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지주는 최근 정기 인사에서 CEO(최고경영자)의 임기 만료가 돌아온 10개 계열사 가운데 7곳을 유임시켰다. 2020년 3~4분기 누적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6% 늘어나 사상 최대 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과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종규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한 만큼 ‘장기재임’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는 경영의 연속성, 안정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복안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지주 운영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부회장직을 부활시켰는데, KB금융이 이 직제를 만든 건 2010년 이후 10년여 만이다. 부회장에는 양종희 KB손해보험 사장이 임명됐다. 양종희 부회장은 1989년 국민은행에 입사해 KB금융지주 이사회 사무국장을 비롯해 재무, 기업설명회, 인적자원을 총괄하는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윤종규 회장의 첫 인수합병 작품인 KB손해보험(옛 LIG손해보험) 사장에 취임한 뒤 3연임하면서 윤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KB금융이 10년여 만에 부회장직을 부활시키면서 후계자 경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이종현 기자
금융지주에서 자산 규모 및 수익 구조 등 핵심 역할을 하는 계열사는 은행이다. 이에 따라 KB금융의 차기 수장으로는 허인 현 국민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금융권 관행인 2+1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최근 1년 임기를 추가로 받으면서 3연임에 성공했다. 그룹 내 영향력도 크다. 윤 회장과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지주 내 기타비상무이사로 계열사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위원이다. 윤 회장 3연임을 앞두고 지주 회장 선임 최종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양종희 부회장의 등장으로 허인 행장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진 임원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 측은 “양 신임 부회장은 인수합병 등으로 그룹 내 비중이 확대된 보험과 글로벌 부문 사업을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보험 및 글로벌·인사총괄임원(CHO), 브랜드홍보총괄(CPRO)을 맡는다. 최근 수년 사이 KB금융은 보험을 중심으로 한 비은행부문 강화를 중점 과제로 추진해왔다. 사실상 윤종규 회장이 은행과 증권 등 핵심 계열사를 맡고, 양 부회장이 비은행 부문을 총괄하면서 ‘실세 2인자’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금융권에선 KB금융이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양종희 부회장을 등기임원으로 등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회장 부재 시 대행을 맡을 수 있는 사내이사, 또는 허인 행장과 같은 기타비상무이사 등으로 이사회에 참여하게 될 경우, 양 부회장은 지주 내에서 차기 회장후보군에 한 발 더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은 이번 정기인사를 통해 양종희 부회장과 허인 은행장의 임기를 2021년 12월 31일로 맞췄다. 차기 회장 선임은 2023년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양 부회장과 허 행장이 이번 임기를 마치고 자리를 맞바꿔 남은 2년을 보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미 임기 관행을 깨고 3연임을 한 허 행장이 올해 말 다시 연임해 은행장을 맡는 건 부담이 크고, 양 부회장은 은행과 비은행을 모두 경험했지만 은행장 경력이 없어서다.
신한금융지주의 이번 정기인사 키워드 역시 경영 안정화와 후계구도 변화다. 2020년 말 임기만료를 맞은 계열사 CEO 14명 가운데 11명이 연임에 성공했다. 특히 진옥동 신한은행장과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 성대규 신한생명 사장 등 신한금융투자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 CEO들이 나란히 2년 임기를 보장 받았다.
그동안 신한금융은 CEO 연임을 결정할 땐 1년씩 임기를 연장해왔지만 이번엔 2년으로 늘리면서 차기 회장 후보군이 풍성하게 구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의 임기는 2023년 3월이다. 회장 선출 작업은 2022년 12월 말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신한금융의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도 은행장이다. 지주 내 은행의 위상과 경영 성과 면에서 진옥동 행장이 공식적, 실질적 2인자로 꼽혀왔다. 다만 함께 연임한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과 신한생명과 오렌지라이프의 첫 ‘통합 CEO’가 된 성대규 사장 역시 늘 차기 회장 후보로 꼽혀왔던 만큼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이들의 경영능력 검증이 시작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정기인사로 신한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후보군이 더욱 풍성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중구 신한금융 본사. 사진=연합뉴스
신한금융지주가 인사와 함께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경영관리부문을 신설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그동안 지주 전략실 내 전략기획팀과 경영관리팀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경영관리팀을 분리해 내 몸집을 키웠다. 늘어난 계열사를 관리하기 위해 조용병 회장이 직접 주도해 만든 조직으로 알려졌다.
경영관리부문은 향후 각 계열사의 목표와 달성 현황, 비용과 수익 등 재무현황, 전략과 사업구조 등 경영 전반을 관리한다. 사실상 신한금융 17개 자회사의 컨트롤타워가 설립된 셈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경영관리부문은 전략, 재무 등 팀 단위로 나눠져 있던 지주사 경영관리 기능을 통합해 효율화했다”고 설명했다.
신설 조직의 초대 수장은 신한캐피탈 사장이었던 허영택 경영관리부문장(CMO, 부사장)이 맡았다. 허 부사장은 CEO급 임원이지만 지주 내 사장(CEO) 직위가 없어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다만 지주 부사장 가운데 수석 역할을 맡아 사장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허 부사장의 역량에 따라 이번 조직개편의 성패가 결정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금융은 이번 정기인사 및 조직개편에서 일부 조직을 축소하고 부서를 통폐합했다. 7부문 2단 5총괄 체제를 8부문 2단으로 줄이고, 부서 역시 통폐합으로 5개를 줄였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임원의 책임과 권한에는 더욱 힘을 실어 업무 추진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조직 개편으로 ‘슬림화’ 작업을 한 우리금융지주는 수석부사장직을 신설해 지주 내 핵심 부문 전반을 맡겼다. 사진=우태윤 기자
지주와 은행에서 임원 자리 7개가 사라졌지만, 대신 수석부사장이라는 자리가 새롭게 생겼다. 이 자리에는 이원덕 부사장이 초대 수석부사장에 발탁됐다. 그동안 이 부사장은 우리금융지주의 6명의 부사장 가운데 한 명이었지만 이번 인사로 유일한 수석부사장이 됐다. 향후 전략·재무·사업성장·디지털/IT·브랜드부문 업무를 총괄하면서, 지주 조직 내 경영지원과 리스크관리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한 핵심 부문 전반을 맡는다.
이원덕 수석부사장은 한일은행에 입행한 이후 재무, 전략, 자금부 등 은행 내 핵심 부서를 두루 거쳤다. 2017년 우리금융지주 출범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서부터 지주사 출범 이후 통합·전략 등 각종 실무를 총괄하면서 지주 내 전략통으로 꼽힌다. 현재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지주 내 유일한 등기임원이다. 박경훈 우리금융 재무부문 부사장, 김정기 우리카드 대표와 함께 손태승 회장의 최측근 3인방으로 불리며 잠재적 차기 회장 후보로 통해왔다.
이에 따라 이원덕 수석부사장은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권광석 우리은행장과 함께 지주 2인자로서의 입지가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 행장은 지난 2020년 3월 1년 임기와 경영성과에 따라 추가 임기 2년이 주어지는 조건을 받았다. 최근 권 행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