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죽(烙竹)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 또는 그렇게 만든 대나무 공예품을 의미한다. 사진=국립무형유산원 제공
낙죽(烙竹)은 인두로 대나무 겉면을 지져서 글씨를 쓰거나 그림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 또는 그렇게 만든 대나무 공예품을 의미한다.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낙죽장(烙竹匠)은 이러한 기술을 보유한 장인, 또는 그 기능 자체를 일컫는 말이다.
낙죽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나무나 가죽 따위에 뜨거운 숯으로 문양 등을 표시하던 게 그 유래인 셈이다. 그러나 인두를 이용하는 방식의 우리나라 낙죽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연원은 확실하지 않다. 낙죽과 관련된 사료가 거의 없고, 역사성을 입증할 만한 오래된 유물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낙죽 관련 기록은 조선 후기 문헌에서 단편적으로 나타난다. 규장각의 일기인 ‘내각일력’ 정조 20년(1796) 2월 4일자에는 임금이 중화절에 신하에게 낙죽척을 하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 낙죽척이란 ‘낙죽을 한 자’를 의미하는데, 낙죽척이 임금의 하사품으로 쓰일 정도라면 당시 이미 상당한 수준의 낙죽 기술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김기찬 기능보유자가 낙을 놓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제공
또 다른 단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규경이 편찬한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 ‘낙화변증설’에 낙죽의 달인 박창규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순조 말 박창규라는 사람은 조각에 뛰어나고 낙죽을 더욱 잘하여 한양의 재상들이 불러들여 기교한 물건을 많이 만들었으며, 중국의 장인들도 그의 솜씨를 고금제일이라고 극찬했다는 내용이다. 박창규가 낙죽을 우리나라에 처음 들여온 인물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그가 낙죽의 선구적 인물임은 분명해 보인다.
낙죽은 주로 담양 등 대나무 산지를 중심으로 대나무 공예품을 생산하는 지역에서 활성화된 것으로 여겨진다. 낙죽이 합죽선과 참빗을 비롯해 대나무침통 등에 무늬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장식하는 기법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이후 낙죽은 차츰 넓은 지역으로, 그리고 다양한 분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실제로 낙죽은 참빗, 비녀, 담뱃대, 부채와 같은 생활용품을 비롯해 붓과 필통 등의 문구류, 책장과 고비(편지 따위를 꽂아 두는 물건) 등의 가구류, 장도, 화살통 등의 무기류, 불자(拂子) 등의 불교용품에 두루 쓰였다.
2대 낙죽장 고 국양문 선생이 낙 놓는 모습. 사진=문화재청 제공
낙죽에는 화롯불에 달군 인두를 사용하는데, 이런 작업을 두고 ‘낙 지진다’ ‘낙 놓는다’라고 일컫기도 한다. 인두의 온도, 손의 강도와 속도에 따라 글씨나 문양, 그림의 짙고 옅음과 질감이 달라지기에 낙을 놓는 일은 매우 민감한 작업이다. 낙죽은 작품 종류에 따라 대나무를 선별해 이를 삶거나 불에 쬐어 진을 빼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대나무의 진을 빼지 않으면 낙을 놓을 때 인두가 잘 나가지 않아 깔끔한 문양을 내기 어렵다. 그다음에는 대나무 재료의 색과 빛이 좋아지도록 6개월가량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린다. 그 후 대나무를 곧게 펴는 정리 작업을 하고 작품 구상을 거친 뒤에야 본격적으로 낙을 놓게 된다. 이때 인두가 얼마나 달구어졌는가에 따라 선의 강약이 다르게 나타난다. 높은 열에서는 선을 그리고, 보다 낮은 열에서는 질감을 넣어야 하기에 높은 숙련도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낙죽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기찬 기능보유자. 사진=문화재청 제공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 이후 신소재의 공산품이 대량 생산, 보급되고 죽공예품 생산이 급속히 침체하면서 낙죽 문화 또한 위기에 놓이게 됐다. 낙죽이 생업과 연결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동연 초대 기능보유자, 국양문 2대 보유자를 거쳐 현재 김기찬을 비롯해 극소수의 장인들이 낙죽장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김기찬 기능보유자는 일반적인 상품화 대신, 낙죽을 세계화할 수 있도록 우수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김기찬은 “낙죽은 불로 태워서 가치를 만드는 태움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또한 시인 정호승은 ‘낙죽’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누군가를, 아니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일, 그 상처와 고통까지 오롯이 견디는 것을 ‘낙죽’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난히도 견뎌내야 하는 일이 많았던 지난 한 해, 이제 할 수만 있다면 그 모든 것에 낙을 놓는 것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태움으로써 새로 탄생하는 낙죽처럼, 그리고 타는 듯한 아픔 너머로 희망을 노래하는 시처럼.
자료협조=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