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은 폭설이 내려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1월 6일부터 쿠친이 배송할 때 길 안내, 배송 확인 등에 쓰는 장치인 PDA의 1시간 강제 잠금 기능을 해제했다. 쿠팡은 쿠친의 새벽 배송 중 사망, 실적압박 등 쉴 시간 보장하지 않는다는 논란이 일자 2020년 7월 1시간 강제 휴식 제도를 도입했다. 쿠친이 배송에 사용하는 PDA를 1시간 동안 강제로 쓰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당시 근로기준법 위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쿠팡의 궁여지책이었다.
쿠팡이 폭설이 내린 뒤 물량이 폭주하자 쿠팡친구(쿠친·구 쿠팡맨)의 휴식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했던 ‘PDA 1시간 강제 락(Lock)’을 은근슬쩍 해제해 논란이다. 쿠친들이 빙판길에 차량이 올라가지 못하자 손수레에 물건을 담아 배송하고 있다. 사진=박현광 기자
쿠팡은 폭설로 물량이 증가하자 스리슬쩍 1시간 강제 잠금 기능을 풀고 쿠친들에게 “폭설로 인해 배송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으로 (PDA) 잠금 해제 설정은 1월 9일 토요일 배송까지 해제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됐다”고 일방적으로 알렸다. 쿠친들을 관리하는 한 캠프리더(CL)는 소셜미디어 단체 대화방에서 “자유롭게 배송하며 휴식 시간을 쓰기 바란다. 강력한 한파에 건강과 안전사고 조심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캠프리더는 “안전운전 하시되, 200가구는 처야 한다. 본 물량 빨리 치고 프레시백도 수거하라. 휴게 시간 애플리케이션 잠김은 풀었지만 그 시간에 일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풀어만 드렸다. 여러분 쉬면서 하세요”라고 전했다.
쿠친이 알아서 휴식 시간을 쓰라는 말인데, 현장에서 배송을 하는 쿠친들의 상황은 그렇지 못했다. 인천 지역에서 배송을 하는 한 쿠친은 “배송이 평소보다 20~30%가량 늘었다. 150가구를 하던 걸 180가구를 하고 있다”며 “락을 푼다는 건 쉬지 말라는 말이다. 물량이 늘었고 미배송이 많은데 어떻게 쉬느냐, 눈치껏 일하라는 말과 같다”고 전했다.
쿠팡친구를 관리하는 캠프리더가 보낸 공지. 한 캠프리더는 “안전운전 하시되, 200가구는 처야 한다. 본 물량 빨리 치고 프레시백도 수거하라. 휴게 시간 애플리케이션 잠김은 풀었지만 그 시간에 일하라는 건 아니고 그냥 풀어만 드렸다. 여러분 쉬면서 하세요”라고 전했다.
일산 지역에서 일하는 한 쿠친은 “틈틈이 쪼개서 쉬라는 거다. 그렇게 되면 몸을 녹일 수도 없고, 언 손으로 밥을 먹기도 애매하다. 전처럼 밥 못 먹고 일했다”며 “물량도 늘었거니와 길이 미끄러워 배송에 시간이 더 걸린다. 알아서 쉬라니 놀리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쿠팡은 폭설 당시인 1월 6일 ‘쿠팡이츠’ 배송 기사들의 운행은 중단했다. 배송 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쿠팡이츠 운영을 일시 중단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쿠팡이 직고용한 자체 배송 인력인 쿠팡친구들의 휴게 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셈이다.
쿠팡피해자지원대책위원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배송이라는 행위는 사업장 내에서 일어나는 업무가 아니다. 배송 물량을 적절하게 조정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휴게 시간을 준다고 해서 그것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며 “휴게 시간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물량을 배정해버리면 휴게 시간을 줘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은 폭설 당시인 1월 6일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쿠팡이츠’ 배송 기사들의 운행은 중단했다. 배송 기사들의 안전을 위해 쿠팡이츠 운영을 일시 중단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쿠팡은 직고용한 자체 배송 인력인 쿠팡친구들의 휴게 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셈이다. 사진=박현광 기자
쿠팡은 1월 12일 일요신문에 “쿠팡은 주 5일, 52시간 근무를 준수하고 있다. 휴게 시간도 제공하고 있다. 악천후 시에도 쿠팡친구들이 안전한 상황에서 쉴 수 있도록 휴게 시간을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쿠팡은 지속적해서 자체 배송인력의 휴게 시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2020년 3월엔 안산 지역에서 새벽 배송을 하던 쿠친이 한 빌라 계단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당시 고인의 아내는 “남편이 우리 집에 배송을 와도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도 못 갔었다”고 설명했다.
김한별 공공운수노조 쿠팡지부 조직차장은 “감당하기 어려운 물량을 받으면 거부할 수가 없다. 자신이 물량을 다 소화하지 못하면 팀원들이 추가로 자신의 물량까지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휴게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밥 먹을 시간도,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선 여전하다. 휴게 시간 강제가 아닌 물량 조정이 시급하다”고 꼬집었다.
박현광 기자 mua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