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 표지(위), 작가 조재형
28쪽 ‘고독을 방치한 대가’
‘시골 법무사의 심심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조재형 시인의 첫 산문집 ‘집은 텅 비었고 주인은 말이 없다’가 11일 출간될 예정이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저자가 검찰수사관으로서 16년과 법무사로 18년째 사건 현장을 누비며 법을 통해 바라보던 시각에 문학적 감성과 사유를 곁들여 풀어낸 사건 중심의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글을 이끄는 소재들은 하나같이 저자가 직접 부딪치며 몸을 상하며 얻은 것들이다.
얼핏 법의 언어는 문학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지만 현실을 담아내고 진실을 캐내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이 책 속에 담긴 66편의 이야기는 난생처음 심심한 일상에 심심한 감사와 심심한 사랑을 일깨워준다.
작자는 낮에 법무사로 일하고 밤에는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로 생활하고 있다. 이 책은 거창한 지식이나 추상적 진실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죄의 앙갚음보다는 사건 당사자들과 함께 조율하며 풀어나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실행해왔던 과정을 담담하게 기록했다.
본문 속에 등장하는 의뢰인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장삼이사들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낯익은 주인공들의 번민에 공감하며 감정을 이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텅 비어 있는 집과 말이 없는 주인을 통해 그리움 한 채를 우리의 가슴 깊이 옮겨다 주기도 하고 아낌없이 버린 자만이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시종일관 시적인 메타포와 절제된 문장으로 전개되는 이 책은 첨단 자본주의와의 결별을 암시하듯 느린 속도와 낮은 자세를 유지한다.
회고록 수준의 심심한 수필집이려니 하며 펼쳐 든 이 책이 특별한 무엇을 안겨주는 이유이다. 비주류의 삶을 지탱해온 자신을 칭찬하고 싶다면, 혹은 디지털의 속도로 흘러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꿋꿋하게 천천히 걷기를 바란다면 이 책은 자신에게 바치는 값진 헌사가 될 것이다.
저자인 조재형은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검찰 수사관으로 일하다 문학에 대한 갈증으로 중도 퇴직했다. 2011년 ‘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문을 수배하다’와 ‘누군가 나를 두리번거린다’ 등을 냈으며 2018년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신성용 호남본부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