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지난해 10월 24일 중국 금융당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한 뒤 탄압을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용하다. 해외 언론에선 마윈과 그의 회사 얘기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중국에선 그렇지 않다. 중국 언론에서 마윈 관련 내용을 다루는 곳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정부의 지침이 내려갔거나, 최소한 눈치를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겠지만 당국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윈을 옹호하는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 마윈은 ‘재물신’으로 불린다. 특히 20~30대 젊은이들에겐 영웅이다. 1999년 세운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IT기업이다. 알리바바가 2003년 만든 전자 결제 시스템 ‘알리페이’는 텐센트의 ‘위챗페이’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2018년 은퇴를 선언할 때 마윈의 재산은 40조 원가량이었다. 알리바바 자회사 앤트파이낸셜이 2020년 11월 3일 예정대로 상장됐다면 마윈의 재산은 더욱 불어날 뻔했다.
그동안 마윈에 대해선 칭찬 일색이었다. 알리바바 본사 항저우는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마윈이 2018년 은퇴를 선언하고 교육과 후임 양성에 힘을 쓴다고 했을 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의무)’의 표본이라는 극찬이 나왔다. 마윈의 일대기, 창업 노하우 등을 다룬 책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마윈이 남긴 말들은 명언이 됐고, 전 세계에서 마윈은 성공한 경영인의 모범적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상에서 접하는 마윈은 그야말로 ‘대역죄인’에 가깝다. 현재 중국 주요 사이트에서 마윈을 검색하면 온통 부정적인 이야기뿐이다. 하루아침에 바뀐 일이다. 그동안 쏟아졌던 일화, 미담, 명언들은 사라졌다. 대신 마윈의 고급차, 재산, 여자 문제 등이 도배됐다. 이를 두고 공공연히 ‘구름 위의 말(마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말이 돈다. 마윈의 ‘윈’이 ‘구름 雲(운)’인 것을 빗댄 것이다.
한 네티즌은 2020년 12월 18일 자신의 블로그에 “마윈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은 한 것일까. 자본가의 추악한 몰골”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마윈이 운영하는 회사의 대출로 중국 젊은이들이 병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한 30대 여성 직장인도 “마윈에게 속았다. 그는 자본가, 외국인들의 앞잡이였을 뿐이다. 정상적인 과정으로 이런 부를 축적했을 리 없다. 철저하게 비리를 파헤쳐야 한다”고 했다. 이를 놓고 다른 시각도 나오긴 한다. 한 대학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며칠 사이 마윈은 다른 사람이 됐다. 정확한 진실은 모르지만 속단해선 안 된다. 앤트그룹이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그 복잡한 상장 절차를 통과했겠느냐. 문턱을 다 넘었는데 막는 건 다른 의도가 있어 보인다. ‘마윈의 방귀마저 향기롭다’고 했던 네티즌들이 이젠 그를 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런 흑백논리, 극단주의는 나쁜 결과를 낳게 된다.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윈에 대한 잘못된 압박은 중국에 손해로 작용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해외 언론 등에선 지난해 10월 24일 마윈이 중국 금융당국을 향해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한 것 때문에 탄압을 받고 있다고 본다. 마윈은 상하이 와이탄 금융 서밋에서 “대형 국유 은행이 전당포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자 당국은 즉시 앤트파이낸셜 상장을 연기했다. 이어 알리바바를 상대로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당국이 마윈 개인 비리에 대한 부분도 들여다보고 있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현지에선 보다 근본적인 것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중국 당국이 마윈을 시진핑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게 골자다. 최근에 만난 당국 고위 인사는 “마윈이 시진핑 권위에 도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윈은 시장경제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가 사회주의 체제에 독설을 날렸다.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사람은 시진핑이다. 고로 마윈은 시진핑을 겨눈 셈이 됐다. 당연히 마윈을 찍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그동안 마윈과 중국 당국은 서로 협조 관계였다고 알려졌다. 자수성가로 시작한 마윈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평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알리페이가 통치에 악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시진핑이 원하는 것 역시 ‘마윈 제국’이 갖고 있는 막대한 개인 정보일 수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시진핑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을 제압함으로써 통치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전략과 맞닿아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몇 해 전 중국 당국은 공영방송사 유명 앵커의 비리 혐의를 포착해 사법처리했다. 연예계에선 톱스타 판빙빙이 실종설에까지 휩싸이며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얼마 전엔 부정부패 혐의로 화룽자산공사 회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언론, 연예계, 정치권에 이어 경제계 적폐청산 명분으로 마윈을 겨누고 있다는 얘기다.
마윈이 2020년 10월 24일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자 이러한 추측엔 더욱 무게가 실린다. 시진핑 체제 하에서 정부의 타깃이 됐던 일부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앞서의 판빙빙도 그랬다. 이들은 이 기간 공안, 기율부 등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마윈 측은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서” “자숙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밝히지만 실제론 모처에서 조사를 받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마윈은 시진핑의 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장쩌민 계열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은 장쩌민 전 주석의 도움으로 주석 자리에 올랐지만, 권력을 잡은 뒤 장쩌민 사단을 해체시켰다. 그 후 시진핑은 장기집권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여전히 시진핑 정적 세력들은 호시탐탐 역습을 노리고 있다. 2021년 3월 중국 최대 정치 일정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최를 앞두고 벌어진 마윈 공격은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마윈일지라도, 감히 체제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려주려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다.
중국 = 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