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주문하셔야만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젊은 종업원이 설명했다. 나는 그 매장이 식당인지 커피점인지 빵 가게인지 알 수 없었다. 빵과 커피를 시키면 좌석에 앉을 수 없고 비싼 음식을 먹어야만 코로나 대책에 부응할 수 있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엄상익 변호사
나는 자리에 앉아 대화하기 위해 타협책을 내놓았다.
“안됩니다. 손님 한 사람당 1인분씩을 시켜야 합니다.”
종업원은 규정상 그렇다고 했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참 이웃인심 고약하네.”
분노를 삭인 원로작가의 푸념이었다. 우리는 가게에서 쫓겨 나왔다. 그 일주일 전쯤에도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양수리의 남한강가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갔었다. 변호사를 하다가 은퇴하고 혼자 사는 대학 동창이었다. 그가 근처의 팥죽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시골의 노인 부부가 허름한 집에서 정성껏 만든 팥죽이 아주 좋아. 팥죽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와 줄을 섰지. 요즈음은 그 아들이 크게 건물을 짓고 팥죽 가게를 확장했어. 내가 친구들이 오면 그 팥죽 가게로 종종 안내하고 있지.”
우리가 탄 차가 잠시 후 전망 좋은 강가의 팥죽 집 앞에 주차할 때였다. 건물 앞에 빨간색으로 번들거리는, F 사에서 생산한 우람한 차가 과시하듯 서 있는 게 보였다. 친구가 그 차를 가리키면서 내게 말했다.
“화물칸이 달린 저 F 트럭은 기름을 퍼 마시는 걸로 유명해. 멋지고 튼튼해도 운영하기가 쉽지 않지. 그런데 팥죽집 아들이 돈을 무지무지하게 벌었다고 저 차를 사서 이 시골에서 신나게 몰고 다니고 있어.”
주유소의 기름값도 일원까지 비교하면서 휘발유를 넣는 친구 변호사의 눈에는 마뜩잖아 보이는 것 같았다. 팥죽 가게로 들어가 팥죽을 주문했다. 팥죽을 먹으면서 친구와 잠시 대화를 나눌 때였다. 팥죽집 아들이 다가와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 마스크를 쓰고 팥죽을 드세요.”
명령하는 듯 불손한 어조였다. 그 눈길에서 우리 두 노인을 병균덩어리쯤으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나를 안내한 친구의 눈에서 파란 분노의 불길이 일었다.
“나 몰라요? 친구들이 올 때마다 이 집으로 안내하는 단골인데.”
“알긴 알죠.”
팥죽집 아들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너 하나쯤 안와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표정을 담고 있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니오.”
친구가 항의했다.
“다른 가게는 체온측정이나 신분을 확인 안하고 적당히 넘어가도 나는 정부의 명령을 철저히 잘 따르고 있어요. 내가 뭐 잘못한 게 있어요? 아저씨가 변호사라도 전혀 상관없어요.”
그 태도를 보면서 나는 반쯤 남아있는 식은 팥죽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주인과 고객의 관계가 아니었다. 팥죽을 먹으면서 친구끼리 몇 마디 주고받은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집의 팥죽 속에는 더 이상 그 부모의 정성과 따뜻함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면서 팥죽 가게 주인 아들에게 물었다.
“미안해요.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하나만 물어 볼게요. 우리가 뭘 잘못했죠?”
“조용히 팥죽만 들고 얼른 가시지 말이 너무 많아요.”
코로나 사태의 살벌한 분위기는 세상을 얼어붙게 한다. 사람들의 영혼과 세상이 피폐해지고 있다. 노인이 된 우리들은 슬펐다. 따지면 눈총을 준다. 침묵이 지혜롭게 늙어가는 법임을 몸으로 배워간다.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