이 크게 항의했는지 배달료를 갑자기 4800원으로 내렸다”며 “3만 2000원짜리 해물찜을 배달했는데 배달료에 각종 할증까지 붙어 8000원에 가까운 배달료도 내 봤다. 당시 손님이 2000원, 내가 6000원을 부담했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우리 가게는 배달을 시작한 뒤 이전의 수익과 비교해 10%가 떨어졌다. 배달 건수가 많은 업장은 배달료에 지출하는 비용이 커서 상황이 더 좋지 못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손님은 안 오고, 매장은 저녁 9시면 문을 닫아야 하고, 매장에서 팔던 주류도 못 파는데 배달료까지 오르니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강화로 소상공인들이 더욱 어려워진 가운데 배달대행사들의 배달료 인상 소식이 전해졌다. 기준 없이 치솟는 배달료를 제지하기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이 필요해 보인다. 사진=이종현 기자
배달대행사들은 배달료 인상이 라이더 공급 부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항변한다. 또 라이더들이 쿠팡이츠와 같이 배달료가 비싸고 혜택이 좋은 타 배달업체로 옮겨가자 기존 배달대행사들이 이를 붙잡기 위해 배달료를 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배달료 인상에 명확한 기준과 한계가 없다는 점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배달료 인상이 얼마나 적정한지에 대한 이해당사자와 정부, 시민단체의 논의가 더 필요한데 배달업계는 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택배 노동자의 급여 체계는 기본급 없이 택배 배송 건당 수수료를 받는다는 점에서 라이더와 비슷하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의 배송 수수료에 상한선은 존재한다. 수수료 기준은 지역별로 다르지만 도심에서는 한 건당 700~800원, 산간지역에서는 1000원으로 정해져 있다. 이 요율체계는 한국통합물류협회의 택배위원회에 가입된 15개의 택배 회원사 거의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30년 역사를 가진 국내 택배산업이 오랜 논의와 숙의 과정을 거친 결과다. 그러나 배달산업은 형태를 갖춘 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탓에 배달료 산정 기준을 아직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배달대행사의 일방적인 배달료 인상은 곧 점주들과 소비자들이 부담으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배달대행사들은 “자연스러운 시장 섭리에 따라 가격이 움직인 것이고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배달료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며 외면했다. 배달대행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배달대행사도 “가격 인상 권한은 배달대행사에 있을 뿐 우리가 간섭할 수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정흥준 교수는 “배달업계는 코로나19와 겨울이라는 성수기가 지나면 배달료도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후에도 배달료 안정을 장담하긴 힘들다”며 “배달료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법과 제도를 통해 치솟는 배달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어려워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 한 관계자는 “기존 공정거래법이나 입법을 통해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신 정치권이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사회 약자를 위한 모임 ‘을지로위원회’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배달산업의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배달대행위수탁 표준계약서’ 협약을 체결했으나 아직 현장에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아쉽다”며 “앞으로 ‘민생연석회의’ 등 기구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당사자들과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코로나19로 모두 어려운 상황에서 치솟는 배달료 때문에 자영업자와 소비자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다”며 “배달료가 뚜렷한 기준 없이 오락가락하는 것에 대해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진 기자 sj10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