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대 대한체육회장 자리를 놓고 네 명의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재선을 노리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임준선 기자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대한체육회 대의원, 62개 산하 단체, 17개 시·도 체육회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선거인단 2170명이 온라인 투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선거일은 1월 18일이다. 선거운동은 선거 전날까지 진행된다. 이번 선거 최대 이슈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재선 여부다.
이기흥 회장은 1985년 신한민주당 이민우 총재 비서관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했다. 1989년엔 우성산업개발을 창업했다. 2001년 1월 대한근대5종연맹 고문으로 체육계에 첫발을 들였다. 그 뒤로 이 회장은 대한카누연맹 회장,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대한수영연맹회장, 2012 런던올림픽 한국선수단장,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 국제수영연맹 집행위원 등 체육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로 성장했다.
2016년 10월 이 회장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승리했다. 임기를 시작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은 임기 내 여러 스캔들을 마주하며 논란 중심에 섰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조재범 전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코치에게 폭행을 당한 뒤 선수촌을 이탈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다.
이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중 전명규 전 빙상연맹 부회장과 심석희 선수와 동석한 자리에서 “조재범 전 코치를 돌아오게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폭행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컴백을 언급했다는 것이다. 당시 대한체육회 측은 “이 회장은 전명규 부회장이나 심석희 선수를 만난 적 없다”며 이를 전면 부인했다. 비슷한 시기 이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에게 막말을 했다는 갑질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체육 대통령’이라 불리는 대한체육회장 선거가 1월 18일 온라인투표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이동섭 기자
2019년 1월 심석희 선수가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체육계를 강타한 메가톤급 스캔들이었다. 2020년엔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최숙현 선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대한체육회에 자신이 상습적인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진정서를 접수했지만, 이로 인한 조치가 미흡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선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뒤 대한체육회와 이 회장은 직무유기 논란에 휩싸였다.
이처럼 이 회장 임기 중 여러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 2019년 IOC 위원으로 선출된 이력은 임기 중 이 회장 공로로 인정받고 있는 부분이다. 이 회장은 2016년 대한체육회 선거에서 과반수에 한참 못 미치는 33% 득표로 당선된 바 있다. 당시 이 회장은 박근혜 정부 인사로 분류됐던 장호성 전 단국대 총장, 전병관 경희대 교수, 탁구 선수 출신 이에리사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꺾고 ‘체육 대통령’ 자리를 꿰찼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인사들이 출사표를 던졌던 것처럼 2021년 선거에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이 반이기흥 세력 선두 주자로 치고 나올 것이란 전망이 부상했다. 반이기흥 세력들이 단일 후보를 내세울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2020년 11월 “차기 대한체육회장 선거는 이기흥과 반이기흥 세력의 양자 대결 구도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이종걸 민화협 상임의장. 사진=박은숙 기자
그러나 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선거는 다자구도가 됐다. 그 중심엔 이종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있었다. 이 의장은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대한농구협회장을 맡아 체육계에 발을 담갔던 경력이 있다. 출마 자격은 충분했지만, 출마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 의장은 12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 동안 출마 의사에 대한 번복에 재번복을 거듭했다. 12월 27일 이 의장은 대한체육회장 출마 선언을 했다. 이날 밤 9시부터 12시까지 이 의장은 또 다른 후보자인 강신욱 단국대 교수에게 지지 의사를 표하며 예비후보에서 물러났다. 사실상 불출마 의사를 밝힌 셈이었다.
이 의장 출마 포기로 ‘반이기흥 세력’ 단일화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 의장의 ‘반전 행보’가 체육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 의장은 12월 29일 중앙선관위 ‘대한체육회장 선거 후보자 공고문’에 이름을 올렸다. 불출마 의사를 번복하고 돌연 입후보한 이 의장 행보에 체육계 인사들은 물음표를 띄웠다.
또 다른 체육계 관계자는 “이 의장 측이 선거운동과 후보 단일화 논의를 함께하는 투트랙 방식을 노리며 일단 후보자 등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체육계에선 선거 막판 이 의장과 강 교수가 단일화에 나설지 관심이 모아진다.
이 의장 출마에 앞서 또 다른 여권 인사가 대한체육회에 출사표를 던졌다가 불출마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바로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에서 4선 의원을 지낸 장영달 우석대 명예총장이다. 장 총장은 정치권에서 친문 계열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장 총장은 2020년 광복회 복지증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광복회가 국회 내 야외 카페 ‘헤리티지 1919’(현재 헤리티지 815로 개명)를 개업하는 데 힘을 보탰다.
반이기흥 연대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었던 장 총장은 2020년 12월 24일 극적인 통합을 이뤄냈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을 지낸 문대성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집행위원과 단일화에 성공한 것이다. 장 총장이 반이기흥 연대 선봉으로 거듭나는 상황에 대해선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이종걸 민화협 의장이 출마 선언을 했던 12월 27일 장 총장은 돌연 불출마 선언을 했다. 장 총장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공정한 체육회장 선거 관리가 이뤄질 거라는 기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유준상 국민의힘 전임고문. 사진=최준필 기자
단일화까지 마무리한 장 총장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치권과 체육계 관계자들은 2017년 대선 과정서 장 총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2019년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장 총장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장 총장의 공직선거 피선거권은 5년간 박탈됐다.
하계 종목 체육계 관계자는 “현 정권 인사로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장 총장이 불출마선언을 하면서 이종걸 민화협 의장이 ‘현 정권 인사’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이야기가 체육계 전반에 걸쳐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시기적으로 장 총장 불출마 선언과 이 의장 출마 선언은 묘하게 겹친 격이 됐다.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 후보 등록을 마친 이 의장은 대한체육회 권한 분산,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의장은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기호 1번을 배정받았다.
기호 2번도 정치인 출신이다. 4선 의원 출신으로 국민의힘 전임고문으로 활동 중인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이다. 유 회장은 체육청 신설 추진, 엘리트·학교·생활·노인 체육의 유기적 결합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기흥 회장은 기호 3번을 받았다.
강신욱 단국대 교수. 사진=연합뉴스
기호 4번은 유일한 체육인 출신 후보자인 강신욱 단국대 교수다. 강 교수는 서울대 하키팀을 거쳐 전농여중과 용산고에서 하키부 감독을 지낸 경력이 있다. 체육시민연대 공동대표 이력도 있다. 강 교수는 이종걸 민화협 의장과의 단일화를 목전에 앞두고 이 의장의 돌연 출마로 난감한 상황이 됐다. 강 교수는 국민을 위한 대한체육회, 체육계 폭력 및 성폭력 근절, 선수와 지도자를 위한 체육회 등 공약을 내세웠다.
이처럼 이번 선거는 재선을 노리는 현 회장과 정치인 두 명, 체육인 한 명 다자구도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올해부터 2025년까지는 최대 세 차례의 올림픽이 치러질 수 있다”면서 “먼저 신임 대한체육회장이 임기를 시작하면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열린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 뒤론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2024년 LA올림픽이 예정돼 있다”면서 “임기 중 세 차례 올림픽이 열리는 상황은 이례적임과 동시에 대한체육회장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 입장에선 굉장한 기회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