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간의 심사숙고 끝에 배우 차인표는 영화 ‘차인표’의 출연제의를 받아들였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2015년 첫 출연 제의 후 4년이 흐른 시점에서야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는 게 차인표의 이야기다. 문득 다시 자신을 돌아보니 영화 속 ‘차인표’가 자신의 모습과 똑같이 느껴졌다는 것. 그 기간 동안 자신이 정말로 정체돼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첫 제의 거절하고 4년 뒤에 또 한 번 제의를 받았고, 같은 이유로 다시 거절을 했어요(웃음). 영화 속에서 저렇게 정체된 모습으로 나오는 차인표가 참 못마땅했거든요.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저를 다시 돌아봤더니 정말 그 정도로 정체가 돼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웃음). 이 영화를 통해 변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하게 됐어요.”
지난 1월 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 ‘차인표’에서 차인표는, 차인표를 연기한다. 대중들이 알고 있고 익숙한 차인표의 표면적인 이미지를 토대로 쌓아 올린 픽션 같으면서도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묘한 작품이다. 본명을 그대로 영화에 쓰는 점이나 정체기에 빠져 있으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며 고군분투하는 차인표의 희화화된 모습에 배우로서도 많은 부담을 느꼈을 터다.
그렇다면 왜 하필 ‘차인표’였을까. 질문에 차인표는 “저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굳이 저를 선택했을까. 제가 넘겨짚기엔 아마 제가 제일 이미지가 고착화된 배우라 그런 거 아닐까 싶어요(웃음). 그렇게 굳어진 이미지에는 희화화할 수 있는 많은 요소들이 포함돼 있으니까요. ‘분노의 양치질’ 뭐 이런 거(웃음).”
김동규 감독이 만들어 낸 영화 ‘차인표’ 속 설정을 그대로 수긍했지만 정치 출마와 관련한 신만큼은 수정을 요구했다는 게 차인표의 이야기다. 사진=영화 ‘차인표’ 스틸컷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한동안 유행했던 ‘차인표 분노 시리즈’ 가운데 그가 언급한 ‘분노의 양치질’ 신은 2000년에 방영된 드라마 ‘불꽃’에 처음 등장했다. 21년이 지난 현재까지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회자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 신은 손가락 흔들기와 함께 차인표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됐다. 차인표 하면 생각나는 이런 장면들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영화 ‘차인표’의 특징 중 하나다.
‘차인표’의 각본, 연출을 모두 맡은 김동규 감독 역시 이처럼 대중들에게 익숙한 차인표의 이미지를 토대로 스토리를 쌓아 올렸다고 했다. 그랬기에 차인표는 영화 속 차인표의 행동에 ‘딴죽’을 걸지 않았다. “그건 김동규 감독이 만든 세계 속의 차인표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영화 ‘차인표’는 김동규라는 신인 감독이 저한테 제 초상권을 써도 좋겠다는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저를 모르는 상태에서 본인이 상상한 차인표라는 작은 세계를 만든 거잖아요?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아주 모호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자기가 해석한 차인표를 주인공으로 딱 앉혀서 대본을 써 온 거죠. 그런데 제가 그걸 하면서 ‘이건 달라, 이건 내가 아냐. 난 안 그래’ 그러고 있으면 이건 영화가 될 수 없는 거죠. 그냥 다큐멘터리지(웃음). 그렇기 때문에 저도 사실 만족하지 못한 부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건 김동규가 창조한 세상 속, 김동규가 만들어낸 차인표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한 겁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이긴 하지만 차인표는 영화 ‘차인표’로 10~20대 젊은 세대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 사진=영화 ‘차인표’ 스틸컷
“이미지 변신을 위해 ‘차인표’를 선택했고, 또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가 가지고 있는 그 자존심과 마지막 이미지를 붙잡으려고 하는 그 마음. 그걸 비워내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웃음). 진짜 이것만큼은 바꿔줬으면 좋겠다, 난 안 그러는데 싶었던 건 ‘구출되는 신에 팬티만이라도 입게 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거였어요(웃음). 그리고 정말로 제가 수정을 원해서 수정된 부분이 있다면 정치인이 되고 싶어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으려는 장면. 그건 정말 저와 백팔십도 다르고 팩트도 아니니까 그 부분만 수정해 달라고 해서 수정됐죠.”
장르적 특성 탓인지 작품을 관람한 시청자들 사이에선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1점과 10점,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평가 속에서 차인표는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렇듯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 출연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대중들의 반응에 일희일비만 할 수 없다는 것. 특히 ‘차인표 세대’가 아닌 10~20대 젊은 세대들에게도 차인표가 통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그로서는 괜찮은 마무리가 된 셈이다.
“어떤 분이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아무 생각 없이 웃으려고 봤는데, 보고 났더니 내가 나를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관람 후기 글을 남겨주셨더라고요. 정말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그런 소감이었습니다. 제가 50대인데, 제 나이 또래 연기자들이 젊은 관람객이나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잘 없거든요. 이 영화를 통해서 젊은 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고, 젊은 팬들도 생겨서 너무 좋아요(웃음). 또 이제는 저를 잊으셨다고 생각했던 예전 팬들도 다시 저를 떠올려 주시고, 다시 좋아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죠.”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