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분위기는 검찰이 살인죄 혐의를 추가하는 공소장을 변경했다는 내용이 전해지면서 더 달아올랐다. 양부모 측은 법정에서 “살인의 고의는 없었다”고 항변했지만, 검찰은 ‘부작위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주목했다. 실제 검찰은 첫 공판을 앞두고 법의학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 공소장을 아동학대치사에서 살인으로 변경했는데, 법조계는 “적절하다”면서도 “여론을 의식한 뒤늦은 조치”라는 지적을 내놓는다. 자연스레 수사당국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경찰이 소극적으로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다.
“사형! 사형!” 1월 13일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법은 정인이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들과 취재진 100여 명이 몰려들었다. ‘살인죄로 처벌하라’부터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다’까지 다양한 팻말이 등장했다. 사진=유튜브 채널 일요신문U 방송 화면 캡처
#결국 공소장 변경한 검찰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양모 장 씨에게 아동학대치사혐의를 적용했다. 살인으로 보기에는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경찰이 세 차례 학대 신고를 외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살인죄로 기소하지 않은 것이 도마 위에 올랐다.
검찰도 여론을 고려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곧바로 첫 공판에 앞서 공소장 변경으로 살인죄를 추가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신혁재) 심리로 열린 양모 장 씨와 양부 안 아무개 씨의 첫 공판기일에서 검찰은 “장 씨에 대해 아동학대치사 사실을 주위적 살인, 예비적 아동학대치사로 바꿔 공소장 변경 신청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살인죄로 처벌하되, 살인죄 적용이 어려울 경우 아동학대치사로 처벌해달라고 조치한 것이다. 다만 아동복지법위반(아동유기, 방임)으로 기소된 양부 안 씨에 대해서는 혐의 변경을 하지 않았다.
양부모 측은 살인의 고의성과 계획성을 부정하는 데 집중했다. 이날 법정에서 “학대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부정했다. 특히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된 췌장 파열에 대해서도 “2020년 10월 13일 정인이가 밥을 먹지 않는다는 것에 화가 나 평상시보다 조금 더 세게 배와 등을 손으로 때린 사실이 있다. 하지만 췌장이 끊어질 정도로 강한 근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다”고 강조했다. “일부 폭행 또는 과실이 사망에 인과관계가 있을 순 있으나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아니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변호인은 “양부 안 씨는 아내 장 씨가 피해자를 자주 혼자 있게 하고 이유식을 먹지 못해 몸무게가 감소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제지하거나 분리, 보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아 기본적 보호·양육·치료를 소홀히 했다는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장 씨가 자신의 방법대로 잘 양육할 것이라고 믿었다”며 학대 방치 의도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에 의한 살인’이라는 비판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려 한 것이다.
#법조계 “처벌 의지 부족” 지적도
정인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살인 혐의로 기소했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살인죄로 공소장 변경을 해달라는 서명을 모아 남부지검에 제출하기도 했고, 수백 장의 진정서도 재판부에 전달됐다.
법조계는 13일 이뤄진 검찰의 공소장 변경에 대해 ‘처음부터 할 수 있었던 조치’라고 설명했다. 검찰 고위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경찰이 고의성 입증 부족을 이유로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은 이해를 할 수는 있다”면서도 “수사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범죄’와 ‘천인공노할 사건’은 분명 다르게 와 닿는데 적극적으로 처벌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 같다. 너무 일반적인 사건 중 하나처럼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보통 살인죄는 고의성과 계획성이 입증돼야 기소한다. 즉, 정인이를 죽이려는 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거나 학대를 했다고 볼 정황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양부모는 경찰 수사 단계부터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했다. 경찰 역시 병원 응급실에 아이를 데리고 간 점 등을 고려해, 고의성 입증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비교적 처벌 수위가 낮은 아동학대치사로 양모와 양부를 기소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판사는 물론 검사들도 ‘살인죄로도 다퉈볼 여지는 있었다’고 얘기한다. △16개월 아이가 작은 폭행만으로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고 △아이 몸무게가 줄고 제대로 섭식을 하지 못하는 등 생명 위독에 대한 신호가 있었음에도 필요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부작위에 의한 살인혐의 적용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고의성이나 계획성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마땅히 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할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수사팀 역시 숨진 정인 양에게서 췌장 등 장기가 끊어지는 심각한 복부 손상이 있었다는 사실 등을 주목했다. 양모 장 씨에게 살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법의학자들에게 의뢰해 사망원인 재감정에 나섰다. 수사팀과 지휘부는 공판 전날까지 법의학자들과 회의를 하며 살인 혐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찾았다.
법원에서도 공소장 변경에 대해 ‘해볼 만하다’는 반응이다. 실제 법원은 2017년 발생한 ‘원영이 학대 사건’ 때 가해 부모가 마땅히 해야 할 구호조처 등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 인정하고 원영이의 양모와 친부에 대해 각각 징역 27년과 17년을 선고한 바 있다. 한 판사는 사건 내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면서도 “적극적으로 처벌하려고 한다면 살인 혐의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법원에 피고인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할 때 보통 주의적 기소라고 해서 한 가지 혐의를 적용하지만, 혹시 법적으로 판단했을 때 적용이 애매하다고 볼 경우에는 예비적 기소라고 해서 추가로 보험처럼 혐의를 걸어둘 수도 있다”며 “경찰이나 검찰이 처음부터 살인죄로 기소를 하되, 아동학대치사를 예비적으로 기소했다면 비판이 아니라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첫 재판은 50여 분 만에 끝났는데, 재판이 종료한 뒤 모습을 드러낸 양부 안 씨를 향해서 시민들은 “살인자”라고 소리 질렀고, 일부 시민은 “정인이를 살려내라”며 안 씨가 탑승한 차량을 둘러쌌다. 사진=임준선 기자
#국민적 공분에 쏟아진 관심
이들 부부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리는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은 이른 아침부터 시민으로 북적였다. 오전 8시부터 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30여 명은 ‘사형’이라고 적힌 마스크를 쓴 채 법원 앞에 집결했다. ‘우리가 정인이 엄마 아빠다’ ‘살인죄 사형’과 같은 다양한 내용의 피켓을 든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재판이 열리기 직전에는 100여 명이 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재판 방청권을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이례적으로 법원 청사 내 마련된 중계법정 두 곳에서 생중계를 결정했다. 전날인 1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 정인이 사건 재판 방청권 추첨에는 총 813명이 응모했다. 당첨 인원은 51명으로, 경쟁률은 15.9 대 1에 달했다.
첫 재판은 50여 분 만에 끝났는데, 재판이 종료된 뒤 모습을 드러낸 양부 안 씨를 향해서 시민들은 “살인자”라고 소리 질렀고, 일부 시민은 “정인이를 살려내라”며 안 씨가 탑승한 차량을 둘러쌌다. 비난은 양모 장 씨가 탄 호송차로도 이어졌다. 법원 정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호송차가 모습을 드러내자 차량 창문을 두드리고 눈덩이를 던지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서환한 객원기자