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과 케인에게 ‘몰빵’(?)된 공격력은 토트넘에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고 듀오 ‘손-케’ 토트넘엔 양날의 검?
이전부터 좋은 호흡을 보였던 둘은 이번 시즌 들어 ‘특급 파트너’로 거듭났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합작한 골은 이번 시즌 13골이다. 시즌 반환점조차 돌지 않았지만 벌써 프리미어리그 최다 기록(1994-1995시즌 앨런 시어러-크리스 서튼 기록과 동률)에 도달했다. 특히 이번 시즌 들어 케인이 후방에서 패스를 건네고 손흥민이 마무리하는 장면으로 큰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들의 날카로운 공격력은 때론 토트넘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팀의 공격력이 이들에게만 집중돼 있기에 상대 입장에서 이들만 견제하면 토트넘 공격의 대부분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이다. 케인 패스-손흥민 골 공식이 읽히며 이전까지 승승장구하던 토트넘은 12월 5경기에서 단 1승만 거두며 부진했다. 그 사이 순위는 리그 선두에서 4위권으로 처졌다. 1월 들어서야 리즈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무승행진을 끊어내며 4위로 반등했다.
4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는 동안 토트넘의 득점은 단 3골이었다. 경기당 평균 1골에 못 미치는 득점력이었다. 토트넘을 상대하는 팀들은 이들의 공격 루트를 이미 잘 파악하고 있다. 케인이 공을 잡으면 패스를 막으려 강한 압박을 가했다. 결정력을 장착한 손흥민에 대한 견제도 심했다. 이들은 4연속 무승 기간 동안 극심한 견제를 뚫고 각각 1골씩 넣었지만 승리를 따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조합으로 꼽히는 손흥민과 케인이지만 이들에게 도우미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번 시즌 토트넘이 리그에서 넣은 골은 29골이다. 이 중 손흥민과 케인의 지분(22골)은 76%에 육박한다. 둘을 제외하면 2골 이상 기록한 선수는 미드필더 탕귀 은돔벨레(14경기 2골) 단 1명이다. 선수단 내 골맛을 본 선수가 8명에 불과하다.
공격 에이스 둘을 제외한 공격진의 분발이 절실하다. 과거 3옵션으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루카스 모우라, 친정팀에 복귀한 가레스 베일 모두 단 1골에 그치고 있다. 손흥민, 케인과 함께 가장 오랜 시간을 소화한 제3의 공격수 스티븐 베르바인은 리그 0골이다. 리그 18골을 기록한 경력이 있는 델레 알리는 이번 시즌 선발 출전 횟수가 1회에 불과하며 골도 없다.
2010년대 중반 바르셀로나에서 뭉친 남미 스타 3인, 수아레즈-네이마르-메시(왼쪽부터)는 상대팀에 공포감을 주는 조합이었다. 사진=연합뉴스
#고른 골 분포 보이는 선두권 경쟁자들
유럽 축구에서 좋은 성적을 내는 팀들은 토트넘과 같이 공격이 2명에 몰리기보다 3명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 달성 이후 이번 시즌도 현재 선두에 올라 있는 리버풀은 일명 ‘마-누-라 라인’으로 불리는 사디오 마네(6골 2도움), 로베르토 피르미누(5골 3도움), 모하메드 살라(13골 3도움)가 있다. 이들은 수년간 리버풀의 호성적을 이끌어왔다. 한 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더라도 다른 파트너들이 공백을 메운다. 이번 시즌에는 이적생 디오구 조타(5골)도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공격적인 풀백 앤드류 로버트슨도 1골 5도움으로 힘을 보탰다.
선두권 경쟁을 펼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스터 시티 역시 득점 분포가 고르다. 맨유는 브루노 페르난데스(11골 7도움), 마커스 래시포드(7골 4도움)가 공격을 이끄는 가운데 에딘손 카바니(3골 2도움), 앙토니 마샬(2골 3도움) 등이 포인트를 더했다. 맨유에서 1골 이상을 넣은 선수는 12명으로 토트넘보다 4명 많다.
레스터는 제이미 바디(11골 5도움), 하비 반스(5골 1도움), 제임스 메디슨(4골 2도움), 유리 틸레망스(4골) 등이 공격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들은 2016년 우승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노리고 있다.
손흥민과 케인에겐 ‘제3의 에이스’가 필요하다. 사진=토트넘 페이스북
공격 포인트를 쌓아 올리는 공격수 3명의 조합은 과거부터 ‘우승 보증수표’로 작용해왔다. 과거 박지성이 활약하던 시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지도 아래 숱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 에드윈 반 더 사르 등의 수비력도 빛났지만 공격진의 무자비한 득점력 역시 큰 기여를 했다.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석권한 2007-2008시즌 당시 맨유에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를로스 테베즈, 웨인 루니 3인이 공격에서 작업을 펼쳤다. 이들은 리그에서만 57골(호날두 31골, 테베즈 14골, 루니 12골)을 합작하며 막강 공격력을 과시했다. 호날두, 테베즈가 팀을 떠난 2009년 이후로도 디미티르 베르바토프,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치차리토) 등이 공격을 이끌며 팀 전성기를 이어갔다.
지난 10여 년간 유럽 축구 주도권을 쥐어 온 스페인의 양강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도 공격 트리오의 활약이 있었다. 2014-2015시즌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포함 3개 대회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트레블’을 달성한 바르셀로나에는 ‘MSN’으로 불리던 리오넬 메시, 루이스 수아레즈, 네이마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남미 3국 최고의 스타들이 뭉친 바르셀로나의 트리오는 당시 리그에서 81골을 몰아넣었다. 이들 셋이 챔피언스리그에서만 합작한 골이 27골이다. 2개 대회에서 넣은 골이 100골을 넘어선 것이다.
2010년대에만 챔피언스리그 4회 우승을 달성한 레알 마드리드에는 ‘BBC’로 불리는 공격 트리오가 있었다. 가레스 베일, 카림 벤제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다. 이들이 가장 고른 기록을 낸 시즌은 2015-2016시즌이다. 리그에서 호날두 35골, 벤제마 24골, 베일 19골이라는 압도적 공격력을 뽐냈다.
토트넘의 21세기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시즌 중 하나로 2018-2019시즌이 꼽힌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올라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당시 토트넘은 손흥민, 케인과 더불어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함께 조합을 이뤄 ‘DESK라인’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다. 공격진에서 루카스 모우라도 적재적소에 골을 터뜨리며 토트넘의 호성적을 이끌었다. 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날카로운 감각을 자랑하는 손흥민과 케인에게는 당시와 같은 도우미들이 필요해 보인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